6조의 남종 돈오선은 중국 불교를 넘어 정치, 문화, 예술 전 분야를 뒤덮고 우리나라, 일본, 서구에 미쳐 전 세계화되고 있다. 찬란한 당대의 5종(임제종, 운문종, 위앙종, 조동종, 법안종)과 송대에 이르러 다시 임제종이 양기, 황룡 2파로 나뉘어져 드디어 ‘중국 불교는 선에 있다’는 말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법계는 신라시대에 도의, 범일 등에 의해 전해져온 마조선이 보조 지눌에 이르러 크게 선풍이 진작되고, 고려 말엽 양기파와 신라로부터 내려오는 법맥을 아우른, 태고 보우와 나옹 혜근에 뿌리를 둔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주종을 이룬다.
물론 6조 이후에 정립된 게송이지만 이 사구게야 말로 육조혜능의 말씀인 <육조단경>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인 동시에 선의 황금시기에 다각도로 전개된 5가7종의 종지가 되고 우리나라 조계종의 근본이 된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不立文字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하니 敎外別傳
사람의 마음을 곧 바로 가리키니 直指人心
자성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 見性成佛
모든 법은 모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습니다. 어찌하여 자기의 마음에 진여 본성을 단박 나타내지 못할까? <보살게경>에 ‘나의 본래 근원이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識心見性) 스스로 부처의 도를 이루는 것입니다. 곧 확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 것입니다.( <돈황본단경>17 견성)
위 말씀은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부처이고 본래 마음(진심)을 도로 찾는 것이라 명백히 선언한다. 혜능에게는 자성이야말로 절대절명의 것이다. 자성은 시간과 공간의 저 쪽에 있으며, 우리의 말과 글이 표현할 수 있는 일체의 속성을 초월한다. 우리의 언어는 단지 현상세계와 사물과 사물이 끝없이 대립하고 융화하는 사이에 가유해 있을 따름이다. 가유해 있는 흔적을 우리는 자성 위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뿐이다.
우리가 <단경>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함이 없는 무위적인 초월 사상이다. 자성을 돈오함으로 오는 자유로움 이것은 노장적(老莊的)이나, 마지막 고요에 빠지지 말고 고요에서 오는 환희에 안존하지 말고 혜능은 저자거리로 돌아오라고 소리친다. 이것이야말로 실사구시의 공맹사상인 인간 중심적 사유의 맛이 한껏 드러나는 대문이다. 일체의 불경과 선어록은 우리를 위하여 설하여졌고 우리의 자성, 곧 불성 위에 건립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혜능은 일체만물에 대한 집착이 없어져 무집착이 되었을 때, 이 무집착에 집착하는 위험을 위하여 말한다. 흔히 공에 빠지는 것을 8마계에 빠진다고 말한다. 고요와 적적에 쌓여 혼자의 환희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그 이후 혜능의 후손들은 “백 척의 낭떠러지에서 한 발 내디뎌라, 십만 세계가 모두 부처님의 진짜 몸임을 알게 되리라”는 멋진 선어로 경책을 하지만, 그는 더욱 친절하고 인간적인 말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대들의 마음이 이미 선과 악의에서 벗어났다면, 깎은 듯한 공허에 떨어지지 말도록, 앞과 뒤가 끊기는 고요를 지키며 즐기는 경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대들은 오르지 학문을 넓히고 많은 견문을 쌓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본심을 깨달아, 모든 깨달은 이의 근본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사귐에 있어서 화합이 자연 이루어지고 나와 남이라는 생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바로 보리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 우리의 진심을 깨달을 것입니다.(<육조단경> 제5 ‘전향참회’)
혜능의 가르침은 그와 그의 사상을 잇는 선사들에 의하여 더욱 심화되고 실증되어졌으며, 이윽고 실생활, 문화, 문학, 사상, 정치 전반이 막대한 그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사상계를 강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