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龍城, 1864∼1940) 선사가 제자인 고암(古庵, 1899∼1988) 스님에게 물었다.
“조주 무자(無字)의 10종병(十種病)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칼날 위의 길을 갈 뿐입니다.”
“세존이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인 뜻은 무엇인가?”
“사자굴 속에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조 스님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무엇인가?”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습니다.”
그리고는 고암 스님이 여쭈었다. “스님의 가풍은 무엇입니까?”
용성 선사는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며 반문하였다.
“너의 가풍은 무엇이냐?” 고암 스님도 주장자를 세 번 내리쳤다.
무자 십종병이란 ‘조주 무자’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가장 주의하여야 할 병통 열 가지를 말한다. 이는 조주 무자 화두가 모든 화두의 대표격이므로, 결국 이것은 화두 참구에 있어서의 열 가지 병통을 말한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 내용은 전적(典籍)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유(有)와 무(無)의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②‘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참으로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③도리(道理)로써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④의식으로 생각하거나 비교ㆍ분석하지도 말라. ⑤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깜박이는 데서(불법의 지혜작용에서) 캐내려고 하지도 말라. ⑥문자나 말에서 살아갈 방도를 찾지도 말라. ⑦마음이 편안하다고 일없는 경지에만 안주하는 무사선(無事禪)에 빠져도 안 된다. ⑧화두를 들어 일으킨 곳을 향하여 알려 하지 말라. ⑨문자로써 이끌어 증명하지 말라. ⑩어리석음을 가져다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등이 그것이다.
고암 스님은 이러한 무자 10종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화두 일념 속에서 잠시도 방심하지 않고 늘 ‘또렷또렷하고 고요고요하게(惺惺寂寂)’ 깨어있다고 답한다. 세존의 ‘염화미소(拈華微笑)’ 공안에 대해서는 영산회상에는 법왕(法王)인 사자의 혈족들만 살고 있어서, 세존이 꽃을 드는 순간 곧바로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린 것이라고 대답한다. 또 육조 스님의 ‘비풍비번(非風非幡)’ 공안에 대해서는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다’는 말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가 마음(目擊道存 觸目菩提)’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 용성 스님과 고암 스님은 사자의 후손답게 똑같이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는 지혜 작용을 통해 가풍(家風)을 전한 바 없이 전하고 있다.
용성 스님의 질문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또박또박 말대답하고 있는 고암 스님은, 그 스승의 그 제자답게 마침내 대선지식이 된다.
스님은 혜월, 만공, 용성, 한암 스님등 대선사의 회상에서 25 하안거를 성만한 후 1938년 용성 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았다.
그 후 1967년 조계종 3대 종정에 추대됐으며 1970년 해인총림 2대 방장, 72년 4대 종정, 78년 6대종정, 80년 용성문장에 취임하여 불조(佛祖)와 스승의 은혜를 갚았다.
김성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