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相談)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서로 이야기 한다’는 뜻이다. 즉 ‘대화’가 상담의 유일한 도구며 수단이다. 그런데 상담 장면에 침묵도 있다. 대화를 전제로 하는 상담에 침묵이라니, 언뜻 보아서는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실제 상담에서 침묵은 달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묵은 상담자와 내담자 중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상담자는 질문과 반영, 명료화 등의 반응을 통해서 내담자가 자기 생각과 감정, 행동 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담자가 말을 멈출 때마다 즉각 언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적절한 침묵을 지킴으로써 내담자가 자신이 한 표현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고, 통찰에 이를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준다. 따라서 상담자가 의도적으로 조율하는 침묵은 상담이 잘 진전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효과적인 상담을 위한 특별한 대화기법의 하나다.
내담자가 침묵을 지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상담 초기에 일어나는 침묵은 대개 상담 관계에 대해 두렵게 느끼거나 부정적일 때 일어난다. 또한 상담자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저항 때문에 침묵하기도 한다. 내담자가 할 말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침묵이 일어난다. 어떤 때는 내담자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지만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침묵한다. 내담자가 상담자한테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어떤 확인을 바라거나 해석을 해주길 원해서 침묵하기도 한다. 때로 내담자 스스로 한 얘기에 대해 생각하느라 침묵하기도 하고, 이전에 표현했던 감정 상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마음을 추스르느라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내담자의 침묵은 다양하므로 각 경우에 따라 침묵을 깨는 게 좋을지 지속시키는 게 좋을지, 상담자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도 현대의 상담자처럼 의도적인 침묵을 지키기도 하였다. 이를 불교에서는 사치기(捨置記) 또는 무기(無記)라고 한다. 초기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무엇이며, 인간 존재의 근원과 종말은 어떠한가?” 또는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영혼과 육체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때로는 그러한 의문이 얼마나 무익한가를 일깨워 주고 연기(緣起)의 법칙을 설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우주의 근원 또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러한 의문에 매달리는 것이 인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또한 그에 대해 답하면 오히려 잘못된 견해나 의혹이 점점 더 커지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교상담개발원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