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가늠할 때 실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18세기에만 해도 연암 박지원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 운동을 펼 만큼 실용적인 면에서 뒤쳐졌던 우리나라였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그 첨단을 걸을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전통 문화, 특히 불교와 관련된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예전 동서양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동양의 차 문화와 서양 실용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티 백(tea bag)으로 대별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차를 문화의 하나로 본다. 그래서 재료부터 엄선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했으며, 어떤 상태의 잎사귀를 따서 어떻게 가공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차를 마실 때 역시 찻물의 온도와 우려내는 방법, 심지어 마시는 태도에까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인다. 따라서 차를 마신다는 것을 색다른 맛의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경건한 의식으로 승격시킨다.
그러나 티백은 정반대다. 차를 종이 백에 담아 따뜻한 물에 담가 우려내기만 하면 된다. 포장된 상태로 대량 생산을 하므로 재료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없고, 물 온도를 맞추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간단하고 편리하다.
위와 같은 차이점 때문에 차는 소수의 애호가들에게만 인기가 있고, 티백은 대중에게 널리 애용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번거로운 차보다는 티백을 선호하고 있다. 차의 은근한 멋보다 티백의 간편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차-티백과 비슷한 현상이 불교 수행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인 참선과 위빠사나 등의 수행이 동양에서는 여전히 차 문화와 같은 양태로 전승되고 있는 반면, 서양에서는 티백과 같이 간편화되어 가고 있다. 서양의 심리학자나 명상가들이 동양에서 불교 수행을 도입해 그들 나름대로 가공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양 사람들이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이다. 불교 수행을 기반에 두고 심리치료를 접목한 프로그램, 불교 수행을 활용하여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이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내용이 구조화되어 있고, 운용 지침까지 마련되어 있어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루 몇 시간, 몇 주, 몇 회를 어떻게 하라고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과 우리는 불교 수행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난다. 우리는 불교 수행이라 하면 일단 부처님께서 깨달은 수승한 경지에 이르는 길을 따라간다는 경건함에 숙연해진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수행 가운데 자신들이 나름대로 이해한 부분을 아주 실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불교 수행을 통째로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로 끌어안는 반면, 이들은 부분으로 쪼개어 그 가운데 실용적인 면을 취하고 있다. 그런 다음 차를 티백에 담듯 프로그램으로서 포장하고, 심지어 상품화하여 세상에 널리 보급하고 있다. 그것이 다시 불교의 본거지인 동양에 역수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추세를 보면서 서양인의 철저한 실용 추구 정신에 다시 한 번 경외감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자괴감도 든다. 원조라 할 수 있는 우리는 이제야 불교 수행의 대중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단계인데, 그들은 이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선점을 당한 셈이다.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서양인들이 불교 수행을 파편적으로 도입하면서 불교 자체보다는 기법 측면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는 사라지고 기법만 남는다.
수행의 대중화가 절실한 요즘 서양인의 실용 정신을 참조하면서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는 묘책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