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랜드연구소에서 2020년까지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 16개를 발표하였다. 그중 8개가 생명과학 분야, 5개가 IT 분야이고 그 다음이 에너지, 자동차, 그리고 싸게 짓는 집 등이다. 과연 예측이 맞아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참고해야 할 만한 가치는 있다.
산업혁명을 경험한 서구인들은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을 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틀을 만든 경험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 자동차 전화 영화 TV 반도체 등 우리의 생활, 경제, 심지어 정신적인 지평을 바꾼 발명들이 서구에서 나왔다. 혹자는 서구인은 물질문명을 발전시켰고, 동양인은 정신문명을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이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시각이다. 서구인도 정신문명을 발전시켰으며, 동양인 역시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유럽의 도서관을 가본 사람은 서구인들이 얼마나 찬란한 정신문명을 발전켰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을 방문한 사람은 동양인들이 얼마나 기술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을 결정지은 발명품들이 왜 동양에서 발명되지 않았는가는 신기하게 생각된다. 이유 중 하나는 데카르트 이후 발전한 수학과 수학에 기초한 과학의 발전이다. 예전에는 기술이 과학과 무관하게 발전되었지만, 근대이후 기술은 모두 과학에 근거한 것이다. 요즈음 비행기나 자동차의 설계에서 미분방정식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고층건물, 터널, 교량에 이르기까지 유체역학과 구조역학에 기초해서 설계한다. 근대 동양이 뒤진 이유를 과학과 수학의 발전 기회를 놓친 데서 찾을 수 있다.
요즈음도 새로운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이 서구에서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이러한 전통과 경험 때문일 것이다. 짧은 시간에 반도체, 자동차, 철강, 그리고 조선 산업을 받아들여서 세계 제1의 기술국가가 되었지만, 아직 문화에는 과학기술이 충분히 젖어있지 않다. 과학기술의 깊이 있는 이해가 있어야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운 정신도 꽃필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과학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혹자는 마지막 남은 과학기술 분야를 정신과학을 포함한 생명과학으로 꼽기도 한다. 정신마저도 과학기술로 기술하고 제어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혹자는 동양의 정신에서 인류의 복음을 찾기도 한다. 대부분 동양제국에서 잃어버린 불교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있는 한국, 그리고 과학기술을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한국이 세계의 횃불이 될 수 있다. 랜드보고서가 예측한 16개 기술 분야가 단지 인간의 편리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그리고 자연을 조화된 행복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현대를 사는 부처님 법을 배우는 불자의 몫일 것이다.
■서울대 전기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