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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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천의 다관(茶館)/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낯선 곳에 막 도착한 여행자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숨결이 진하게 배어 있는 삶 자체가 생동하는 장소일 것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다. 그 속에서 필요한 정보와 물품을 생산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일찍이 중국사회의 차 문화를 선도해온 문인 계층은 위로는 벼슬에 나아가 정치에 참여하고 아래로는 서민과 상인의 중간 계층으로 사회 변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당나라 때부터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다관(茶館)은 청 말(淸末)에서 민국(民國) 초(初)에 가장 많이 형성됐다.
중국 사천의 한 도교사원, 정리 되지 않은 사원 앞마당에 30도가 넘는 기온에서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수 십 개의 붉은 촛대가 눈에 들었고 그 옆 다원(茶園, 혹은 茶館)에는 남 녀 노소 할 것 없이 마작을 하며 즐겁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향명(香茗)이라는 다원의 글씨, 작은 나무 탁자, 등받이가 있는 대나무 의자 이외, 별 다른 다구(茶具)없이 유리컵 혹은 도자기 잔에 차를 넣어 뜨거운 물을 철철 넘치게 부어 놓은 차뿐이었다. 찻잎의 가격은 품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듯, 10위엔(圓)부터 고급 차는 상당히 비싸 보였다. 도교사원에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치열함과는 대조적으로 나른하기까지 한 다원(茶園)의 광경은 한때 전성기를 이루며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던 번화했던 장소와는 다른 광경이었다. 지금 사람들에게 다원(茶園)은 음식, 마작 등 여가를 즐기는 일상 속에 존재 하고 있었다.
사천지역은 분지이다. 해를 보기가 힘든 지역으로 “머리위에 맑은 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앞에 다관 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어느 곳이든 다원이 있다. 심지어 다원에서 세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차 마시고, 아침을 먹고,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경극을 보며 일상적인 생활을 즐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정보를 얻고 자신을 알리고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차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만족을 얻는 장소였다. 전문적으로 상인이 물건을 거래하며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보면서 토론하고 시상을 떠올리며 공연을 보는 서차관(書茶館)이 있고, 문인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감상하며 여행자들이 경치를 감상하는 야차관(野茶館)이 있다.
1934년 북경시 상무회에 등록한 다점(茶店)만도 100개가 넘었으며 차를 다루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만도 1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다점들은 생산된 차를 다관에 공급하는 것 외에 시민들의 차 수요를 공급하는 장소였다. 다관은 차와 곡예, 시회, 희극 등 민간 문화 활동과 결합하여 독특한 다관 문화를 형성하여 중국의 일상적인 차 문화를 만들었다.
물론 민국이후 다관에서 차를 마시는 개개인의 손님은 줄어들어 주로 연극하는 장소로 바뀌지만 처음으로 여자가 참여할 수 있는 사교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 안에는 경극(京劇), 평극(評劇), 화극(話劇) 등이 공연되었으며 사람들이 친밀함과 상호 화합을 가지고 동포 화합(同胞 和合)의 정신을 찾았다. 노사(老舍)의 극작 <다관(茶館)>은 당시 사회의 축소판으로 다양한 인물을 통하여 청말 민국초 북경 다관 문화의 한 측면을 잘 반영한 것이었다.
2007-01-29 오전 10: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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