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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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불교계의 전통과 변화 바람/자유기고가
우리에게 알려진 베트남 불교는, 수십 년 간 망명 생활을 하며 서양에 불교 열풍을 일으키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추천된 바 있는 틱낫한 스님을 통해서이다.
수십 년 전에는, 당시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에 대항하여 ‘평화’를 촉구하며 100일에 이르는 단식을 하고 소신공양을 했던 스님들을 통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적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노벨평화상에 버금가는 ‘라프토(Rafto)’ 상 수상자로 선정된 틱꽝또 스님이 ‘출국 후 귀국 불허’가 염려되어 수상식에 참석하러 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단편적 정보에만 의지하면, 베트남 불교 지도자들은 불의에 저항하는 투사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틱낫한 열풍’이라고 할 정도의 바람이 불기도 했었지만, 간화선만을 유일한 수행법이라 여기는 일부 선사들은 심지어 “틱낫한은 하근기 중생”이라고 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베트남 불교가 우리와 같은 대승불교권에 속하고 선종의 맥을 이어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事實ㆍ史實)조차도 모르는 무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곳의 불교는 우리와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 일부 저항적인 스님들이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정부 권력에 협조적이었다. 이른바 ‘호국불교’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과거 종교 활동을 금지하였던 중국에서 지난해에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여 외국의 불교지도자들을 초청해 대규모 행사를 열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내의 갈등을 풀어 화합으로 이끄는 수단으로 하려는 움직임을 본 바 있다. 결국 전근대 시기의 ‘호국불교’와 다름없는 ‘국가불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국 불교의 성격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의 VNA통신이 1월 17일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베트남 승가회(Vietnam Buddhist Shangha VBS)’의 고위 지도자인 틱트리틴(Thich Tri Tinh)스님이 이 ‘승가회’의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에서 “베트남 불교도들은 국민적 단합과 국가 건설에 공헌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는 것이다. 베트남 승가의 최고 지도자인 이 스님이 오히려 ‘정부 정책 협조와 국민 단합’을 더 강조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우리 불교계를 생각하였다. 올림픽 대회와 월드컵 유치·성공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어 정치권 인사들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고, 이제는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기까지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유력 정치인들 지지모임에 얼굴을 비치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
물론 지금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중생들을 향한 자비심에서 정치인들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생각과 몸짓을 넘어 정치권에 의지하고 그들에게서 어떤 보상과 지원을 기대하는 행동은 결코 옳지 않다.
동업 중생들에 대한 지극한 비심(悲心)에서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단식을 하고 소신공양을 하며 나라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겪었지만 분노와 복수의 칼날을 볼 수 없는 베트남의 여러 스님들과 정부에 협조해 ‘단합’만을 강조하는 ‘베트남 승가회’를 바라보면서, 과연 이 땅의 불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 좌우(左右), 진보와 보수를 내세우며 결국 정치권에 기대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불자가 선택해야 할 길일까?
2007-01-20 오전 1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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