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유유히 융통성 있게 지혜롭게 안으로 굴리세요!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 몸 속에 지금 미생물이, ‘예전에 나는 이렇게 됐었다.’ 하기 이전에 ‘지수화풍이 이렇게 돼 있구나!’, 그 다음에 ‘미생물이 있구나!’ 이거죠. 미생물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몸속에 있습니다. 가지각색의 모습을 해가지고 다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지금. 그게 태초예요, 자기 생의 태초. 자기 오장육부를, 이 세포를 전부, 살이든지 뼈든지 세포든지. 그 모두가 겹겹이 돼 있으면서 생명들이 살고 있는 것이 바로 당신들의 태초예요.
그러니까 그 마음들이 수억겁을 거쳐오면서 그렇게 살면서 물리가 터져가지고 지혜가 나온 것이 바로 자꾸자꾸 형성을 시켜가는 겁니다. 요만한 벌레 하나가 날아다니는 벌레가 되지 않나, 요만한 벌레가 매미가 되질 않나. 이렇게 진화된 것을 여러분이 지금 얼마나 잘 아시고 계십니까? 죽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옷을 벗는 겁니다. 옷을 벗는 거예요. 왜 죽습니까? 더 차원을 높여서 자기 몸을 형성시키면서 다리가 짧으면 길게 만들고 길면 짧게 만들고 아주 자유자재로 하고 있거든요. 그대로 부처님 법이죠. 얼마나 무변한 법을 여러분이 가지셨습니까? 그러니까 다 법신(法身)이고 화신(化身)이고 보신(報身)이고 부처고, 여러분이 다 가지고 계신 거예요.
그러니까 고통스럽지 않게, 즉 말하자면 부적을 써서 베갯속에 넣거나 어디 붙이거나 하는 이런 미신 짓들을 한다면 죽어서도 그 차원이니 어떡하죠? 요다음에 태어나서 그 차원끼리 또 만나는 거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지 다른 게 나올 게 없거든. 지금 세상을 살펴보세요. 백봉 거사 말했듯이 끼리끼리들 모이지 않았나? 사람도 끼리끼리 모이고, 물건도 끼리끼리 모이고 또 물건을 갖다 쏟아놓으면 골라요, 끼리끼리. 골라서 놔요. 얼마나 역력하고 에누리가 없는지 철두철명한 게 이 부처님 법이에요.
그림도 여러분이 다 그려서 이렇게 나오셨지만 말입니다. 잘나고 못났든지 마음이 아름다워야 돼요. 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간판이 좋은 거를 그렇게 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꼬임에 빠져서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일부러 아주 험악하게 해가지고 나오는 수도 있어요, 각오가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공부를 하면 사회나 국가적으로 참 이득이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전에 춘보 선사라고 계셨는데 그 춘보 선사는 원효 대사처럼 만날 남한테, 뭡니까? 파계중이라고 만날 돌림을 받았어. 그런데 이 스님은 그런 걸 생각지도 않아요. 그런 거 탓하지 않고 여기 가도 “아이구”, 저기 가도 “아이구” (고개를 숙여 보이시면서) 하고 그렇게 겸손하게 그러니까 사람 같지도 않지. 그랬지마는 그분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원효 대사보다도 더 능력을 참 많이 발휘했다고 봐요. 한 가지를 예를 들어서 얘기한다면 그때에 참, 국난에 빠져서 어려웠을 때 조선에 이익을 주었다는 얘깁니다. 나라가 국난에 빠지니까 스스로 일을 벌인 겁니다. 어떻게 벌인 건가? 청국으로 하여금, 무슨 일로 이쪽으로 청하게 만들어서 자기가 해놓고 자기가 대책을 세운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은, 참작하시라고 미리 이렇게 얘기해놓고 하는 겁니다.
어느 때 정승을 지냈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주 가난했습니다. 옛날에 양반은 나가서 막일을 못 했습니다. 어느날 춘보 선사가 그 집엘 들렀더니 사랑방에 앉아서 글쎄 짚세기를 꼬고 있지 않습니까? 호피를 깔고 앉아서 발을 치고서, 그렇게 당당하던 그 정승이 하루 아침에 정승을 그만두고 나오니까 그렇게 됐단 말입니다. 살림은 가난하고, 마음은 꼿꼿하고, 돌림성은 하나도 없고, 지혜라는 게 있어야 돌림성이 있지. 그래서 종들은 다 나가고 그러니깐 호피를 깔고 앉아서 짚세기를 꼬는데, 호피가 때가 꼬질꼬질하고 볼 수가 없거든요.
그래 춘보 선사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 그 춘보 선사라는 분이 나라에까지도 알려져 있는 분이에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고 그랬으니까 어디 고을 하면 벌써 빠삭하지 않습니까? 고을 고을에 다니면서 원효 대사처럼 많이 구제를 했기 때문에 상당히 나라에서도 인정을 해준단 말입니다. 인정을 하고만 있었지, 뭐 불러다가 어떻게 한 건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행을 그렇게 잘하셨으니까 인정을 받고 있는 처지라. 그 친구를 쳐다만 보고 있다가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 “여보게, 자네가 깔고 앉았던 거 나 좀 주게.” 그러니까 “뭘 하려고 그러나?” “새까맣고 때가 묻은 것을 갖다 바깥에 나가서 털어다가 날 좀 주게. 내가 정승한테 가서 팔아다 줌세.” 그러니까 그냥 자지러지게 놀라는 거 아닙니까? 그래 “놀라지 말고 내 뜻을 잘 생각을 해보게. 부처님 법이란 이렇게 좋은 걸세.” 하고선 그걸 싸서 달라고 그랬습니다.
싸서 달래가지고 가서 정승, 지금으로 치면 뭐라고 그럴까? 그냥 정승이라고 합시다. 정승한테 가서 뭐라 그랬느냐 하면 “앞으로 9년이 있으면 청국에서 이 나라 보물을 청해 와. 그때 보물로 쓸 테니까 이것을 잘 싸되, 백지로 싸고 또 싸고 일곱 번을 싸고 여덟 번째 싸되 공단(貢緞)으로 싸라. 공단으로 싸고 난 다음에는 상자를 만들되 아주 튼튼히 삼겹으로 상자를 만들어서 거기다 넣어라.” 지금으로 치면 도끼로 쳐도 영 쪼개지지도 않게 해서 잘 모셔놔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깐 그 정승이 가만히 생각할 때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훌륭하셨으니까. 그래서 그것을 오백 냥을 받고, 그때 오백 냥이면 달구지에다 실어야 돼요. 무거워서요. 그래서 달구지에다 실어다가 갖다 주곤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삼년 후에 또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보니깐 또 짚세기를 꼬고 있어요. 그걸로 빚진 거 다 갚고 그러니까 물 퍼붓기죠, 밑 빠진 독에.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어떻게 보물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집을 한 바퀴 휘 도니까, 글쎄 찌그러진 질요강이 있지 않습니까? 밭동구리에 오줌이 담겨 있는 누렇게 된 질요강이 하나 있단 말입니다. 그거를 좀 북북 닦아서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건 뭘 하느냐?” 그래서, 이것도 내가 팔아다 줄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그래서 그것을 우물우물 쌌습니다.
싸가지고서는 가서 또 그 정승한테 그랬습니다. “육년만 있으면 이것이 큰 보물로 다 쓰일 테니까 오백 냥만 내게.” 이렇게 했단 말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지금으로 치면 임금을 봐도 그렇게 호락호락 안 해요. 그게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겠지마는 그래서 그 정승은 그 말을 또 믿었어요. 그것을 또 그렇게 싸고 싸서 상자에다 넣어서 지금으로 치면 그냥 튼튼하게 그렇게 넣어놨죠. 또 이제 실어다 주고…, 간단간단하게 얘기하죠. 실어다주곤 또 올라갔다 삼년 만에 내려오니깐 또 그 타령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은 물질로다가 보태주는 것은 참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 내려오니깐 또 그 지경을 하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안팎을 다 돌았습니다. 돌아보니깐 삿갓 쓰던 거요, 그분이 정승으로 계실 때에 낚시질을 하느라고 삿갓을 썼었는데 추녀 밑에다가 걸어놓은 것이 아주 사그러져서요, 새똥 뭔 똥 하고 그냥 사그러져서 바슬바슬하거든요. 그러니깐 할 수 없이 “여기다가 물 좀 뿌려주게. 물 좀 뿌려서 누굴누굴하게 해서 이것 좀 싸주게.” 그러니까 “여보게, 그건 내다버리거나 아궁이에다 넣어도 시원찮은데 그걸 가지고 가면 뭘 하나?” “글쎄 걱정 말고, 우리나라를 구하는 일도 되네. 이것이 지혜일세.” 하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또 가져가서, 삼정승한테 얘기를 하고 삼년만 있으면 그렇게 보배로 쓰일 것이니 돈 오백 냥만 더 내라고 그래가지곤…, 하하.
지금 아마 제가 그렇게 한다면, 제가 여러분한테 “삼백 냥…, 오백 냥 내놓으시오.” 이렇게 하면 아마 욕 많이 할 겁니다. 하여튼 어떻게 되었든지, 그래서 오백 냥을 또 갖다 주고 갔는데, 삼년 뒤에 청국에서 사신이 와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은 ‘여기 조선의 보물을 내놓으라’고 그런 겁니다. “보물을 내놔라.” 이런 겁니다. “보물을 안 가져온다면 여기 조선에 어떠한 벌을 행하겠다.” 이렇게 됐습니다. 아주 나라도 살기가 어려웠던 때인데도, 그렇게 또 당하니 말입니다. 이게 한두 번째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당하니까 참 살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자 그때 서춘보 스님이 생각났습니다. 임금이 머리를 싸고 그냥 걱정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선의 보물이, 청국에 들어갈 보물이 어디 있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 되고 춘보 선사가 갖다준 그것이 생각이 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춘보 선사를 찾느라고 온통 산을, 사람을 풀어서 헤맸는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춘보 선사는 벌써 그것을 알고 하산하셨습니다. 내려와서 “나를 그래서…” 번연히 알면서도 묻는 겁니다. “왜 찾으셨습니까?” 하고요. 그러니깐 그러그러해서 이렇게 스님 생각이 나서 찾았노라고 해요. “지금 밥을 못 먹고 싸매고 있습니다. 이러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합니까? 만약에 이걸 해드리지 못한다면 우린 다 죽습니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그러면 그거 싸놓았던 거를 해드린다.’ 하면서 여기 사신과 거기 사신과 모든 의식을 다 갖추어서 춘보 선사가 앞장을 서고 그렇게 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이 춘보 선사는 아주 뭐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는데 정승들은 그냥 밥을 못 먹고 혓바닥이 죄 해지고요, 밥을 넣으면 그냥 모래알 같은 거라요. 글쎄 찌그러진 그거, 정승이 쓰던 그 삿갓 그걸 가지고 뭐라고 대답을 해야 조선의 보물이 됩니까, 글쎄? 그러니까 뭐 입도 쓰고 죽을 맛이죠. 저 춘보 선사는 앞장을 서서, 내일 죽더라도 먹을 건 먹고 돌아가시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아주 죽으라고 그랬어요. 아주 죽으면 사는 길이 있다고요. 그래도 못 알아듣거든요, 유교로만 나가서.
그래서 강을 건너자 청국에서 마중을 나와서 그냥 좍 둘러섰거든요. 그러니까 춘보 선사가 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보물은 어디에도 없는 보물이니 밤새도록 잘 지켜라.”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하게 지켜라.” 거기서 나온 군졸들, 여기서 나간 군졸들이 그냥 쫙 둘러서서 화톳불을 놓고 그냥 지킨 거예요, 아주 겹겹이 선 거예요. 그렇게 위엄 있게 해가지곤 턱- 당도했어요.
청국 천자가 턱 나오는데, 당장 그렇게 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춘보 선사가 말했습니다. “이 귀중한 보물을 단번에 이 자리에서 어떻게 풉니까?” “깊이깊이 기도하는 마음으로써, 부처님의 그 뜻을 찬양하면서 조선국의 그 고마움을 음미하면서 삼일을 기도를 하고 난 뒤에 이거를 뜯어야 합니다.” 이러거든. 그러니 글쎄 얼마나 충격을 주었습니까? 삼일 동안을. 그러니까 거기 사람들이 전부 기도한 겁니다.
기도하고 나서, 천자가 하는 소리가 그랬습니다. “도대체 뭐기에 그런가?” 했습니다. 아주 이 세상에서 없는 걸 가져와서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 삼일 있다가 모두 위에 앉았고 밑으로 죽 앉았고 그러는데, 정승들은 삼 일을 그냥 못 먹어서요, 빌빌빌빌 하거든. ‘저거를 어떻게 해서…’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춘보 선사는 그렇게 당당하게 있으니, 그걸 알아야 뭐 자기네들도 좀 믿고 좀 안도할 텐데 믿지 못하겠거든, 도무지. 그러니까 그냥 입이 지지리 지지리 타고 죽겠으니까 춘보 선사 뒤로다가 물러섰고, 정작 말할 사람은 뒤로 물러섰고 춘보 선사가 앞에 앉은 겁니다.
앞에 앉아서 하나를 뜯는데,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몇 시간을 뜯은 거죠. 하하하. (대중 웃음) 전부 합장을 시키면서 뜯은 겁니다. 뜯으니까 웬 걸요. (대중 웃음) 그냥 때가 쪼절쪼절 붙은 거, 새까만 거, 털도 하나도 없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그 중국 천자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보물이 되느냐는 겁니다. “너희들, 너희들 이것이….” 그냥 천둥같이 호령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 춘보 선사는 당당히 “이것은 공자님이 삼천 제자를 가르칠 때 깔고 있던 호피다.” 이거야. 하하하. (대중 웃음) 공자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앉아있던 걸 우리 조선국에서 이것을 간직해야 하느냐 이겁니다. “여기 청국에 있느냐.” 이겁니다. 조선국에서 이걸 간직하게끔 되어 있으니 이 나라도 나라냐고, 이거 사람이 없는 나라 아니냐고 말이야. 이렇게 당당하게 하니까 그만 천자가 그냥 기가 탁 죽었다. (대중 웃음) 그래가지고 무릎을 탁 치면서 “우리가 우리나라 의인의 방석 하나 간직하지 못했으니, 이게 참 죄송하기 짝이 없다.”고 아주 그냥 고개 숙였죠, 춘보 선사한테.
아, 그랬는데 말입니다, 그 다음에 또 푼 것이 뭐냐 하면 아니 사글사글한 삿갓 아닙니까, 글쎄. 사글사글한 삿갓인데 새똥이 앉고 그냥 푸는 것도 금방금방 이렇게 푸는 겁니까, 어디? 한 시간을 내리 풀어가지고 턱 놓으니까 사글사글한 그런 거를, 그래도 물을 뿌려서 좀 누글누글해져서 괜찮지만. 이제는 기가 죽어서 그냥 “이건 뭔데 그러냐?”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이거는 강태공이, (대중 웃음) 강태공이 시절을 낚시질할 때 쓰던 삿갓이라 이거야. “그런데 이것도 조선국에서 이렇게 간직해야 되느냐?” 하고 큰소리로 탕 울리니까 거기에 그냥 기가 팍 죽는 거야. 기가 탁 죽으니까 사신으로 왔던 사람이며 모두 다 고개를 숙이고선 그냥 땅으로 눈을 떨어뜨리거든요. 그 위력이 너무나 당당하니까.
또 하나를 풀어서 놓으니까, 그때는 그냥 모두 눈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는 거야. 뭐 더디든지 말든지 합장을 하고 말입니다. 춘보 선사가 시키는 대로 그냥 그렇게 하고. 그러니 그 꼴이 뭡니까? 그래서 또 풀어놓으니까는 그때 버캐가 누렇게 앉은 (대중 웃음) 찌그러진 참, 그 질요강이지 않습니까? “질요강이? 이건 그래 뭐 뭐 뭐가 보물이 되겠소?” 하니까 그때 춘보 선사가 당당히 말했습니다. “앞에 두 가지는 청국 보물이지마는 이건 우리나라 최초로 연구해서 (대중 웃음) 최초에 구운 거기 때문에 이렇게 간직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조선국에 제일 가는 유물이 됩니다.” 하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참, 이거는 잘 보관해 두어야 될 거라.”고 하면서 그대로 명을 내리는 겁니다. 이거는 상자를 셋으로 속 상자, 그 다음에 두 번째 상자, 세 번째는 아주 철망으로 상자를 만들어서 잘 간직하라 이렇게요.
그렇게 하고 거기에서 단번에 명을 내리기를 조선국에 공단 필, 금은보화 돈 이런 것을 수없이 배에다 실으라고 했어요. 배에다 실어서 조선국으로, 그 수없는 배에다 실었으니 그때 한참 죽을 판에 말이야. 우리네 살림이 죽을 판국에 그렇게 많은 보물과 그 모든 걸 보내왔으니 나라가 궁색하던 때에 오죽이나 잘 썼겠습니까? 요긴하게. 그런데 서춘보 선사는 가져온 보물을 좀 드리니까 그거를 받아가지고 싫다는 말도 안 하고. 허허허, 받아가지곤 나왔어요. 나와가지고 골골이 다니면서 없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또 그 친구 있죠, 못 사는 친구. 거기 또 한 덩어리 쥐어주고요, 다 풀어놓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이러한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은, 지금이나 그때나 물리가 터져서 지혜로운 일들을 할 때에, 내 얘기했죠. 춘보 선사가 일을 해놓고 춘보 선사가 감당을 했다고요.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 지금은 몸으로 다녀서 물질로 해서는 호국불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행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스스로 자동적으로 되게끔 굴리는 그런 무(無)의 과학이 있다는 얘깁니다, 무(無)의 과학!
그러니까 그때 춘보 선사는 그쪽 청국의 천자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해놓고, 조선이 살 수가 없으니깐 그렇게 생각을 하게 해놓고, 즉 그런 걸 찾게 해놓고 미리 대책을 세운 겁니다, 미리미리. 지금 우리나라도 그렇지마는, 사회적인 문제도 그렇고 가정적인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끌고 다니는 이 몸도 벌써 자기가 힘이 있다면 몸으로 다녀서 불교를 그렇게 믿게 하는 게 아니라 이 온 누리에 두루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같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을 때 대책을 세우는 것도 다 그렇게 돼 돌아가게끔 대책을 세워서 해가되 먼저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런 걸로 비유할까요? 어떤 스님이 부스럼이 크게 다리에 났거든요. 부스럼이 잔뜩 났는데 아침 새벽에도 그냥 이게 아프니까는 “아무개야!” 하고 시자를 부릅니다. 그러면 “예!” 그러고 대답할 거 아닙니까? 대답을 했다 하면 뚝 끊어지고 안 시켜요. 또 대답하면은 아무 일도 시키질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시자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대답은 해놓았는데 영 일을 시키지 않거든요. 그래서 나중엔 화딱지가 나서 말입니다, “아무개야!” 부르면 대답 안 하고, “에잇!” 그냥 속상해서 한다는 게 그만 아침에 부르면 세숫물 떠다주고, 대답이 없이, 또 아침에 구멍 눈으로 그냥 보니까 아파서 그러고 있으면서 “아무개야!” 부르면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수건 빨아가지고 가서 씻겨드리고선 나오고 하다 보니 이게 숙달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렇듯이 우리가 지금 이 나라에 뭐든지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스스로 자기가 알게끔 만들어주기 위한 어떠한 방책으로써 뭐가 잘못돼 돌아가도 그냥 내버려두는 거예요. 그렇게 내버려두는 까닭에 발전을 한다 이겁니다. 잘못됐다 잘됐다 이걸 알게 되고, 남들이 막 얘기를 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이럼으로써 그걸 깨닫고 또 발전을 잘 해나가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발전성이라고, 발전을 이루는 데 쓰는 거라고 하는 거죠. 난리가 나지 않으면 또 부자 노릇 할 수도 없고 상인들이 상업을 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이렇게 서로서로에 해나가되 다 대책을 세워놓고,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해나갈 수 있는 겁니다.
전자의 선사들은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대답이 없이 그렇게 했는데, 대답을 해도 때려주고 대답을 안 해도 때려줬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아무개야!” 불러서 대답을 “예.” 했으면 시켜야 할 텐데, 안 시키고 했으니 몇 녀석이나 붙어 있겠습니까? 그거. 아마 지금 그러면 미쳤다고 돈 거라고 그럴 겁니다. 뭐를 해가지고 오면 그것을 받지를 않았습니다. 세숫물을 갖다 줘도 그 물로 씻지 않고 절룩절룩하고 나가서 세숫물을 떠서 자기가 했습니다. 그러니 글쎄 시자가 생각할 땐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시자가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냥 떠다 준 것은 안 썼다는 말입니다. 알고 떠다 주었다면 그건 썼을 텐데. 그래서 그 물을 안 썼기 때문에 그 시자한테는 오히려 화두가 된 거죠. ‘도대체 이거 무엇인가?’ 하고 그냥 관(觀)했기 때문에 자기를 발견해가지고 스승이 세숫물을 떠다 드려도 안 쓴 거, 불러서 대답을 해도 대답을 들은 척 만 척 한 거, 이런 것을 다 알게 되고 물리가 터졌답니다.
그래서 나중에 공부하러 들어왔던 사람이 다 떨어지고, 몇 안 남은 가운데 공부를 해가지고 무르팍에 엎드려 울면서 “누워 있는 부처님, 앉아 있는 부처님, 서 있는 부처님이 다 당신이시군요.” 하고선 울었답니다. 그러나 지금 아마 그런다면 다 도망갔을 테죠. 지금은 지금대로의 시대에 맞게 이렇게 해나가기 위해서, 어떤 때는 하기 싫은 말도 있겠지만, 하기 좋은 말도 하기 싫은 말도 없이 그저 생각도 없이 여러분 만나면 말을 이렇게 하게 되는군요.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나라 얘기도 하고 또 우리 공부하는 얘기도 하는 것이, (시계를 보시고) 참, 너무나 길게 얘기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오늘 이렇게 서로 앉아서 토론한 것을, 설법했다고 하기 이전에 우리 서로가 둘이 아닌 한자리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같이 이렇게 나누었다고 생각하시고, 앞으로 나가면서 내 얘기를 잘 참작하시기 바랍니다. 이 불교를 숭상하는 데는 미신의 법을 조금도 따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융통성 있게 그것도, 자식이든지 부모든지 남편이든지 아내든지 기복으로 믿는다 하더라도 “이건 틀렸어.” 하지 말고, 스스로 유유히 융통성 있게 지혜 있게 어머니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안으로 굴리세요. 어머니도 이러한 뜻을 아시게끔 주인공에 모든 걸 놓고 가다보면 스스로 그 에너지가 어머님의 마음속에서도 같이 돌아가게 되죠. 내가 행으로도 자꾸자꾸 달라지면 ‘아,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달라지는데, 거기가 옳은가봐.’ 그 생각이 들 때에 “어머님 이러고 저러고….” 든지 “오늘은 거기 가니까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하고서 “그런 것 같아요. 생활에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얘기를, 무슨 불법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을 얘기하지 말고, 그냥 얘기하듯이 하다 보면 어머님도 좋아져서 마음이 흐뭇해지시고, 자식도 흐뭇하고 좋겠죠. 급하게 그냥 확 부러뜨리면 꺾어져요. 모든 게 불화가 일어나고 아버지든 어머니든 마음이 불편해지고, 또 자식을 이끄는 데도 역시 똑같고….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침착하게 생각해가면서 연구하는 것이 천체 물리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하고, 이날까지 이렇게 짧으면 길게 하고 길면 짧게 하고, 이렇게 창살 없는 감옥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되지 않나. 이 창살 없는 인간 게임 속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되지 않나,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보시고요.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1987년 1월 18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