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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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팔랑개비대 하나만 쥐고 다닐 수 있어야
그냥 묵묵히 일체를 나와 같이 보는 마음이어야

오늘 여러분과 같이 또 한자리를 하게 됐군요. 여러분이 마음먹는 대로 같이 있다면 같이 있는 거고, 혼자 있다면 혼자 있는 겁니다. 그 뜻이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그렇게 묘법이랍니다. 내가 여러분한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연화장불(蓮華藏佛)’ 이러면 아주 최고의 한울을 꿰들어서 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주인이라는 뜻도 되죠.
그것은 왜냐하면 우리 은하계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은하계에 또 더 큰 은하계도 있고 또 더 큰 은하계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 밑에 소속된 은하계는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은하계 속에 있는 우리 생명력들은 사분파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질척한 데서 사는 것이나 물에서 사는 것이나 한 부분으로 친다면, 또 나무들 풀들을 한 부분으로 치고, 날아다니는 것 또 땅을 딛고 다니는 것, 이렇게 네 부류로 치는 이 속에서 알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 질척한 데서 낳는 것, 화(化)해서 낳는 네 가지가 소속돼 있습니다.
그 소속되어 있는 생명이 한데 합쳐진 마음, 즉 공존하는 그 주장자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이름 해서 사왕천(四王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걸 이름을 지어서 이름이지, 총 합해서 지도를 하는 자가 사왕천이라고 이름해서 붙인 겁니다. 이름해서 붙였다고 그것이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오갈 수 있고 광력이나, 전력, 자력, 여러 가지 힘이 서로서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사왕천에서도 벗어난다면 원심력을 얻는다, 지난번에도 이런 얘길 했을 겁니다. 원심력을 얻는다면 그 원심력은 어떡해서 원심력이 될까? 그리고 사무사유(四無四有)라는 그 뜻은 뭐냐? 죽은 사람들의 마음, 산 사람들의 마음이 둘이 아닌 그런 뜻을 가지고 사무사유 한데 합쳐서, 즉 말하자면 우리가 한마음의 지도자가 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우리가 무(無)의 세계의 그 모든 것들을 살펴보면, 천차만별로 돼 있는 영령들, 그 처절한 영령의 참혹한 일들, 이름해서 부를 수 없는 일들, 또 산 사람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참혹하고 처절한 영령들, 즉 산 사람한테 침입해서 악이면 악, 선이면 선 그렇게 침입을 해서 인연이 돼 있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그래서 독 안에 들어도 면치 못한다는 뜻이 거기에 있고, 팔자 운명이라는 것도 거기에서 이름이 속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팔자 속 운명 속 업보 속에서 어떻게 벗어나야만이 사왕천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겁니다.
우리가 사왕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얻는 것은 악이나 선이나 다 놓는 것뿐인데 여러분은 ‘나는 놓을 수 없다’고, ‘어렵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왜 어려우냐?’고 나는 그러죠. 그게 아주 아리송하게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렵다고들 그러지만 나는 하나도 어려운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자유스럽습니다. 지금도 자유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누구한테 제재를 받는 게 아닙니다. 용도에 따라서 자기가 스스로 가고 오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만나고, 스스로 교차하고,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여러분 자유자재하지 않습니까?
그것에 끄달리지 말고 모든 것이 바로 내 근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전부 여러분의 한마음이 근본으로 돌아가면서 그것이, 즉 말하자면 오고 감이 없는 빛보다 더 빠른 누진통(漏盡通)으로 하여금 천체무전통신기처럼 광력이나 전력에 종합된 그 에너지는 바로 저 은하계로 통하게 됩니다. 은하계의 별들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본이 바로 연결돼 있습니다, 직속으로. 그렇기 때문에 한마음의 뜻을, 무(無)의 세계의 한마음의 뜻을 알려면 내 안테나를 세우지 않고는 상봉할 수가 없는 거죠. 나의 안테나는 근본의 전체 통신을 할 수 있고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죠. 즉 말하자면 심안이 밝아진다는 뜻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오고 감도 없는 육신통, 이것이 천백(千百)으로 화(化)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느냐? 여러분이 의심치를 말아야 된다 이겁니다. 자기를 자기가 의심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구, 내가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 믿는 사람이 이거를 해서 안 되는데….’ 꼭 후회가 들어가고 반성이 들어간단 말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데는 정말 나를 깨닫는 그 길을 택하려면 후회도 반성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없는 거다 하고 들어가는 게 뭐냐 하면 내 마음 근본 주인공 속에 다 같이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깝기 때문입니다. 즉 직속으로 같이 상응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모두 각각 논다면 이거는 정말이지 여러분은 자기 몸 하나 추스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거를 했든지 뒤돌아보지 마세요. 잘못됐어도 그것은 잘못되게 한 장본인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딴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다 되놓는다면 다시 돌아가서 그것이 정돈되는 거죠. 그러니까 빨리빨리 파악을 해야 된다는 얘기죠. 그렇게 생활하는 모든 것이 그냥 참 행이요, 그것이 참선이요, 행선(行禪)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왜 잘 써야 하느냐? 여러분이 한번 잘못 쓰면 이 몸뚱이 속에 업식으로 뭉쳐집니다. 저지른 대로 업식이 돼서 내 몸뚱이에 뭉쳐 있으니 거기에 속지 말고, 잘못되는 것도 업식으로 뭉쳐져 있는 인과로 인해서 나오는 거니까 모든 걸 놔라, 맡겨 놔라.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녹일 수밖엔 없다. 거기서 해결할 수밖에는 없거든. 어떤 때 보면 여러분이 재밌게 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있는데 시커먼 게 거기 죽들 앉았어도 여러분은 눈이 멀어서 못 봐. 잠시 잠깐 웃고 즐길 거라면 차라리 그게 뭡니까? 그게 사는 겁니까?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데의 그 업식으로 인해서, 업식을 가지고서 여러분한테 바깥에서 오는 거, 안에서 일어나는 거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찰나찰나 닥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얘기할 것은 우리가 ‘구정토(九淨土)’라고 말을 합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소속되어 있는 구정토다 이 말이죠. 지금 은하계가 있으면 은하계의 별들을 보호하고 있는 태양계가 있습니다. 다 같이 그 태양계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사생(四生)입니다. 태양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렇게 자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도 빠지면 안 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태양이 없어도 안 되고 바람이 없어도 안 됩니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이 없는 게 아닙니다. 물도 생명이 있고 흙도 생명이 있습니다. 물이 없어도 안 되고 흙이 없어도 안 되는 이치가 있는데 그 이유는 흙과 물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태양과 바람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죠. 태양이 위로는 근본 별성을 보호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을 자라게끔 돌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정토는 어떻게 해서 구정토라고 그러냐 하면 은하계에 있는 혹성들만 해도 이거는 삼심(三心)에, 삼심! 이렇게 하는 건 개별적인 것이 되지만, ‘삼세심(三世心)’ 하는 것은 구정토가 다 들어갑니다. 혹성이 다 포함되죠. 혹성 외에 있는 것은 구정토에 소속되어 있는 거고, 그 구정토가 소속돼 있는 건 은하계에 소속돼 있는 거죠. 그건 왜냐? 힘은 각자 강하지만 우리 생명체들은 전부 별성에 있으니깐 말입니다. 그래서 별이 떨어진다, 별이 떨어지면 이승에서 사람이 죽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에 어떠한 잘못된 마음들이 한데 모인다면, 지금도 한데 모여서 이렇게 덩어리가 져서 돌아다니는 그러한 별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뭐냐? 우리가 여기 세상에서 살면서 깡패나 강도나 도둑, 마적 이런 거와 똑같은 얘깁니다. 또 이걸 비교해서 한번 말하죠. 여간 무서운 얘기가 아닙니다. 어떠한 공직에 있어서 사람을 너무 못살게 자꾸 일을 저지르니까 추방을 시켜서 내쫓았단 말이야.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앙심을 먹고서는 나쁜 놈들을 전부 모으는 거야. 오년이 되던 십년이 되던 모아가지고서는 단결이 돼가지고는 사람을 해치는 거야.
그와 같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마음들도 악이 있고 선이 있다면 악이 그렇게 선을 해치기도 해. 악과 선을 다 놓은 상태에는 하나의 주장자가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이시고) 있는데, 그 주장자 밑에서 악과 선을 다루고 일하는 그 주모자를 해치게 되면 혼란이 오거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령들의 싸움이 일어나죠. 그러면 소소한 우리 백성들이 손해를 보는가 하면, 정말 이 별성에서 싸움박질이 난다면 이거는 무슨 조그마한 하나만 잘못 돌아가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피해가 있단 말이야. 마음세계에서 싸움이 나면 어떤 때는 파산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라죽기도 하고, 굶어죽기도 하고, 화산이 일어나서 죽기도 하고, 물로 인해서 죽기도 하는 변화가 생기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혼란을 정돈하고 잘 이끌어 나가려면 우리 한국에서도 대인이 있어야 되지 않나? 그래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으로써 경제난을 비롯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이 혹성 하나에 소관된 문제입니다. 세계를 세계라고 하지만 구정토에서 요거 하나 소속되어 있는 거와 똑같은 얘기입니다. 구정토에 소속돼 있는 거와 똑같고 구정토는 또 은하계에 소속돼 있는 거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마음은 직접 통합니다, 이 불성 자체가.
옛날 얘기 한마디 하죠. 옛날뿐만 아니라 옛날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시고 지금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시고 잘 파악해서 들으세요. 한 사람이 훈련대장으로서 권위가 당당하고 무관으로서는 조금도 손색이 없어 왕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권력은 있으나 마음이 지혜롭지 못하고 너무 경솔하고 그래서 사람을 많이 죽였어. 삼족을 멸하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재산을 뺏기도 하고 부모에게도 효도가 없어, 또 형제에게도 아름다운 마음이 없고 지혜롭게 이끌어나가지를 못했어.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남한테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어.
어느 날은 말을 타고 사냥을 하러 나갔는데 스님 한 분이 절 지을 돈, 시줏돈을 짊어지고는 끙끙하고 올라가는데 도둑들이 들이덤벼서는 스님을 죽이고 돈을 뺏으려고 하니까, 그걸 물리치고 스님도 살리고 돈도 빼앗아서 그 스님에게 다시 주었단 말이야. 그러고는 후미진 데 혼자 다니시지 말라며 잘 보좌해서 올려 보내곤 말을 타고 다시 내려왔단 말이야. 그래 그 스님은 무사히 절에 도착해서는 시줏돈으로 절을 잘 지었지. 자기 생전에는 그거 한 가지밖엔 잘한 게 없어, 자기가 나중에 늙어가면서 생각을 하니까. 그리고 모든 게 자기한테 조건이 불리해. 그런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다가 이 어른이 죽었단 말이야.
죽었는데, 독사지옥으로 떨어졌어. 독사지옥으로 떨어졌어도 그냥이나 놔뒀으면 좋겠는데 그때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산돼지들이 됐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하는 소리, 이 소릴 잘 들어요. 만약에 그 사람이 죽였다고 해서 원망을 안 했다면, 자기가 이 세상에 났으니 그렇고, 자기가 지은 인연이라 그렇고,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렸으면 산돼지로도 되지 않았을 텐데, 이건 앙심을 먹곤 잔뜩 이를 가니까 산돼지밖에 될 수가 없거든.
한쪽은 산돼지가 됐고 한쪽은 독사지옥으로 떨어졌는데 아, 독사지옥으로 떨어져서 오백년을 지내도 독사지옥에서 벗어날 길이 없거든. 그냥 그 소굴 속으로 들어가면 그거 다 업식으로 되어 있는 거니까, 촉각이나 시각으로나 볼 수가 없단 말이야. 심안의 눈이 있어야 보지. 그러니 이게 독사뱀이 둘이 사랑을 하는지 사람이 사랑을 하는지 몰라. 자기 모습이 흉악한지 자기한테 독이 있는지 그것도 몰라. 그러고선 그 속에서 또 낳게 되고, 죽으면 또 뱀이 되고, 잡아먹히고, 또 쫓기고 밟혀죽고 찢겨죽고 이렇게 고난을 받고, 자식이 찢겨죽게 되면 또 애미나 애비가 그냥 독을 품고선 쫓아다니고 그러다 보면 자식은 죽고 이렇게 애를 말리면서 살기를 오백년을 살았다 이거야.
오백년을 살다보니까 하루는 어느 결에 새끼들을 오물조물 낳아놓고는 다복하게 음식을 먹는데 웬걸, 산돼지들이 약초 뿌리를 패먹느라고 그 땅을 막 파헤치는 동안에 뱀 소굴이 모두 벌겨졌단 말이야. 그게 원수로다가 그렇게 됐으니까 이를 갈면서 너 잘 만났다 이럭하고선 전부 죽였단 말이야. 전부 죽고 나서 독사, 즉 남편이 말이야, 자식, 부인 다 죽이고 자기도 죽어서 애처롭게 떠억 보니까 기가 막히거든. 기가 막혀! 영이 돼서 보니까 말야.
살 길이 없나 하고 휘적휘적 보다가 이제는 살모사 굴로 들어갔다고. 그게 또 우연히가 아니야. 자기가 한 것대로 길을 받는 거지. 왜냐하면 그것이 안에서 다 업식으로 만나서 업보로 인과로 됐으니까 자기를 끌고 간다는 게 나쁜 데로만 끌고 가는 거지. 그래 거기에서 살모사로 태어나서 자라가지고 장가를 들었단 말이야. 장가를 들었는데, 살모사는 새끼를 낳으면 애비는 능구렁이가 되고, 살모사 새끼들은 애미를 잡아먹어야 구렁이로서의 모습을 바꾼다 이런 소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여러분이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상관이 없어. 그러니까 고것만 잘 들어요, 인과에 대해서.
그래서 살모사 속에 들어가서는 떠억 장가를 들어서 자식들을 낳아놓고 보니 아주 재롱도 잘 부리고 귀엽고 좋거든. 그런데 어느 날 오몰쪼몰한 자기 새끼들이 제 어미를 잡아먹는단 말야. 먹고 자라. 이 노릇을 어떡합니까? 자기는 그런 걸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는 거야. 그래 가만히 보니 그 애미가 이 목줄기의 독을 팍 없애면서, 요즘으로 치면 그게 마취나 한가지지. 그 독을 딱 빼버리고 쫙 드러누워 있으니까 아 그냥 새끼들이 그저 너도나도 뜯어먹고는 또 자라요. 그렇게 뜯어먹는 그 광경이라니! 뼈다귀만 남겨놓고 다 뜯어먹고는 뼈다귀는 뼈다귀대로 개미 떼들이 또 와서 뜯어먹고 가져가는 그 광경! 그거를 다 보고 난 뒤에야 이제 그게 능구렁이가 된대요.
그걸 다 보고 난 남편은 너무 허무해. 너무 기가 막혀. 그래서 슬슬 나왔어요. 나와서 어느 풀섶에 처억 기대서 강을 내려다보면서 너무 기가 막혀서 엉엉 울고 있었어요. 울고 있는데 울고 있는 소리를 그 스님이 들었어요. 오백년이 지나고 벌써 십만년이 지났다는 얘기야. 십만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뱀 생활을 한 거야. 그러니깐 그 소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지. 이거 거짓말로 알아들어서는 안 돼요. 진짜 지금도 그래요. 뱀뿐이 아니에요. 어떤 것이 쥐새끼로 들어갔다면 쥐새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은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쥐새끼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걸 아셔야 돼요.
그래서 스님이 도솔천(兜率天)에서 열반을 하시고 도를 통하시고서 저 도솔천의 연화장불(蓮華藏佛)이 돼 가지곤 터억 보니까 아, 그 뱀에 연관이 돼 있거든. 우는 소리가 들린단 말이야. 왜냐하면 그때 살려준 그 고마움 때문에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 보니깐 아하! 이거 그때에 인연이 이제서야 참회를 하고 허무감을 느끼고 생에 대해서 후회를 하니 참…. 그러니까 그 소리가 이제 들린 거지. 그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얼른 들렸을 텐데 그전엔 아주 좋기만 하고 그게 사는 걸로만 알았으니까 뉘우치지 않는데 스님한테 들릴 리가 있나요. 그래서 그 소릴 듣고 옥황상제한테 한 찰나에 연락을 해서 참, 그 인연을 제도하러 내려갔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 구렁이가 앉아서 울고 있는데 말이야, 훈련대장으로 있을 때에 그 밑에서 사람을 끌어오고 죽이고 재산 뺏고 그러던 그것이 두꺼비가 돼가지고선 눈물을 흘리면서 자꾸 뱀 앞에 와서 약을 올리는 거야. 그런데 이 뱀은 그 사연을 몰라. 두꺼비가 계속 뱀을 놀리고 있는데 어느 스님이 터덜터덜 오시거든. 오시니까 거기서 터억 소리가 나는 거라, 이 뱀이 그 소리를 들어, 인제. 두꺼비도 듣고 뱀도 들어.
“너희 둘 잘 만났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이렇게 만난 것도 과거로부터의 인연이니라. 너희들은 악행을 너무 저질러서 만남도 이러한 것이니라. 저 두꺼비도 본심은 착한데 너의 말을 듣고 일을 저질렀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거니까 네놈이 더 잘못했어. 너는 나를 한 번 살려준 것밖에는 선행한 게 없어. 그러니 그렇게 해서 이 두꺼비….” 그래 그런 설법을 쭈욱 했어. 그러니까 그만 뱀이 우는 거라. 울면서 두꺼비한테 하는 소리야. “만약에 내가 너를 잡아먹으면 내 몸은 그냥 버리고 나는 빠져나갈 수 있지만, 너는 내 몸에 의해서 몸이 두꺼비로 다 화(化)하게 되니 너는 두꺼비를 또 벗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나한테 이러지 말라.” 하니까, 그 스님이 하는 소리가 이렇게 말을 했지, 뱀더러.
“네가 저지른 거니까 빨리 두꺼비를 삼켜라. 그러면 내가 인도를 할 테니 요 들판만 내려가면 암자가 있는데 거기 큰 솥 걸어놓은 데 그 아궁이에 오늘 밤에 들어가 있으면 내일 아침에는 거기다가 불을 지필 테니 절대로 뜨겁단 말 하지 말고 아예 그냥 몽땅 타 없애라. 던져라. 네 몸뚱이를 하나 던지면 두꺼비도 살고 너도 사느니라. 그래서 인도환생을 하되 그때는 인간으로 태어나 나쁘게 살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라. 십만년 만에 인간으로 도로 갖다놨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하기 달렸다. 나는 그 은혜로 인해서 절을 짓고 내 목숨이 살고, 내 목숨이 살았기에 도를 이루었고, 도를 이루었기에 네 울음소리를 들었느니라. 그러니 그렇게 알고 몸을 던지는 것이 네가 빠져나갈 길이니라.” 그러거든.
그래서 뱀은 두꺼비를 냉큼 집어 삼키고서는 스님을 따라가는 거야. 따라가서는 다른 사람 몰래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꿈벅꿈벅거리고 가만히 있으니까 몸이 갈갈이 찢기는 것 같단 말이야. 두꺼비는 독이 있어서 먹으면 그냥 죽어서 그게 뼈 마디마디마다, 즉 말하자면 썩는 대로 두꺼비가 돼요. 그 독이 퍼지니깐 얼마나 아픈지 비꼬곤 그냥 있어도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러고 있는데 다음날 아침 어떤 스님이 와서 불을 지피거든. 불을 지피니 얼마나 죽겠느냔 말이야.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인도환생을 못 한다는 말에 그냥 꾹 참고 그 고비를 넘겨서 인도환생을 했대요. 그 뒤는 뭐 또 자기 할 탓이지만 말이야, 도로 갖다 놨으니.
그래서 우리의 이 몸속이라는 자체가, ‘천상 인간도 벗어나야 된다.’ 하는 소리는 뭐냐 하면 사왕천(四王天)의 천상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이것도 벗어나야 된다. 왜냐하면 선이라고 해서 선은 짓되 악은 놔라 이러는 게 아닙니다. 선으로서 선을 짓게 되면 선으로 가다가 악을 또 지을 수가 있어. 그렇기 때문에 미(迷)해질 수가 있고 길지가 못해. 또 한 점은 선과 악은 다를 수가 없어. 또 한 점은 영령들과 인간 산 사람들과는 또 다를 수가 없어.
그러니 모두 놔라 이거예요. 모두 모두 맡겨 놔라 이거야. 놓으라니까 무슨 놓을 게 있어서 놓으라는 게 아니라 그대로 믿고 거기에서밖에는 해결 못하고, 거기에서밖에는 감사함을 주지 못하고, 거기에서밖에는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하고, 거기에서밖에는 지혜로운 마음이 생겨서 모두 품안으로 안을 수도 없고 지혜롭게 해나갈 수 없다, 거기밖에는.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은 거기밖에 없다 하고 믿고 나가라 이거지, 그것이 놓는 거라고.
그것이 놓는 거기 때문에 한 번 놓고 두 번 놓고 자꾸자꾸 놓아 들어가면 업보로 뭉쳐진 이 중생들이 다 그냥 보살로 화해 버려. 그러니 얼마나 편안하니 좋습니까. 거기에서 호법신(護法神)도 생기고, 수호신(守護神)도 생기고, 화신(化身)도 생기고, 법신(法身)도 생기고 모두가 수효가 없이 생기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좋으냐고요. 가정이 화목해지고 하는 일마다 귀인이 생기고 발이 넓어지고 속의 모든 두려움이 없어져 떳떳해지고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 이 공부는 필수적으로 해야 된다는 문제죠.
그냥 묵묵히 일체를 나와 같이 보는 마음으로만 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실천이 되는 거죠. 우리가 공부, 공부 하지만 사실 공부라는 이름도 붙이지 말고, 지금 바깥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 그건 불쌍한 게 아니라 애처롭습니다. 여러분은 산 사람, 산 물질만 봐도 애처로운 일이 많은데, 죽은 영령들이 부모 자식을 위해서 자기를 던지는 마음, 애처롭게 끌고 다니는 그 마음, 세상에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습니다. 인연이 뭐고 사랑이 뭐기에, 자식이 뭐고 부모가 뭐기에, 남편이 뭐고 아내가 뭐기에 그렇게들 인연줄이 질기고 질겨서 그걸 놓지 못해 붙들고, 애처롭게 피를 흘립니까.
그러니 사람 사람이 누구나가 몰라서 그렇지 여기서도 살고 있고 저 별성에도 살고 있다. 여기 모습대로 거기도 그 모습을 가지고 사는데 그건 화신(化身)입니다. 여기는 이것이 육신이지만, 그 모습들은 화신으로서 모두 보현보살(普賢菩薩)로 화해서 영계들이나 산 사람들이나 다 보호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서 화(化)해서 직속 왕래를 해보세요. 얼마나 떳떳한가? 그런 일이 어디 있을까? 이러죠. 그런 일이 왜 없습니까! 빛보다 더 빨리 왕래를 하는데. 그러니 여러분은 기복으로만 만날 빌고 “아이구, 나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제발 좀 이러지 말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어차피 한 번 죽을 거 뭐 또 죽을까봐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를 씁니까?
나는 이날까지 나 살려달라고 빌어본 예가 없어요. 항상 그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오직 팔랑개비대만 쥐고 다녔다고. 그게 돌아가든 안 돌아가든 나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 대만 쥐고 다녔으니까. 그러니까 우선 내가 대를 쥐면 나한테도 바람도 있지. 지수화풍이 다 내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건 저절로 돌아갈 거라고. 나는 그 대만 붙들고 다녔기 때문에 내 육신이 고통을 받든지 안 받든지, 죽든지 살든지 상관을 안 했으니까 고통이 없었다 이 소리예요.
우리도 악과 선을 다 놓을 수 있다면 또는 집안에서 병 문제가 생겼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죠. 어떤 사람이 엊그저께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님, 지금 간암으로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다는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겠어요? 그래서 여기가 병원이냐고, 의사가 있느냐고 그러니까, “지난번 여섯달 전에도 우린 그렇게 해서 스님한테 말씀을 했더니 스님이….” 난 모르는 일인데 하니까, 스님이 “아휴, 나아야지. 자식들이 어린데 나아야지.” 했대요, 글쎄. 그랬더니 나았대요.
그러니까 지금도 그게 문제라고요. 나한테 물어서 되는 줄 아니 이걸 어떡하면 좋아요? 물론 ‘나무때기 시집을 보내느니 내가 가지.’ 할 때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수 해를 그렇게 원주에서 겪어봤기 때문에 병만 고쳐주는 게 여러분을 살리는 길이 아니야. 그건 잠시 잠깐 병이 나았으니까 잘 살겠지만 영원토록 끊임없는 이 진리 속에서 여러분은 그 업보를 스스로 녹이지 않는다면 항시 그런 게 닥쳐오니까 말이에요. 잠시 잠깐 그렇게 해줬다고 나한테 고맙다고 그런 소리도 듣기 싫다고. 응! 여러분을 이끌어서 여러분이 진짜로 어딜 가나 하다못해 돼지 새끼, 벌레 새끼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거지, 누가 나를 믿으랬습니까? 나는 한 번도 그런 말 한 예가 없어요. 자기 주인공, 즉 자기를 믿으라고 했지. 그저 생각이 없는 짐승이나 생각이 있는 짐승이나, 생각이 없는 영계나 생각이 있는 영계나 그 참혹하고 애처로운 영령들, 그 애처롭고 참혹한 우리 산 넋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또 영령이라고 하는 것은 도심이 아닙니다. 그건 아셔야 됩니다. 영, 혼, 넋 이렇게 부르죠. 이런 거는 업식으로서 많이 살던 습이 한데 뭉쳐진 그 덩어리라, 어떠한 업식이야, 그 업식이 영령들이야, 그게 다. 그러니 중생이라 이 소리지. 그 참혹한 꼴을 보세요. 내용적인 것은 다 말을 못 하지만 그거 한 가지만 보더라도 사생(四生)의 종류, 또 용도대로 그러한 문제가 덩달아 일어나고 있으니 사람만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사람은 갖추어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게 잘못된 건가, 저게 잘못된 건가, 이렇게 보기라도 하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업식만 가지고 있는 그런 중생이라면 이다음에 죽어서 사람으로만 태어나라는 보장을 누가 하며, 또는 사람 속에서도 업식이 뭉쳐진 것이 사람인데, 사람 이 자체가 바로 중생들의 소굴이거든. 여기에서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참인데 사람도 못 된다면 부처 될 일은 까마득하지 않으냐 이거야. 부처의 뜻을 알려면. 그러니 누가 보장을 못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1988년 12월 18일 정기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6-12-16 오전 11: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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