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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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얼굴가난 (上)/원철 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칠십을 한참 넘긴 그래도 곱게 늙은 노보살님이 어여쁜 20대 손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난 가난해도 ‘얼굴가난’만큼 서러운게 없단다.”
지금도 그런대로 봐 드릴만한 얼굴이다. 젊을 때는 인물값도 했을 것 같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렇다면 현재의 저 차분한 얼굴은 기도수행의 결과란 말인가? 그 시절에는 성형외과도 없었을 텐데?
이른 바 ‘얼짱 시대’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몸짱’까지 함께 요구해온다. 그 와중에 ‘못생긴 건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할 수 없다’는 새로운 유행어까지 횡행한다. 하긴 그 말이 맞긴하다. 얼굴이야 부모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만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순전히 자기책임이기 때문이다. 준수한 용모와 균형 잡힌 건강한 몸매를 갖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큰 복임에 틀림없다.
어찌 보면 금생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삼생에 지은 복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불가에서는 어느 사찰 할 것 없이 모든 주지스님들은 단월들에게 꽃공양을 시킬 때 언제나 “다음 생에는 더욱 미인으로 태어나라”는 덕담을 빠뜨리지 않는다.
젊은이들한테 자주 듣는 소리인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내지는 “필이 꽂혀야죠” 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거개가 그저 껍데기에서 받은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게 없다면 뒷 만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것을 탓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법문삼아서 ‘고운 마음씨’ 운운하는 말들이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고 또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相)이 상(相) 아님을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상(相)을 볼 수 있다는 도리를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 절집안이 가진 딜레마이기도 하다.
순임금은 키가 매우 작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성군의 소리를 오늘까지 듣고 있다. 현대심리학에서도 키가 작은데서 오는 열등감을 ‘나폴레옹 콤플렉스’ 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나폴레옹 역시 단신이었다는 말이 된다. 공자는 머리통이 언덕같이 평평하게 생겨 공구(孔丘)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각이 진 머리 땜에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설사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신체적 콤플렉스에서 자유롭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고서 인류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하고 있으니 범부와는 다소 차별성을 가진다.
혜능선사 역시 등신불을 보면 인물이 별로였고 방아를 찧을 때 몸무게가 모자라 돌을 허리춤에 찼다는 것으로 보아 덩치도 왜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노스님들은 인물 없는 제자들을 보고는 ‘나한같다’는 표현을 종종 하시곤 한다. 나한전에 가보면 정말 개성 있게(?) 생긴 군상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얼굴모양보다는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수행결과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그걸 칭찬인줄 알고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심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닌 것이다.
3조 승찬 스님은 풍병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적두(赤頭)찬’ 즉 ‘대머리 승찬’으로 불렸다. 도안법사는 얼굴이 검어서 스스로 ‘흑두타(黑頭陀)’임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교단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령신찬 선사는 목욕탕에서 스승의 등을 밀어주면서 “법당은 좋은데 영험이 없다”고 하여, 허우대는 멀쩡한데 수행력이 받쳐주지 않고 있음을 비꼬고 있다.
아난존자는 매우 미남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다정다감하여 비구니 그리고 우바이들에게 인기가 그만이었다. 두타행을 일삼는 허수구레한 늙은 가섭존자에게 ‘찍힌’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될 것 같다.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수려한 모습은 남들로 하여금 신심을 더욱 내게 하고 불법에 귀의토록 하는 유효한 수단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처럼 좋은 점이 있으면 그 못지않게 음지도 있는 법이다.
2006-12-16 오전 11: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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