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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스스로 복이 없다고 생각되면/원철 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생활 속의 자잘한 일화들을 편지형식으로 투고하면 읽어주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소소한 일들은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중 어떤 중년 여인이 최근 참석한 여고동창 모임에서의 일을 소개한 편지가 귀에 들어왔다. 편지를 쓴 이는 아줌마로, 여고시절 친했던 친구와 룸메이트가 되었는데 친구는 미혼의 노처녀였다. 룸메이트로서 아줌마는 부지런히 수선을 떨며 방청소를 하는데 고소득 전문직의 그 ‘화려한 싱글’은 꼼짝도 않고 빈둥빈둥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는 것이다. 참다가 참다가 돌려서 한마디 했으나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여전히 별 반응이 없었다는 거다. 이후 다시는 그 친구와 같은 방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으로 편지는 마무리를 지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결국 ‘이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밖에 없는 삶이기는 하다. 그 까닭은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는 선종에서도 화합을 강조했다. 화합을 깨는 행위를 오역죄의 으뜸으로 하였고 오역죄는 바라이죄에 버금 갈만큼 큰 벌로 다스렸다. 또 이타행을 강조했다. 이타행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어려우니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바꾸었다. 그리하여 싱글들이 가진 근본적 ‘이기성’을 충족시키면서 주변도 함께 살필 것을 강조했다. 또 그런 행동은 복으로 자기에게 되돌아온다는 인과론을 폈다.
백은혜학(白隱慧鶴 1685~1768)선사는 힘이 세고 덩치가 우람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도반 세 명과 함께 길을 가는데 한 도반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그에게 무거운 걸망을 맡겼다. 선사도 오래 걸어 이미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급기야 그 옆 도반 역시 또 짐을 부탁하였다. 그는 모두에게 ‘너무 이기적이다’ 라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자기 것을 포함해 세사람 짐을 지고서 걸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온몸에는 땀이 비 오듯 하였다.
이윽고 해변에 도착하여 배에 오르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짐을 베개삼아 아무렇게나 옆으로 누워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얼마동안 잤을까. 눈을 떠보니 배는 정박한 그대로였다. “사공! 왜 배를 출발시키지 않는 것이오?”
“뭐라구요? 이 지독한 양반아! 어젯밤 바다에 돌풍이 일어나서 열 척 가까운 배들이 모두 난파되었고 이 배만 겨우 살아남았소. 그것도 승객 모두가 일심으로 기도를 하여 겨우 이곳에 피난할 수 있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오. 내가 30년 넘게 사공생활을 했어도 당신처럼 대담하고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았소.”
이 말을 듣고 놀란 선사가 주변을 돌아보니 도반을 포함한 승객들이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배 안은 구토한 오물로 인해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였다. 선사는 합장하며 간밤의 고난을 면하게 해준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자 이를 본 사공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 양반아! 지금 기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소?”
선사는 나중에 이 일을 제자들에게 들려주면서 작복(作福)을 강조하였다.
“음덕(陰德)이 있으면 양보(陽報)가 있는 것을 나는 그 때 실제로 체험하였다.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좀 귀찮고 무거웠지만 그 짐을 들어준 공덕이 이렇게 나타나게 되었다는 거다.
노처녀는 싱글을 면하고 싶으면 부지런히 청소 요리 등 헌신적인 아줌마 업을 지어야 한다. 누구나 스스로 복이 모자란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복을 지을 일이다. 결국 ‘이타(利他)가 곧 자리(自利)’이기 때문이다.
2006-12-11 오전 11: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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