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경제 행위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학은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경제학은 우리 삶의 모든 과정에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물질적이거나 쾌락적인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추구할 때 진지하게 경제학의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삶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단지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것만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 종교적인 것 등 한층 치열하게 추구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신적, 종교적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도 경제학은 여전히 크나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적, 종교적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과정에서는 갑자기 비합리적으로 되고 경제학에서 가져올 수 있는 지혜를 필요 없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해를 끼친다고 집어 던져 버린다.
정신적, 종교적 목표를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다. 불도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가 세간의 경제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도 있다.
경제학이 쌓아올린 것은 세간의 지혜이다. 반면 불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출세간의 지혜이다. 출세간의 지혜는 세간의 지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고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시비를 가리자면 세간지와 출세간지가 어찌 분별되는 것이겠는가. 세간지와 출세간지는 상호 원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불교가 출세간의 지혜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제학과 같은 세간의 지혜를 애써 무시한다. 나아가 경멸하고 비하한다.
우리는 세간에 살면서 출세간을 지향하기 때문에 더욱더 세간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간의 올바른 삶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출세간으로 갈 자격을 갖추기 때문이다. 세간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출세간을 경영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국 불교계는 현재 여러 가지 면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상당 부분 경제학적인 사고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적 사고와 지식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기는 하나 세간지로 배척받아 중용되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몹시 마음이 아프다.
성철 스님이 노년에도 현대물리학에 관한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셨다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세속의 오염을 경계하셨던 스님이 입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순간까지도 세간지를 얻기 위하여 노력해왔다는 사실은 세간지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물론 경제학은 우리가 피안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나룻배에 불과하다. 어느 곳이 피안인지를 우리에게 가리켜주지는 않는다. 경제학은 지옥으로 이끌어주는 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안으로 정확히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한 경제학은 어려움에 처한 우리 한국 불교계에 천군만마의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