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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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참아내는 마음이 없다면/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앞장에서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허물이며 가장 나쁜 일이므로 온갖 장애가 생긴다고 하였다. 올바른 법을 듣지 못함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장애, 삿된 소견을 좋아하여 험하고 나쁜 길로 떨어지는 장애, 몸에 병이 많이 생겨 부처님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장애, 지혜가 모자라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와 같은 것들을 성낸 과보로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를 내지 않으려면 성내는 마음을 돌이켜 ‘참아내는 마음’이 필요하다. <선가귀감> 48장에서는 ‘참아내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수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若無忍行 萬行不成
만약 참아내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수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여 칼을 들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뛰어가다 멈추기를 세 번, 죽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칼을 거두어 자세히 일의 앞뒤를 알고 보니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세간에서도 “참을 ‘인(忍)’을 세 번 생각하면 죽을 일도 모면 한다”고 한다.
또 “백 번 참고 사는 집에 큰 평화와 행복이 깃든다[百忍堂中 有泰和]”라는 말도 있다. 중국 당나라때 장공예(張公藝)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자손들이 한 집에 수백 명 살고 있으면서도 온 집안은 언제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였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온 지가 벌써 아홉 대물림을 하였다. 그 모습에 감동 받아 많은 사람들이 비결을 장씨에게 물었다. 장씨는 말없이 참을 ‘인(忍)’ 글자를 백 번 써 보였다고 한다. 이 ‘참아내는 마음’이야말로 아홉 대에 걸쳐 모든 가족들이 한 집안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법이었다.
원문의 인행(忍行)은 인욕(忍辱)의 행(行)으로서 어떤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을 내지 않고 참는 마음이다. 보통 인욕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 ‘복인(伏忍)’은 어떤 곤란이나 역경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이 남아 있지만 안으로 숨기고 바깥으로 그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이다. 둘째 ‘신인(信忍)’은 ‘인욕’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따르는 것이다. 셋째 ‘순인(順忍)’은 깨달음의 길을 따라 가며 모든 역경을 참아내고 생멸이 없는 부처님의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넷째 ‘무생인(無生忍)’은 모든 망념이 사라져 모든 법이 다 생겨날 것이 없음을 앎으로써 ‘인욕’ 할 대상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적멸인(寂滅忍)’은 모든 망념이 다 끊어지고 사라져 텅 빈 충만 그 자체로서 맑고 깨끗하여 고요한 마음자리이니 ‘인욕’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깨달음’으로서 부처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行門雖無量 慈忍爲根源 忍心如幻夢 辱境若龜毛.
수행 방법 셀 수 없이 많이 있어도 / 자비인욕 그 마음이 뿌리가 되니
참는 마음 꼭두각시 꿈을 꾸는 일 / 욕을 보는 이 현실은 거북이의 털.

‘자비(慈悲)’에서 자(慈)는 온 중생을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여 모든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고, 비(悲)는 중생의 근심과 괴로움을 안타깝게 여겨 그 근원을 뿌리 뽑아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는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보통 자비는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중생을 인연하여 베푸는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이니, 모든 중생을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베푸는 자비로서 범부들이 일으키는 자비이다. 자비심을 일으키는 사람한테 중생이다 부처다 하는 차별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 번뇌가 아직 숨어 있는 수행 초기단계의 자비이다. 둘째 법의 이치를 인연하여 베푸는 ‘법연자비(法緣慈悲)’이니, 모든 법의 성품이 공(空)임을 깨달아 무아(無我)의 이치로써 베푸는 수행 중간단계의 자비이다. 셋째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도 베푸는 ‘무연자비(無緣慈悲)’이니, 온갖 차별을 멀리 떠남으로써 분별이 없는 마음에서 베풀어지는 절대평등 부처님의 자비이다. 이 자비는 범부나 성문 연각 보살이 일으킬 수 없는 자비이므로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도 한다.
인욕은 어떤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을 내지 않고 참아내는 마음이다. 마음을 닦아 ‘깨달음’에 들어가고자 수행하는 방법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도 자비와 인욕이 그 근본이 되어야 올바른 수행이 된다.
부처님의 자비와 인욕은 주객(主客)이 사라져 텅 빈 충만 그 자체로서 맑고 깨끗하여 고요한 마음자리이다. 이 자리에서는 주(主)인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있지 않으므로 ‘나’라는 주체로써 ‘참아내는 마음’이 있을 수 없고, ‘모든 경계’가 사라지므로 객(客)인 어떤 경계로서 곤란이나 역경이 있을 수 없다. 이 자리에서 ‘참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꼭두각시가 꿈을 꾸는 것과 같고, 어떤 곤란이나 역경으로서 고통을 겪는 이 현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거북이의 털과 같다. 언제나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다면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이 오더라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주객이 사라진 이 자리는 옳을 것도 없고 그를 것도 없으며, 낮은 곳도 없고 높은 곳도 없다. 모든 것이 한마음으로써 오가는 인연에 집착 없이 세상을 통찰해 부처님 삶으로써 어떤 곤란이나 역경에도 영향 받지 않는 것이 ‘적멸인(寂滅忍)’으로서 올바른 ‘인욕’이다. 이런 지혜가 생긴다면 욕심내고 성낼 마음이 있을 수 없다. 욕심이 없고 성내는 마음이 없이 모든 경계에서 인연 따라 중생을 자식처럼 아껴주고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이 부처님의 무연자비다. 중국의 부대사(傅大士 )는 게송으로 말한다.
忍心如幻夢 辱境若龜毛 常能作此觀 逢難轉堅牢 無非亦無是 無下亦無高 欲滅貪瞋賊 須行智慧刀
참는 마음 꼭두각시 꿈을 꾸는 일 / 욕을 보는 이 현실은 거북이의 털 / 언제나 이런 경계 볼 수 있다면 / 어려움이 오더라도 두려움 없다.
그른 것도 옳은 것도 없는 것이고 / 낮은 곳도 높은 곳도 없는 것이니
욕심내고 성난 마음 없애려 하면 / 모름지기 바른 지혜 닦아야 하네.
2006-11-27 오전 11: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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