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도 지났다. 가을도 없이 겨울이 와버렸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날 만큼 여름은 길고 가을은 짧았다. 그 와중에서도 붉은 잎은 바삐 온산을 물들인 후 이제 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고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했든가? 하지만 어김없이 이듬 해 봄에는 다시 새잎이 돋는다. 그 잎이 그 잎은 아니겠지만 범부들은 그 잎이 그 잎이라 여기면서 영원함을 꿈꾼다.
부처님께서는 100년을 사바세계에 머물 인연이었다. 그런데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이유는 당신이 누려야 할 20년 복을 후학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 복으로 제자들은 수행하고 불사하면서 2600여년을 살아왔으니 그야말로 무량한 복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선어록에서는 ‘세존이십년유음(世尊二十年遺蔭)’ 즉 세존께서 남겨놓은 이십년 그늘이라 했다. 선사들은 이를 ‘큰나무 그늘이 강동 삼백리를 덮는다’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도 했다. 받아야 할 업과 누려야 할 복은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 낭야광조(瑯 廣照)선사 문하의 귀종가선(歸宗可宣)과 해인초신(海印超信)의 행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가선선사가 살고 있던 남강 땅의 태수는 스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러다가 마침내 개인적 허물을 가지고 법적으로 문책하고자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절친하게 지냈던 곽상정거사에게 서신 겸 유서를 남기고 입적해 버렸다.
“나에게는 다하지 못한 세상인연이 6년 더 남았는데, 오늘 이 핍박을 견딜 수 없어 그대의 집안에 의탁하여 다시 태어나고자 하니 잘 보살펴주기 바라오.”
그날밤 곽거사 부인의 꿈속에 가선선사가 어렴풋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손으로 저어하며 소리쳤다.
“여긴 스님께서는 오실 곳이 아닙니다.”
거사는 잠꼬대를 하는 아내를 깨워 그 연유를 물으니 꿈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불을 켜고서 아내에게 가선선사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이후 태기가 있었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 이름을 선노(宣老)라고 지었다. 겨우 첫돌이 지났는데 옛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세 살이 되던 해, 백운수단(白雲守端)선사가 가선의 환생을 확인하고는 공부경지도 같이 따라오는지 궁금하여 그걸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 때 마침 문밖에 수레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백운이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선노는 수레 미는 시늉을 했다. 다시 물었다. “수레 지나간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평지에 한 줄의 도장이 패이지.” 그렇게 선문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6살이 되자마자 아무 병 없이 죽어버렸다. 그가 유서에서 말한 다하지 못한 인연 6년을 이렇게 채웠던 것이다.
해인초신 스님은 80여세를 살았다. 방어사(防禦使) 주공(朱公)집에서 공양청을 자주 받았다. 어느 날 주공이 물었다. “다음 생에는 저희 집안에 태어나시지 않겠습니까?”
스님께서 미소로 승낙한 후 절에 돌아가더니 열반했다. 이내 그 집안에서 딸이 태어났다. 그 이야기를 원조종본(圓照宗本)선사가 듣고서 찾아갔다. 태어난지 한 달된 아이를 안고 나왔는데 선사를 보고서 방긋방긋 웃었다. 하지만 종본은 인정사정 없었다. “해인아! 너는 틀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종본선사는 해인스님이 살만큼 살았는지라 더 살아야 할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에 끄달려 다시 태어난 것을 꾸짖은 것이다. 그러나 가선 스님은 남아있는 인연 6년 때문에 다시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갔다. 업(業)과 인(因)의 법칙에서 누군들 한 치라도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가끔 그 원칙을 어기고 따로 튀어나온 놈이 있을 경우 가차없이 할을 내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