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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람 우울한 사회/김연옥(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8세기 실학의 거두 박지원, 영화배우 이은주와 장국영, 쇼팽, 고갱, 링컨….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들이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는 점이다. 몇몇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2003년 우리나라의 자살사망률은 OECD국가중 4위였는데, 2006년에는 1위의 불명예를 차지하였다. 자살자의 70~80%는 우울증 증상을 가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 우울증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고생의 40%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다. 최근에는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보도가 연일 빠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흔히들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라는 비유를 하곤 한다. 이 말이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면 적절할 수 있지만,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다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매우 위험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감기로는 생을 마감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우울증은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자기 혐오와 무가치함, 절망감,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자살충동 등이다. 모든 생명체의 본질인 생의 본능을 거스르는 이상한 병이 우울증만큼 위험하고 파괴적인 질병이 또 있을까.
우울증은 흔히 신체적 질환이므로 약물치료를 하면 완쾌된다고들 한다. 신경전달물질부족으로 인해 발생된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의 병이며 사회적 질병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니기에, 실직, 이혼, 입시낙방 등 갖가지 스트레스가 신체의 화학적 균형을 깨뜨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사회적 상황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질병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 우울증과 자살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은 취업난, 입시지옥, 부의 양극화, 고용불안정 등의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 우리 사회만큼 스트레스와 긴장이 높은 사회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울증이 있었던 노인이 ‘아파트 가격은 뛰어라, 나도 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는 사회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울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개인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사회의 적극적인 대처와 개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은 우울증과 자살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6조원이 넘는 사회 경제적 손실을 감안할 때 더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정신건강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개입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일천하다. 선진 국가들이 이미 60, 70년대에 정신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규정한 정신보건법을 제정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1995년에야 비로소 제정되었고, 이 또한 1997년의 IMF위기로 인해 그 실천이 지연되었으며,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조차 2001년에 와서야 처음 실시되었을 정도이다. 가장 일선에서 정신보건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보건센타가 2006년 현재 전국에 137개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작년에 보건복지부는 이 센타를 2008년까지 246개소로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약속대로 시설확충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신보건서비스가 주로 알콜중독, 정신분열증 등 타인공격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질환들을 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증상 자체가 ‘조용’하고 자기공격적인 우울증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울증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며, 지역사회 깊숙이에서 예방을 위한 교육과 홍보가 보다 활성화되어야 하며, 조기발견과 조기개입, 약물치료, 심리상담 등 치료개입의 다각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
2006-11-27 오전 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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