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가 더 많은데도 그 때마다 사람들은 성을 낸다. 그 성내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음속에 ‘나’를 내세워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다’라고 내 위주로 생각의 틀을 짜서 그 틀에 맞는 것은 좋아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싫어한다. 그러다 이 틀이 깨지기라도 하면 불같이 성을 낸다.
성을 냄으로써 오장육부를 바짝 태워 자신의 육신을 파괴하고 주변의 평화를 깨뜨려 모든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어리석은 삶은 ‘나’라는 생각의 실체가 허망한 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선가귀감> 47장에서는 성을 내면 온갖 장애가 생긴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有人來害 當自攝心 勿生瞋恨. 一念瞋心起 百萬障門開
어떤 사람이 해를 입히더라도 그 자리에서 마음을 잘 다스려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 말지어다. 한번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장애가 생기게 되느니라.
부처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성을 내거나 분한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나를 심한 욕설로 모욕하고 헐뜯으며 발로 차더라도 참아 내야만 한다. 그 고비를 잘 넘겨서 참아내는 마음 그 자체가 복(福)이 되고 덕(德)이 된다. 나한테 허물이 없는데도 욕질하고 비방하고 화를 내며 때리는 것은 그 사람의 어리석음 때문이니, 그 어리석음에 일부러 맞서 싸우거나 성을 내고 다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들어있는 <유교경(遺敎經)>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은 성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대의 사지를 마디마디 부러뜨린다 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성을 내거나 원망하지 말라. 또 입을 잘 단속하여 나쁜 말을 하지 말라. 제멋대로 성을 내면 도(道)를 방해하여 공덕을 잃게 된다. 참음으로 얻는 공덕은 참으로 커서 계행(戒行)이나 고행으로 얻는 공덕이 미칠 수 없는 것이니, 화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큰 힘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꾸짖고 욕설하는 독약을 감로수 마시듯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을 낸다면 이 사람은 도(道)에 들어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을 내는 해악은 좋은 모든 법을 파괴하고 드러난 명예를 떨어뜨리니, 지금 사람이나 뒷날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내는 마음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보다 그 해악이 더 심한 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늘 그 마음을 잘 다스리고 보호하여 성내는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된다. 공덕을 빼앗는 도적은 성냄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욕심이 많고 도(道)를 닦지 않아 스스로 제어할 법이 없으므로 그들의 성냄은 용서할 수 있는 것이지만, 출가하여 욕심 없이 도(道)를 닦는 비구들이 성을 낸다는 것은 참으로 옳지 못한 일이다. 성내는 일을 비유하면, 차가운 먹장구름 속에서 벼락 치며 일어나는 불과 같아서 마주 상대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엄경>에서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나쁜 일 가운데 가장 나쁜 일이다”라고 하였다.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一念瞋心起]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허물이며 가장 나쁜 일이므로 여기에서 온갖 장애가 생긴다[百萬障門開]. 이 장애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장애, 바른 법을 듣지 못하는 장애, 나쁜 길에 떨어지는 장애, 병이 많은 장애, 지혜가 모자라는 장애, 삿된 소견이 있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장애,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 불법에 전념하지 못하는 장애”와 같은 것들인데, 이것은 <화엄경>에서 말해 놓은 성냄으로써 일어나는 장애의 일부분을 추려 본 것이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煩惱雖無量 瞋慢爲甚. 涅槃云 塗割兩無心 瞋如冷雲中 霹靂起火來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뇌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잘났다고 우쭐대는 마음을 못 이겨서 성을 내는 일이 그 피해가 가장 극심하다. <열반경>에서는 “날카로운 창이나 예리한 칼로 찌르거나 좋은 약이나 향수를 발라주더라도 두 가지 일에 다 무심(無心) 하라”고 하였는데, 성을 내는 일은 차가운 먹장구름 속에서 벼락 치며 일어나는 불과 같으니라.
모든 번뇌 가운데에서도 성내는 것만큼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바로 해악을 끼치는 일은 없다. 이 성내는 마음은 ‘나’라는 놈이 자신이 잘났다고 우쭐대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는 놈의 실체가 없는 줄 알고 ‘나’를 내세워 생겨나는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날카로운 창이나 예리한 칼로 찔려도 ‘나’라는 것이 없는데 누구를 원망할 것이며, 좋은 약이나 향수를 발라주더라도 ‘나’라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기뻐하고 좋아하겠느냐? ‘시비 분별하는 나’라는 존재가 없으므로 원망할 것도 없고 기뻐하며 좋아할 것도 없는 것이 무심한 것이다.
무심하여 시비 분별이 없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세상이다. 시비 분별이 사라진 부처님 세상에서 성을 내는 일은 먹장구름 같은 번뇌 속에서 벼락 치며 일어나는 불과 같아서 금방 사라지는 허깨비와 같다. 모든 허깨비가 사라진 이 자리는 오직 부처님의 미소와 자비만이 넘쳐흐른다. 부처님의 미소와 자비를 담아서 중국 오대산 중턱의 외딴 암자 금강굴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기도하던 무착(無着 821~900) 스님에게 문수 동자가 들려준 게송이 있다. 이것은 요즈음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여 외우고 다니는 게송이다.
面上無瞋供養具 口裏無瞋吐妙香 心裏無瞋是珍寶 無染無垢是眞常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석정 스님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