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생수(生水)를 마셨으나 끊임없는 호기심과 더 나은 맛에 대한 갈망으로 물에 식물을 첨가해 마시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위는 인류 문화에 있어서 질적인 향상과 다양성을 가져 왔다. 차의 음용ㆍ발달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파, 촉 지역은 차를 처음 음용했던 곳으로 차를 만드는 기술이 차의 생산지역인 양자강 하류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차가 생산되지 않았던 회수이북 등에서는 차를 마시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교통의 발달 특히 대운하의 개통은 남북의 물자 교류뿐만 아니라 생활풍속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음다법(飮茶法)의 확대는 차의 약리적 효과뿐만 아니라 교역품으로서 중요한 상거래의 발달을 가져 왔다. 한편 소수민족들은 서로 다른 음다 풍속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차를 만드는 방법에서 마시는 방법과 의상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찻잎을 가공하는 제다 방법이 많이 개발되었고 그 제다법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변했다.
제다기술, 탐구, 음다 풍속의 기원과 발전은 지방의 풍토와 문화라는 절대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되었다. 제다(製茶)기술은 바로 ‘차(茶)’라는 식물자원을 취하여 문화적인 바탕 속에서 사람들의 미감과 생각이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차는 중국문화 속에서 탄생하여 그들의 풍속과 역사 속에서 유행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차를 광범위하게 사용했으며, 죽이나 탕의 형태인 음식의 일종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즉 초기에 찻잎은 병차(餠茶, 떡처럼 둥글게 만든 것으로 덩어리 차의 형태 )로 만들어 그것을 불에 구운 후 연(硏)에 갈아서 가루를 솥에 넣고 걸쭉하게 끓여 먹었다. 당대에 이르러 병차를 굽고 가루 내어 탕 속에 넣어 끓여 다완(茶婉)에 말발(차위에 뜨는 거품)과 차즙을 골고루 떠서 마셨다.
송대에는 솥에 찻가루를 넣고 끓이는 방법에서 가루를 다완에 넣고 탕수(끓인 물)를 부어 다선(茶 )으로 잘 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형태로 발전됐다. 지금의 가루차를 음용하는 방법은 바로 송대의 음용법이 이어져 온 것이다. 명대에 이르러 송대의 음다법이 소멸되고 산차(散茶) 위주의 음다법으로 전환된다. 이는 천연적인 맛을 즐기려는 음다법의 변용으로,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단차 제조를 폐지하는 조서가 내려지면서 단차의 점다법(點茶法)이 사라지고 포다법(泡茶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포다법은 찻잎을 직접 다관에 넣고 우려 마시는 형태로 오늘날의 음다법과 비슷하다.
차가 약용에서 식용을 거쳐 음용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마시는 행위는 문화적 행위로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차를 만들어 마시는 행위는 인간의 인지와 정서가 풍속에 따라 발전되었으므로 충분한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제다법의 발달은 많은 경험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질 좋은 차를 만들며, 마시는 방법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온다.
차는 본래 쓰고 떫어서 초기의 차가 달콤한 맛의 음료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맛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하며 제다법을 발전시켰다. 처음 물에 찻잎을 넣어 입에 맞는 맛을 추구하기 시작해 여러 번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쓴맛과 떫은맛에 적응하면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이다. 차가 맛있는 음료라고 보는 것은 현대적인의 관점이며 맑고 감미로운 맛의 일상음료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