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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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원철 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흔적없이 그리고 얽매임없이 살아가고자하는 것이 선사들이 원하는 이상적 삶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취를 남기지 않는 이것을 몰종적(沒 迹)이라고 표현하였다.
급기야 이 몰종적은 더욱 승화되어 깨달았다는 의식마저도 전혀없는 참으로 제대로 깨달은 경지를 말할 때 사용되는 선어로 바뀌었다. 그래서 눈곱만큼이라도 아상(我相)을 드러내거나 행동거지를 남들이 알아차리도록 하는 것은 뭔가 좀 덜떨어진 행위로 치부되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짐승이나 귀신의 눈에 띄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우두법융 선사에게 새가 꽃을 물어다주는 것조차 사조 도신 스님이 탐탁지않게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떤 납자가 ‘꽃을 물어다 주지 않는’ 서운한(?) 이유를 물으니 동산(洞山)선사는 ‘온몸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의 눈에 더 이상 우두선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제대로 닦은 선사들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
대선사인 백장 스님께서 어느 날 한밤중에 잠을 깼다. 갑자기 더운 물이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몇 번 나직이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 결제를 하고있는 대중스님들에게 심야에 혹여 누(累)가 될까봐 더 이상 큰소리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누군가가 시자의 방을 두드리며 깨웠다. 그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나 게슴츠레 앉으니 말했다.
“큰스님께서 더운 물을 찾으시오.”
시자가 놀라 벌떡 일어나 재빨리 물을 끓여 큰스님 방으로 냉큼 달려갔다. 백장 스님이 도리어 의아해하며 물었다.
“도대체 이 한 밤중에 누가 물을 끓여오라고 시키던가?”
시자가 이제까지 비몽사몽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결국 수행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구나. 수행을 제대로 했다면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거늘 오늘 나는 토지신에게 내 마음을 들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로구나.”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짢은 마음을 낸 그것이 결국 호법신장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남전선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는 농사짓고 소를 치면서 수행하는 것을 가풍으로 삼았다. 어느 날 선사가 농막을 들르게 되었다. 도착하니 장주(莊主)가 미리 점심을 준비해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하는 거였다. 이에 선사가 물었다. “내가 평소에 농장 출입시 남에게 말하지 않고 다니는데 어떻게 올줄 알고서 미리 공양을 준비했는가?”
“지난 밤에 토지신이 와서 알려주었습니다.”
“아이쿠! 내가 수행의 힘이 모자라 내 마음을 귀신에게 들켰구나.”
토지신을 모셔놓은 해인사 국사단(局司壇)은 예로부터 영험있다고 소문이 나서 인근마을의 주민들에게는 매우 인기있는 전각이다. 외지에 나가있는 사람들까지도 명절에 고향에 오면 국사단을 참배하곤 한다.
어쨌거나 수행자는 ‘신독(愼獨)’해야 한다. 혼자 있을 때도 대중과 함께 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삼가하고 또 삼갈 일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몰종적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당나라 야보(冶父)선사는 흔적없는 삶을 이렇게 시어(詩語)로 묘사하였다.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 달빛이 호수바닥을 뚫어도 수면에는 흔적이 없네.
2006-11-13 오후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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