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애완동물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그리고 애완동물과 관련된 산업도 급성장했다. 또 이구아나, 뱀 등 혐오(?) 동물들을 애완동물로 여기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 애완동물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게 옛날도 아닌 우리의 보릿고개 시절에는 서양 사람들이 애완동물 치장에 돈 쓰는 것을 TV로 접하고는 분개했던 추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웬만한 시골 읍내 거리에는 동물 병원이 있고, 관련 상점도 있다.
동물과 인간과의 인연은 매우 오래 되었다. 아마 가축이 인간 사회에 들어온 것은 수 만 년 전 서로의 필요성에 의해서 야생 상태에서 가축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가축화된 동물들과의 관계 또한 지방마다 독특한 특색이 있다. 중동 지방과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의 유적에서 개(犬)들의 오래된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에서는 소에 대한 숭배가 남다르다. 당시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노동력인 소가 귀해서인지 아니면 소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신령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선불교의 핵심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십우도에서도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소치는 아이, 그리고 찾고자 하는 나의 마음자리를 소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인도에서는 이러한 소가 천덕꾸러로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불현듯 도로에 나타나서 교통을 혼잡하게 만든다든가 배설물을 아무데나 배출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애완동물 숫자가 급격히 늘면서 버려지는 동물들이 늘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게 되면서 인간과 함께 동물들도 진화해 왔다. 가축도 그렇고 쥐도 그렇고 이들을 통해서 전파되고 발전된 병원균인 바이러스 또한 그러하다. 인간처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동물이 흔치 않기 때문에 인간 주위에 독특한 생물 체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와 맞물려 애완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습성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광우병 또한 소를 키우는 인간의 업보에 대한 자연의 경고일 것이다.
동물에게도 불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매우 오래된 불가의 물음이다. 부처님은 동물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중세 중국의 선의 황금시대 수퍼스타 조주 스님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조주 무자’ 화두다. 부처님은 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는 왜 없다고 했을까. 조주의 이 화두는 ‘있다’ ‘없다’는 상대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에게 일침을 가한 방편일 뿐이었을까. 그 대답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동물을 인간의 애완용으로만 치부한 서양의 전통에 비해 불가의 전통은 동물들의 세계에까지도 철저하다. 불가의 철저한 성찰과 참회가 인간을 비롯한 지구촌 모든 생명체에게 구원의 화두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