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5.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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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향을 피우며/김경진(충남 홍성군)
참으로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이제 막 시작된 길고도 험한 형벌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오욕의 터널을 무슨 수로 지나갈 수 있을지 두려움과 좌절감만이 가득하다.
나는 지난 오랜 세월동안 허상과 망상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수많은 죄와 악업을 쌓았다. 그리고 영어의 몸이 되어서도 참회는커녕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어리석은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내 삶을 학대하고 있을 때 법회에 다녀온 동료가 나에게 책 한 권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무소유에 대한 내용의 그 책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과 생각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깨닫고 보면 너무나도 단순한 이치지만,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늘 번민하고 방황해 온 내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분명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고, 어차피 살아있을 거라면 세상에 진 빚 중 어느 하나라도 갚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나는 언제 세상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무기징역수다. 죄수가 되면서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아내도, 가까운 친지도, 친구들도 모두 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나’를 잃었다.
처음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사업이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그렇게 모순된 것인지는 정말 몰랐다. 사업을 하면서 꼬박꼬박 갚아야 할 것들은 다 갚아나갔는데, 정작 받아야 할 것들은 하나도 받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냉정한 것인지,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지만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나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처음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어의 몸이 된지 삼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 속 응어리도 하나 둘 사라져 갔고, 잊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잊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무소유에 감명을 받은 나는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고 싶었다. 그 가르침 속에는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한 밝은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동료의 도움으로 불교방으로 옮겨 참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러 도반들의 따뜻한 배려와 자비로 부처님 품속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하루하루가 새로운 지혜의 눈을 뜨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조석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예불을 통해 마음에 끼어있는 탐진치 삼독의 때를 벗기면서 마음의 빛을 보게 됐고, 평화를 느끼면서 참 자유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 백일기도를 하면서 죄업을 참회하니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 손으로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아집과 번뇌가 다 씻어 내려가는 것 같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부처님 법을 만나고 나서 이제는 모든 면에서 안정을 찾았고, 이곳의 수형생활도 곧 수양생활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을 했지만 불교를 만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택이요, 기쁨이다.
그리고 희망을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스님들을 만나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나는 스님들의 권유로 공부를 시작해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였던 내가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스님들의 덕분이다. 이제 다시 스님들의 권유로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교도소 내에서는 정보화 훈련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워드프로세서 1급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남겨놓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 신행수기를 쓰기까지는 상당한 고민을 했다.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도 나 자신에게 수없이 반문해 보았다. 하지만 나와 똑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지난 세월동안 어둠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용기를 내게 됐다.
지난날에는 남이야 헐벗고 굶주리든 말든 오직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부처님 말씀을 따라 기쁘게 나누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갖게 됐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가 인연 따라 짓고 받는 것이므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나보다는 먼저 남을 생각하고,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살고 싶다.
어린 시절, 나는 불행하게 자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천대받고 멸시당할 때마다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쓰리고 아프다. 부족하고 배운 것 하나 없는 상처투성이인 내 삶.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울 것이다. 그렇게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아픔을 묻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부처님 품 안에 있기에 가능해졌다.
나는 이곳에서 작지만 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그것은 ‘절망을 할수록 절망은 커지고, 희망 또한 가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앞으로 살면서도 다시 좌절을 맛보게 될 지도, 다시 무엇인가에 두려움을 느끼고 흐느끼게 될 지도, 다시 누군가를 원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에 걸려 내 삶을 망치는 어리석음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자신이 부처님 품속에 있음을 항상 잊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마음속에 촛불을 밝히고 향을 사른다. 그윽한 향 내음을 맡으며 두 손 모아 합장을 한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끝)
2006-10-28 오전 10: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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