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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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마음이 선정에 있으면 모든 것을 안다/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지혜[淸淨慧]’는 모두 선정에서 생겨난다. ‘어리석음’은 번뇌로써 밝은 세상을 어둡게 하여 중생의 고통을 가져오나, 밝은 지혜는 맑고 깨끗한 빛으로써 어두운 세상을 타파하니 행복이 가득한 부처님의 세상을 장엄한다. 이것은 깨달음으로서 맑고 밝은 거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환하게 드러내니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種智]’를 성취한다. 마음이 선정에 있으면 깨달음이니 세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선가귀감> 43장에서 말한다.
心在定則 能知世間生滅諸相
마음이 선정에 있으면 세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모습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설해지는 <불유교경(佛遺敎經)>에서 따온 글이다. 이 단락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그대 비구들이여, 마음을 챙기는 사람은 마음이 선정에 있다. 마음이 선정에 있으므로 세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부지런히 모든 선정을 닦아야만 하니 선정을 얻은 사람은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비유하면 마치 물을 아끼는 사람이 물둑을 잘 관리하듯 수행자도 그러하다. 수행자가 지혜를 위하므로 선정을 잘 닦아서 지혜를 잃지 않게 하는 것, 이를 일러 선정이라 하느니라[汝等比丘 若攝心者 心則在定 心在定故 能知世間生滅諸相 是故汝等 常當精勤修習諸定 若得定者 心則不亂 譬如惜水之家 善治堤塘 行者亦爾 爲智慧水故 善修禪定 令不漏失 是名爲定]”
‘선정(禪定)’에서 ‘선(禪)’은 범어 dhyana의 음역이고 ‘정(定)’은 범어 samadhi의 의역이다. 선(禪)과 정(定)은 대체적으로 모두 어떤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이 선(禪)과 정(定)을 합쳐 선정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다.
간화선(看話禪)이란 방편도 화두를 챙기는 사람이 화두라는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선정의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화두라는 대상에 마음이 집중되면 어떤 딴생각도 일어날 수가 없어 마음이 고요해진다. 화두와 하나가 되어 어떤 딴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선정에 드는 것이며 그 마음은 조금도 때가 끼지 않은 맑고 밝은 거울처럼 환해진다. 이 마음에 세간의 모든 모습이 비추어져 저절로 드러나니, 세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모습을 그 마음에서 알게 되는 밝은 지혜가 생긴다.
선정에서 생긴 지혜로 얻는 이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기신론>과 <월등삼매경>에서 말하는 것을 열 가지로 간추려 보겠다.
첫째,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살아간다. 둘째, 어떤 마군이나 나쁜 귀신들도 다가와서 겁을 주지 못한다. 셋째, 그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잘난척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니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과 모두 함께 어울려서 온화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
넷째, 부처님의 법을 함부로 헐뜯지 않으므로 전생에 지었던 무거운 죄들이 차츰 소멸되어 행복한 생활을 한다. 다섯째, 법에 대한 모든 의심과 나쁜 견해가 사라져 올곧게 수행한다.
여섯째, 보고 듣는 경계가 고요하고 지혜로워 바깥 경계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번뇌들이 생겨나지 않는다. 일곱째, 용맹스럽게 공부하여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니 근심과 회한을 벗어난다. 여덟째, 선정에서 생기는 희열로써 이 몸을 지탱하는 약이나 음식으로 삼으니 의식주가 부족하더라도 늘 기쁜 마음을 지니고 산다. 아홉째,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세간의 삶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지옥, 축생, 아귀와 같은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열째, 바깥 인연의 온갖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의 위엄을 갖게 되니 뒷날 반드시 성불한다.
선정에 있으면 어떤 경계가 오는지 서산 스님은 말한다.
虛隙日光 纖埃擾擾 淸潭水底 影像昭昭
밝은 창 빈틈 사이 화사한 햇살 속에 가는 티끌이 고물거리고, 맑은 호수 물속에 모든 형상이 환하게 비친다.

마음이 선정에 있으면 그 마음은 밝은 햇살이나 맑은 호수와도 같아서, 가는 티끌 같이 고물거리는 미세한 번뇌의 움직임이나 그 모습을 그대로 알 수 있다. 서산 스님의 이 말은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했던, 중국 당나라 규봉(780~841) 스님이 대중을 떠나 산중에서 10여년 참선 수행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선정 체험을 <도서>에 써 놓은 글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글의 앞뒤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
“10여년 수행을 하니 고요한 마음 상태에서 미세한 번뇌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빠짐없이 환하게 알게 되고, 인연 따라 차별화 된 법과 이치가 벌어지는 것이 텅 빈 마음에 남김없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밝은 창 빈틈 사이 화사한 햇살 속에 가는 티끌이 고물거리고, 맑은 호수 물속에 모든 형상이 환하게 비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은 선정과 지혜를 어찌 부질없이 침묵만을 고수하는 ‘어리석은 선(禪)’이나, 문자나 파고드는 ‘광기의 지혜’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디 자신의 마음을 앎으로써 모든 가르침을 분별하는 것이므로 간절한 뜻을 ‘선종’에 두었고, 또 모든 가르침을 올바르게 분별함으로써 마음 닦는 법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정성어린 마음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두게 된 것입니다.”
맑고 아름다운 삶이 계율이고, 이 계율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한 선정이 만들어지며, 이 선정에서 세상의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걸림 없이 생활하는 참다운 지혜가 생긴다. <선가귀감> 38장에서 43장까지 수행을 말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계율, 선정, 지혜를 강조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계율, 선정, 지혜 이 세 가지야말로 부처님의 모든 것을 배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 때문이다.
2006-10-23 오전 10: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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