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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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우연지(尤延之) 거사/원철 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거사 우연지(尤延之)는 그렇게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흘려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조정의 공물운반을 맡은 조운사(漕運使)를 지냈다. 조운사는 나라세금의 일부분을 거두어들이는 소임이라 원칙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 뒤 홍주(洪州)태수를 지냈다. 홍주는 마조도일 선사가 활약했던 강서지방의 중심도시인지라 마조 문파를 홍주종이라고 부르게 된 인연을 가진 곳이다.
우연지 역시 다른 여느 거사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신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철저한 유가적 질서에 입각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기 때문에 출가자들 역시 그 범주 속에 포함시켰다. 그에게는 사찰도 지역사회 관공서의 일부요, 스님네도 지역주민의 일원일 뿐이었다. 그는 공참(公參)시에 스님네까지 관청으로 불러 큰절을 받았다. 공참은 새로 부임한 관리가 아랫사람들의 문안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때 그 지역의 광효사(光孝寺) 주지는 혜홍각범(10711~128)선사였다. 그 역시 꼬장꼬장 그 자체였다. 그가 선가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임간록(林間錄)〉의 편집의도를 보면 그의 성품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동시에 항상 선사의 기개를 잃지 않았다. 우연지가 스님들까지 불러다가 인사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서 ‘이럴 수는 없다’며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그리고는 북을 울려 대중을 모이게 하고는 법상에 올라가 주지직 사임을 알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조사의 살림살이는 원래 큰 것이었는데, 누구에게 감히 자질구레하게 허리를 굽히랴? 똑똑하신 태수님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죽장에 짚신 신고서 마음껏 노닐고자 하오.”
태수 우연지가 제대로 주인을 만난 셈이다. 물론 주지임명권이 태수에게 있긴 하지만, 그가 출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바는 아닐 터이다. 미안한 마음에 사람을 보내 다시 돌아와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각범 선사 역시 한 입으로 두 말 할 위인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우연지는 태도가 달라졌고 강서의 모든 사찰들이 공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다시 갖게 됐다. 한 사람이 주지직을 때맞춰 잘 버리면 모두가 살게 되는 도리가 있다.
알고보면 우연지 역시 본래 선지(禪旨)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후 당연히 수행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 경지가 날로 깊어졌다. 그는 불조덕광(1121~1203) 선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덕광 선사는 간화선의 교과서〈서장>의 저자인 대혜종고 선사의 법을 이은 분이다. 당시 효황제 역시 덕광 선사의 제자였다. 황제와 우연지는 왕과 신하이기도 했지만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동문인지라 자주 격의없이 법답을 나누었다. 그런 도반 우연지가 태주(台州) 태수로 나갈 때 효황제가 물었다.
“그대가 태주로 가는데, 가는 길에 어떤 명소가 있는가?”
“국청사(國淸寺)와 만년사(萬年寺)가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 내지는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말하지 않고 ‘정말 재미없는’ 도 닦는 사찰 열거한 것을 듣고는 황제 역시 매우 흡족히 여겼다. 이 한마디에 그의 가치관이 모두 드러난다.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제 법거량을 할 차례다. 효황제는 두 번째 펀치를 날렸다.
“그 사찰에는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그들은 힘이 세다. 만약 그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무엇으로 맞서겠는가?”
그러자 우연지는 주먹을 곧추세우고는 말했다. “제겐 금강왕 보검이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깊이를 가진 선문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품새가 평균치는 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우연지는 당신의 삐딱한 시각을 교정시켜 준 혜홍각범 선사가 입적했을 때 몸소 선사의 일대기를 정리해 주었다. 그리하여 법은(法恩)에 감사하는 그의 진심을 고인에게 늦게나마 전했다.
2006-10-23 오전 10: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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