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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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2부 63강 유교, 노장, 불교, 법가, 그리고 시정의 사유/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는 지금 어느 길에 서 있나?

동아시아에는 대략 다섯 개의 길이 있다.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이와 차이의 좌표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내가 정리해 본 것이다. <금강경> 원고를 앞에 놓고 있다가 북의 핵실험 소식을 듣고는 휘황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묵은 원고로 대신한다. 오늘, 법가의 길과 사마천의 현실주의가 가슴 속에 사무친다.

길이란 무엇인가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동물과 달리 본능이 길을 열어주지 못하므로,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집단적 선택에 의해 길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길을 가리키는 도(道)라는 글자는 ‘천안 삼거리 같은 갈림길(行)에서 머리(首)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이 주저를 접고 과감히 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처음 길이 생겼다.
처음에는 미약했던 길이, 앞 사람의 흔적을 보고 다른 사람이 뒤따름으로써 길은 점점 넓혀져 큰 길이 되었다. 처음 사상이었던 길이 그렇게 해서 문화가 되고, 이윽고 전통이 되었다.
그 길을 의심한 사람들이, 가시덤불에 새 발자국을 찍기 시작했고, 어느덧 수많은 길이 생겼다. 이들은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기이하여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사람의 길을 정했다. 별의 징조를 읽는 천문과 땅의 의미를 읽는 지리가 발달했던 바, 처음 사람들은 그 상징적 지시에 따라 의례를 제정하고 제도를 만들었다.

공자가 걸은 길
공자의 유교는 천도(天道)의 상징적 역할과 결별하고, 인도의 독자성에 입각한 휴머니즘을 제창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자각과 훈련을 통해 이룩해야할 인격의 이상을 제시하고, 그 바탕 위에 자리잡을 사회적 질서를 꿈꾸었다. “그날이 온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朝聞道, 夕死可矣)”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시켜줄 뜻있는 권력은 없었다. 나이 오십에 천하를 철환(轍環)하던 동키호테는 허연 수염으로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옛 문화의 전적을 정리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가 그린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단순화하자면 제도보다는 인격, 형벌보다는 감화에 의해 추종되는 사회였다.
공자는 인간의 덕성이, 추상적 이념과 가치를 의식화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이웃이라는 구체적 관계의 장에서 실천적으로, 이를테면 부모에 대한 효도, 연장자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육성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치의 관건은 제도나 규율이 아니라 이렇게 배양된 인격이었다. 그는 이 인식을 “도가 사람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만이 도를 넓힐 수 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는 말로 요약했다.
당대의 권력과 후대의 비판자들은 제도와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건전한 인격에 건 이 순진한 이상주의자를 비웃는데 익숙하다.
그렇지만 모든 일의 관건은 지식보다 태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느냐가 그 일의 성패와 시비를 이미 가르는 것은 아닐까. 맹자의 말마따나 “어린애를 키우는 법을 배운 다음 시집가는 여자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를 향하는 염려와 관심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습득하도록 이끌지 않겠는가. 그것은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법가가 시행한 길
법가는 공자의 길이 너무 더디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격과 교양을 믿지 않고 법과 제도를 말한다. “옛 전통과 고전은 변화된 시대에 의미가 없으며, 인격을 통한 감화는 적나라한 인간들의 이기심을 제어할 수 없다.”
법가는 “유교의 원리로는 자식 교육도 기약할 수 없다”고 혀를 찬다. 유가의 길은 이를테면, 수주대토(守株待兎). 우연히 나무 아래서 죽은 토끼 한 마리를 건진 농부가, 아예 농사를 작파하고 나무밑에서 토끼들이 받혀죽기를 기다린 어리석음에 견주었다.
한비는 말한다. “국가의 목표를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상을 주고, 그에 어긋나면 벌을 준다. 농사에 매진하고 국방에 기여할 때는 상을 주고, 쓸모없는 논쟁을 벌이거나 떼를 지어 건들거리면 벌을 준다. 법은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효율을 보장한다. 군주가 이 두 자루를 쥐고 있다면 천하를 다스리기는 손바닥보다 쉽다.”
근대 시민사회는 전형적으로 법가적 인식 위에 세워진 체계이다. 그렇지 않은가. 시민사회란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책무는 그들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법적 제도적으로 조정하고 일탈을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장과 불교가 꿈꾼 길
<노자>의 첫머리는 이 모든 소란을 일거에 잠재운다. “너희들이 제시한 길은 진정 인간을 위한 길이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노장은 모든 형태의 억압과 권위를 거부하여 법가와 맞섰고, 한편 사회와 절연된 개인의 행복과 평화를 고취하는 점에서 유가와도 결별했다.
그 은둔의 개인주의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우주적 과정의 협력자이다. 그 우주적 덕성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만 잊혀졌고, 정치적 동원으로 하여 질식하고 있다.” 불교 또한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불교는 노장과 더불어, 인간의 본성이 오랜 이기적 습관과 사회적 순치에 의해 가려지고 켜켜이 때가 덮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얼굴과 대면할 때, 삶을 대하는 태도 전체가 바뀌는 영적 전환을 겪게 된다고 한다.
그 통찰 혹은 깨달음에서 세상은 투명하게 드러난다. 자연은 유기적 전체로서 항상하게 진행하며, 법계 또한 자신의 연기적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둥근 모습으로 드러난다. 거기 아무런 부족함도 넘침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으며, 아름다움도 추함도 없다. 지식(gnosis) 혹은 깨달음이란 바로 그 사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삶은 이 위대한 통찰과 영웅적 수용으로 완성된다. 그것이 자연과의 합일이고, 반야바라밀, 깨달음의 완성이다.
노장과 불교는 이 실존적 통찰이 삶의 관건이라고 말한다. 노장과 불교는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정 투쟁에 헛되이 기력을 소모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적 지위나 부 등에 신경을 덜 쏟기에 그의 삶은 자연스럽고 단순해진다. 그는 그렇게 남은 에너지를 회향하여 타인을 향해 쓸 수 있게 된다. 노장은 이 근검과 자비가, 불교는 무소유와 보살행이 세상을 건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마천과 혜강 최한기가 인정한 길
소시민들은 묻는다. “인간은 그다지 고상한 동물이 아니다. 나는 나의 생물학적 삶에 충실하련다. 먹이를 찾고 짝을 찾는 이 욕망에 누가 침을 뱉는가.” 이 원리는 널리 수용된 보편적 원리이면서, 기이하게도 가장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현대의 시장주의자, 자유주의자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농부들은 곡물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포획물을 공급한다. 기술자는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은 이들을 널리 유통시킨다. 이런 일은 강제나 교화, 징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의 기능과 역량을 제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자연적 질서로서의 도(道)가 아니겠는가.”
2006-10-16 오전 10: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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