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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비의 음료⑩ 카페인의 나라/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맨해튼에 사는 어떤 교포가 딸과 함께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한국의 문화, 특히 차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했다. 그녀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미국의 상류층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인들 사이에서 차를 마시는 풍토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녀에게 바른 생각과 온화한 품성을 가르치고 싶어, 집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차를 마신다는 것이다.
18세기 초까지 차와 커피는 신대륙에서 인기 있는 음료였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차에 특별세를 부과하면서 식민지 사람들에게 강한 저항을 일으켰고, 영국산 제품은 무조건 배척하는 등 세금 납부를 거절하는 일도 있었다. 차는 네덜란드를 통해 밀수되었고 밀수된 차의 가격은 저렴해 인기가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창고에 차가 가득 쌓이는 결과를 초래했고, 영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773년 ‘차조례(Tea Act)’를 만들어 시행, 차 무역과 소매에 대한 독점권을 동인도 회사에 부여한다. 영국의 이러한 조치는 밀수업자와 상인들에게 위기감을 주었고 신문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자 식민지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를 실은 배가 보스턴 항에 도착 했을 때 인디언 복장을 한 차 밀무역 업자와 상인들이 배에 올라 불과 3시간 동안 342상자의 차를 바다에 던졌으며, 이 같은 일이 다른 항구에서도 일어난다. 보스턴 항구는 폐쇄되었고 이후 3년 동안 영국과 신대륙 간에는 작은 전투가 일어나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다. 1775년 시작된 8년간의 전쟁 끝에 신대륙은 영국에서 독립된다.
그 후 미국은 더 이상 차나 비단을 얻기 위해 영국에게 세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졌다. 중국과 직접 배를 통해 무역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차는 ‘비애국적 음료’로 인식되었으며, 커피는 대중 음료로 정착되었다.
이처럼 신대륙에서 차가 문화로 자리 잡기에는 악조건이었다. 개척자들과 함께 도착한 커피는 그들에게 활기를 주었고 보스턴과 뉴욕에 많은 커피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뉴욕의 ‘머천트 커피점’은 뉴욕은행 설립 발기 장소와 증권 거래의 장소가 되었고 사업가들이 원활한 사업을 위해 ‘톤틴 커피점’을 개업하는 등 미국인들은 커피를 마시며 부(富)를 생각했다.
이렇게 카페인에 익숙해진 미국은 커피를 연구하여 군대에 이용하게 된다. 먹기 간편하고 장기간 보관 가능한 응축된 고체인 ‘씹는 커피’를 만들어 군인들에게 보급한것이다. 이 ‘씹는 커피’는 남북 전쟁이 끝난 뒤에 사라지지만, 계속된 연구로 가루 커피인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까지 125개 공장과 22곳 가정집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했다.
이 맛에 익숙해진 군인들은 집에 돌아간 후에도 계속 인스턴트커피를 선호하였고, 인스턴트커피 시장은 미국 커피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이들은 커피의 풍미보다는 간편하게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카페인에 취해있었다.
이러한 이들에게 음식의 지나친 가공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커피 역시 새로운 문화사를 열게 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갓 볶은 커피를 파는 ‘피츠 타앤 커피’ 커피 전문점이 문을 열어 대성공을 한다. 이어서 보스턴의 ‘커피 커넥션’, 플로리다의 ‘바니즈’, 시애틀의 ‘스타벅스’ 같은 커피점이 개업해 미국의 커피산업을 성장시켰다. 특히 세계 40여 개국에 진출한 미국의 다국적 기업 ‘스타벅스’는 커피의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켰다.
2006-10-09 오전 11: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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