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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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고독한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한 불교의식입니다. 중국의 양무제(梁武帝)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의식문을 만들어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齋)를 베풀었다지요.
송대에는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을 지어 널리 보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1년 갈양사(葛陽寺)에서 수륙도량을 연 것이 효시입니다. 조선조에선 억불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맥을 이어갔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國行) 수륙재를 여는 사찰로 지정하였지요.
하지만 수륙재가 국행(國行)으로 치러지는데 대해 유생들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중종대에 이르러서야 국행시연이 금지됐지요. 이 정도로 조선초에는 불교문화의 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륙재의 의식절차는 여러 가지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수륙재를 올리는 취지를 밝히지요. 그리고 영신(迎神) 과정으로 명부사자와 오방신, 불법승 삼보를 맞이해 공양합니다. 이어 호법선신(護法善神)등을 맞이해 들이지요.
그 후에 천도할 영혼을 청합니다. 이른바 청신(請神) 과정인데요, 이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오신(娛神)과정으로 범패(梵唄) 등의 불교예술이 시연됩니다. 태징, 요령, 목탁, 피리 등 여러 악기가 등장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물가에서 많이 치러지곤 합니다.
김철우 기자 in-gan@buddhapia.com
2006-10-09 오전 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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