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정신과 마음’에 관한 것이다. 신경과학자는 뇌의 신경 다발에서 마음의 흔적을 발견하려 하고, 양자역학은 뇌의 물 분자의 양자화 운동에서 마음의 작용을 밝히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신과학은 정신 질병을 치료하는데 많은 발전을 이룩해 왔다.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드는 인간의 심리상태에 무의식을 포함시킴으로써, 자아의 영역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자아 그리고 문화 등에 의해서 정제된 초자아로 넓힌 최초의 정신분석학자다. 프로이드와 교분을 나눴던 독일의 정신의학자 칼 융과의 교유 그리고 헤어짐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
칼 융은 프로이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프로이드는 노이로제에 걸려있었다. 그것도 매우 심각한 증상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좌장격인 그가 스스로의 노이로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신분석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프로이드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라고.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는 많은 정신 과학자들이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비교적 현대에 들어서야 ‘마음의 과학’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한 서양에 비해서 인도의 그것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0년 전, 불교의 유식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무의식 영역까지 넓혀갔다. 모든 감각기관을 종합해서 기억, 추리하는 기능인 6단계로부터 더욱 발전해서, 사량분별의 원천인 7식 말나식 그리고 무의식의 끝에 자리잡아서 인간의 업이 저장되는 8식 아뢰야식까지 일찍부터 무의식의 중요성과 이 무의식이 가지는 윤회적 의미를 탐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정신과학은 마음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을 컴퓨터로 도식화할 수 있고,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계와 로봇 등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대 정신과학의 논리에 반기를 든 과학자가 바로 괴텔이다. 그는 “수학은 어차피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완전한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식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를 컴퓨터는 행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컴퓨터로 묘사가 가능한 신경다발로 부터는 마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러한 논리로 컴퓨터가 묘사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세계에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끝없이 관찰하는 선(禪)은 마음의 생성작용을 끝임없이 관하는 것이다. 이 선이 현대정신과학의 발전과 정신질환의 과학적인 치료법으로 얼마만큼 크게 자리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화두를 지킴으로써 쉴 사이 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잠재우고 자아를 발견하는 선이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한 시발점이 되도록 하는 것은 현대를 사는 불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