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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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벽송 선회(禪會)’를 마치고/법산(동국대 선학과 교수)
강의·논강·실참…결사정신 잇는 정진열기

지리산 벽송사가 근래 한국불교에서 사라졌던 ‘선회(禪會)’를 9월 8~18일 산철 결제기간 동안 복원했다. 선회는 안거가 끝난 산철기간 동안에도 실참을 병행하면서 교학 강의와 논강으로 선과 교를 닦는 오랜 전통이지만 불립문자, 사교입선이 강조되면서 해방이후 한국 선원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벽송사 주지 월암 스님과 함께 ‘벽송선회’를 마련한 법산 스님이 ‘선회’개최의미를 담은 기고문을 보내왔다.

요즈음 간화선 수행에 대한 새로운 열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고려시대 보조지눌(1158~1210)이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참선 정진하는 막바지에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마치 원수와 함께 있는 것 같았는데, 마침 송나라 대혜종고(1089~1163)의 <어록>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고 당장에 마음이 편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보조는 곧 간화선을 수행의 지침으로 삼고 <간화결의론>을 지었다.
그리고 조계산 송광사에서 정혜결사운동을 실천함에 ‘담론(談論)을 하고 선정을 닦으며 안거와 두타에서 부처님 계율에 의지했다’고 하였으니 간화선을 실참실구하면서 논강으로 경책하고 청규를 엄수하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그 수행가풍이 진각혜심(1178~1234), 태고보우(1301~1381), 나옹혜근(1320~1376), 벽송지엄(1464~1534)에 이르렀다.
벽송지엄은 금강상 묘길상암에서 <대혜어록>을 보다가 의심을 일으키고 <고봉어록>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1520년(중종 15)에 지리산 벽송사를 행화도량으로 삼아 초학자에게 종밀의 <도서>와 보조의 <절요>로 여실지견을 세우게 하고, 이어 대혜의 <서장>과 고봉의 <선요>로써 간화경절의 요체로 삼아 활구참선을 지도하여 일대사를 깨닫게 하였으니 한국 불교의 수행과정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벽송지엄은 부용영관, 숭인설은, 경성일선 등 9인의 대 종장을 양성하였으며, 부용영관은 청허휴정(1520~1604)과 부휴선수(1543~1615)를 배출, 오늘날 한국불교의 승려는 모두가 그 문손이다. 근세 한국 간화선의 중흥조 경허선사도 벽송사에서 주석한 적이 있다. 경허선사는 이러한 전통을 되살려 1899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수선사를 결사하고, 1902년에는 범어사 계명암에서 수선사를 결사하여 내압과 외세로 쇠퇴해가던 실참실구 선수행 가풍을 복원했다. 그의 제자 환암선사는 1922년 금강산 건봉사에서 선회를 결사하여 한국불교의 수선결사 정신을 계승했다.
이와 같은 선종사적 선상에서 9월 8일부터 18일까지 지리산 벽송사에서 성만한 제1회 벽송선회는 현실을 고뇌하며 정진하는 조계종 스님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시도되는 새로운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안거는 전통방식대로 하지만 산철결제 차원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으면서 간화선수행에 좀더 새로운 방향을 모색, 선주(禪主) 소임을 맡은 월암 스님이 발의하여 벽송선원의 하안거 대중이 뜻을 모아 결행하게 됐다.
당초에는 벽송사의 환경이 넉넉지 못해 비구 30명 비구니 30명으로 제한하려 했으나 제방의 선원에만 공문으로 안내하였는데도 비구 30명 비구니 80명이 신청하여 전형방법을 고심하게 되었다. 모두가 선회 취지에 발심하여 정진하겠다는데 어떻게 선별할까 그 기준을 분분히 논의하다, 어렵지만 모두 수용하기로 하였다.
정진계획은 당초에는 새벽과 저녁에 각각 2시간씩 좌선을 하고 오전 2시간은 황벽의 <전심법요>를 선주가 강의하고 오후 2시간은 논강을 하기로 하였으나 선원스님들이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대중의 건의를 받아들여 5일간은 월암 스님이 지은 <간화정로>를 교재로 중국선종사를 강의하고 1일은 <전심법요>, 1일은 특강으로 오전은 필자가 ‘한국선종사와 벽송사’를, 오후에는 수불 스님의 ‘안국선원에서의 간화선지도’를 주제로 강의를 했다. 1일은 그 동안 분임토의로 제기된 문제를 가지고 논강을 하여 수행과정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하루는 산행을 하여 선사들의 행적을 마음에 새기고, 입제와 해제에는 정진으로 회향하였다.
이번 선회는, 수용여건이 대단히 열악한 환경인데도 누구하나 불평없이 화합하고 발심정진하는 신심나는 과정이었다. 모두가 환희심을 내어 맡은바 소임에 충실하고 대중 청규를 엄격히 준수하여 조금도 흐트러짐없는 여법한 수행자의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선회가 향후에도 계속되면서 이를 통해 눈밝은 선지식들이 많이 나와서 한국불교를 더욱 빛내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종단에서도 뜻깊은 선회에 관심을 갖고 지원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2006-09-23 오전 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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