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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비의 음료 ⑧ 커피왕국/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커피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령의 식민지로 제한되었던 생산지에서조차 열매의 반출이 금지됐다. 하지만 프랑스령 기아나 총독의 아내는 꽃다발 속에 커피콩을 숨겨 정부(情夫)였던 브라질 관리 팔헤타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커피콩이 브라질 땅에 심어져 수 억 그루의 커피나무로 자라게 됐으며, 브라질은 커피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의 주생산품이 처음부터 커피였던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사탕수수 재배가 경제의 주축을 이뤘다. 사탕수수 농장은 대단위 농장 형태로 부를 가져 왔다. 사회적인 구조는 재력을 가지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농장주와 농장의 책임자, 자유민, 흑인 노예로 구성됐다. 노동력의 대부분은 노예에 의존된 거대한 노예사회였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커피 플랜테이션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다. 열대성기후와 화산성토양을 가진 상파울루 고원은 양질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최적지였다. 화산작용으로 현무암의 분열에 의해 생성된 땅, 흐릿한 날씨와 충분한 습도, 노동 조건은 브라질을 커피 생산국 1위에 올려놓았다. 브라질의 커피 산업은 이웃해 있던 멕시코, 콜롬비아 등에 영향을 주어 커피 재배를 확산 시켰으나 주변국에서 생산된 량은 극히 미미했다.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던 실론섬은 1802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커피를 생산했다. 그러나 불교인이 대부분인 실론섬 사람들은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게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재배는 실론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거부감을 주었으며, 커피콩의 무게를 무겁게 하기위해 커피콩을 찌는 등 편법을 쓰기도 한다. 재배지 면적으로 볼 때 커피 수확량은 성공적이었으나, 어느 날 수확을 앞둔 커피 열매를 새들이 먹어치우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커피 열매를 먹은 새들은 더욱 극성을 부렸고, 원주민들은 불길한 예감으로 더욱 커피를 외면했다.
10여년이 흐른 뒤 사람들의 옷과 손을 통해 옮겨진 홀씨는 커피나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을 제공하여 커피농장을 황폐화 시켰다. 이를 계기로 대체 품목인 차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홍차의 대명사인 실론티가 탄생됐다.
브라질의 커피 산업은 계속 팽창됐고 과학적으로 재배했다. ‘크레올’ ‘부르몽’ ‘보투카투’ ‘엘로우’ ‘자바’ ‘마라고 지페’라는 6종의 커피가 생산되었다. 모판에서 1~2피트 까지 자란 묘목을 12피트 간격으로 옮겨 심었다. 묘목은 성장하여 작고 하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점점 초록색에서 체리빛으로 변한다. 커피 열매가 익으면 수확하여 저장해 두는데 건식법과 습식법이 있다. 건식법은 열매를 햇빛에 말려 나무 분쇄기에 빻아서 껍질을 제거한다. 습식법은 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에 넣고 껍질을 제거한 후 생 커피콩을 세척하여 발효 탱크에 저장해 둔다. 2~3주의 발효과정이 지나면 햇볕에 말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원두가 유리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상태가 되어 완제품으로 커피시장에 판매가 된다.
20세기 초 브라질산 커피는 전 세계의 90%이상을 생산했다. 그러나 커피의 과잉생산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까지 커피를 처분할 시장을 찾아야 했다. 중국과 일본 등으로 커피 수출을 원했지만 실패했다.
대량 생산으로 인한 양적 증가는 품질 저하를 가져왔으며, 병충해로 인한 커피나무의 품질 변화는 맛과 향기를 잃어버린 커피를 양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6-09-18 오전 1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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