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행복한 삶을 끊임없이 피어나게 하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이다. 맑은 삶, 고요한 삶, 지혜로운 삶을 불교에서는 행복한 삶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한껏 피워낸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스스로 “나는 행복한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은 진정 맑고도 고요한가?”라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맑고 아름다운 삶으로서 계율의 실천은 행복한 삶의 주춧돌이자 그곳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어느 누구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거나 도둑질하고 거짓말하며 혹은 사람들과 나쁜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노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참선하는 수행자도 역시 ‘살생’ ‘음행’ ‘투도’ ‘망어’ 등 부처님이 일러주신 계율을 잘 지켜서 몸과 입과 뜻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몸과 입과 뜻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우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선가귀감> 39장에서는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몸과 입과 뜻을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놀리는 수행자를 경계한다.
無德之人 不依佛戒 不護三業 放逸懈怠 輕慢他人 較量是非 而爲根本
‘덕(德)’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으며 몸과 입과 뜻을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쓴다. 게을리 이럭저럭 지내면서 남을 업신여기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다.
‘덕’이 없는 사람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도(道) 닦는다고 말하면서 출가의 본뜻을 잊고 삿되고 악한 길만 따라 바른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허망하게 불조(佛祖)의 기연(機緣)과 고인(古人)의 공안(公案)만을 올바른 법이라 하여 집착하고, 그 법을 전수하며 최고의 보배로 삼으면서 계율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인과를 무시하여 너와 나의 다툼만 늘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만 마음에 가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들은 마구니나 외도의 경계에 떨어져 영원히 그들의 권속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열반경>에서는 “계율을 깨뜨린 비구는 몸에 위의와 덕성이 없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계율이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몸과 입과 뜻을 잘 다스려서 아름다운 삶을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행복한 지침이니, 이 계율을 우리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 첫째 몸을 다스리는 것이니,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不殺生], 남의 소유물을 몰래 훔치지 말아야 하며[不偸盜], 사람들과 잘못된 관계를 가져올 수 있는 어두운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不 行]. 둘째 입을 다스리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을 이간질 시켜 대중의 화합을 깨지 말아야 하고[不兩舌], 험하고 거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하며[不惡口], 명성이나 이익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不妄語], ‘없는 말’을 화려하게 꾸며 남을 현혹시키지 말아야 한다[不綺語]. 셋째 뜻을 다스리는 것이니, 함부로 욕심내어 분수에 넘치는 일이 없어야 하고[不貪心], 뜻하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마구 화를 내지 말아야 하며[不嗔心], 이렇게 욕심내고 화를 내게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없어야 한다[不癡心].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이 열 가지 좋은 업을 합쳐 십선(十善)이라 하고, 그 반대는 십악(十惡)이라 한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一破心戒 百過俱生
부처님 뜻에 맞추어서 다듬어진 마음이 한번 깨지면 온갖 허물이 함께 일어난다.
심계(心戒)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추어서 잘 다듬어진 마음이고 백과(百過)는 온갖 허물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추어서 다듬어진 마음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온갖 허물이 사라져 ‘십선’을 실천하여 바른 법을 일으키는 올바른 사람이 된다. 이 마음이 무너지면 온갖 허물이 일어나 ‘십악’을 행하여 삿된 소견을 갖게 되는 마구니가 된다. 부처님 법이 약해지는 말법시대에는 제멋대로 사는 마구니들이 많이 늘어난다. 서산 스님은 다시 말한다.
如此魔徒 末法熾盛 惱亂正法 學者詳之
이와 같은 마구니 무리들은 말법시대에 불붙듯이 일어나 정법을 어지럽힐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법(正法)이란 부처님 가르침으로서 올바른 법을 말한다. 말법시대는 부처님 가르침이 올바르게 행해지지 않아 외도들의 삿된 법이 치성할 때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 정법시대라도 삿된 견해에 떨어져 있다면 말법시대에 사는 사람이요, 세태가 험악한 말법시대라도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산다면 정법시대에 사는 사람이다.
참선하는 수행자라도 몸과 입과 뜻을 잘 다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이 배운 법만을 옳은 것이라고 내세워 수행자 위의를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처신한다면, 삿된 소견에 떨어져있는 것이니 말법시대 사람이다.
반대로 부처님 계율에 의지하여 몸과 입과 뜻을 조심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참선하는 수행자라면 정법시대에 사는 사람이다.
참선하는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몸과 입과 뜻을 잘 다스려야 한다. 번잡한 일을 없애기 위하여 시끄러운 곳을 멀리 떠나 늘 고요한 곳에 머물러 공부해야 한다. 언제나 부족한 것으로써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살아야 하고, 남이 하기 어려운 고행이라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해야 한다. 작은 죄에도 두려움을 내고 부끄러워하며 그 허물을 뉘우칠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
부처님 계율을 존중하여 다른 사람의 헐뜯음을 막음으로써, 부처님 계율을 비방하는 중생들이 생기지 않게 하여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용맹 정진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는 참선만이 깨달음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