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국에서는 세계 30여 나라에서 온 불자 1,000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불교포럼’ 제 1차 대회가 열렸다. 중국 불교계가 제안하고 주최하였다고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이 있었다는 데 대하여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중국이 이 시점에서 왜 대규모 국제 불교 행사를 주최하는 지에 대해 필자는 이미 이 난을 통해 “중국 정부의 불교 정책 변화는, ‘사회 통합과 화합을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고 불교가 필수가 된 현실 상황’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고 진단한 바 있다. (‘현대불교’ 4월 19일자)
우리 불교계도 위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중국 불교가 발전하고 있다”며 환영하고, 불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이런 추세는 단순하게 의례적인 ‘감사 인사’에 그치지 않았다. 조계종 포교원이 중국 내 한인불자들을 위한 수계 법회를 열면서 포교원 소임자스님 여섯 분이 모두 방중(訪中)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중국 정부의 우호적 태도’에 감동을 받은 듯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계종립 동국대학교에서는 ‘세계불교포럼’을 주관한 실무 책임자인 중국종교사무국 예사오원(葉小文) 국장을 초청해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특별한 조치까지 취하였다.
어느 학자는 “과거 중국에서 전해 받은 불교를 이제 우리가 다시 중국에 전해주어야 할 때”라며 한국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중국 포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중국 포교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의 종교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느 곳에서도 종교가 국가 권력으로부터 100% 자유롭기는 힘들겠지만 특히 중국에서는 과거 왕조 시절과 다름없이 국가에서 종교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세계불교포럼’을 통해 중국 정부가 ‘화합과 관용’을 강조했지만, 이 포럼 이후에도 여전히 자국의 정책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처벌을 계속하고 있다.
9월 7일 UNPO통신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중국 시추안(四川) 성 서남부 티베트인 거주지역인 카르제(Karze)에 있는 초캉 타크룽(Chokang Taklung) 사원의 주지 켄포 진파(Khenpo Jinpa)가 구금되었다.
8월 23일 무장 경찰들이 예고 없이 사원 안으로 들어와 샅샅이 뒤졌지만 범법 사실을 증명할 물증을 찾지 못하였다. 궁색해진 당국에서는 ‘구금 사실’만을 확인할 뿐 구속 사유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티베트 사원의 관계자들이 “1년 전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포스터를 게시하였던 것”이 구금 사유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중국의 불교는 과거와 다를 바 없이 ‘국가불교’적 성격에 철저하게 따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성격은 불교에만 그치지 않고, 이슬람이나 가톨릭 등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티베트 독립과 자치를 막는 데 ‘불교’를 쓰고, 위구르 족 등 이슬람교도들의 독립을 저지하는 데에는 ‘이슬람’을 활용할 것이다.
‘한국 스님들에 대한 복수 비자 적극 검토’나 ‘도의(道義)선사 수계지(受戒址) 성역화 불사 지원’ 등 한국불교계에 대한 러브콜은 티베트문제 해결과 몽골 등 주변 불교국가에 대한 견제에 필요한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식 외교 전략의 일환이거나 한국불자들의 성지 순례를 유도하려는 관광정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중국의 불교정책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합종(合從)’ ‘연횡(連橫)’이든 아니면 제 3의 길이든 우리 나름의 중장기 방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