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자세·굳은 의지가 ‘기본’
최근 아랸야선원에서는 김장용 무 밭과 배추밭 일구는 일을 했다. 귀농생활 몇 년에 접어든 부부가 도와주어 쉽게 마쳤다. 부인인 보살은 어떻게 하든지 남편을 참선방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농부생활 몇 년째 접어든 그는 구릿빛 피부에 농사일도 예사 솜씨가 아니다. 땅을 파고 비닐치는 일이 프로급이다.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사에게 참선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점을 알았다.
“농사일을 잘하는 사람과 함께 농사지으면 농사일을 잘 합니다. 마찬가지로 공부 잘하는 사람과 지내면 공부도 잘 합니다.”
소설가 김동리씨, 그는 한때 최범술 스님이 주석한 다솔사에 머문적이 있는데 이때 참선을 하려 했으나 다리가 아파서 못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인가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앉아서 좌선을 하려고 하면 다친 다리가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참선에 대한 오해’ 가운데 다리 문제가 제일 크다. 나 역시 참선을 시작 할 때 어려서 다친 다리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허나 이제 결가부좌가 거뜬히 해결되었다.
다리가 참선을 하는가? 서서 하는 입선, 앉는 좌선, 걸어 다니면서 하는 행선, 눕는 와선 등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시간에도 하는 것이 참선이다.
좌선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참선의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이기 때문이다. 좌선법은 그만큼 독특하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좌선의 기초를 익힌 이후에 생활참선을 한다.
요즘 명상 가게에 나가보면 사무실에서도 명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명상 의자가 나와 있다. 인체공학상 좌선의 이상적인 체형에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력만하면 얼마든지 자기에게 알맞은 좌선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시대이다.
그 뿐인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운전자가 참선을 하는 방법은 하나의 일치된 형태다. 아무 생각없이 운전만 하지 말고 운전을 하면서 자기 몸을 명령하고 운전하는 그 ‘주인공’을 돌아본다면 이것 역시 참선이다.
“운전자 시심마(運轉者 是甚摩), 운전하는 자는 무엇인가?”
“누가 이 몸을 운전하는가?”
시간에 쫓겨서 참선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빠도 숨은 쉬고 있지 않은가. 햇빛을 보고 땅 위에 서 있지 않은가. 아무리 바빠도 호흡하는 동안, 의식이 살아있는 한 참선이 가능하다.
건강 때문에 참선과 멀어진 사람도 많다. 기가 펄펄 뛰는 활어(活魚)가 참선자의 기상이기 때문에 이 생각은 아주 큰 오해이다. 좌선법의 자세를 살펴보면 불로장수의 선도법과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입장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요가법이 들어와 있다. 참선법은 장생불사하는 기의 운동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상허하실(上虛下實·위로 허하며 아래로 실하고) 수상하화(水上下火·물기운은 위로 보내고 불기운은 아래고 보낸다).”
상하는 허리띠를 기준으로 삼는다. 불로장수의 법칙은 다음의 소나무 방송(放松)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온몸이 뜨거워서 건강이 나쁜 사람과 반대로 온몸이 차서 한 여름에도 추위를 타는 사람은 다 같이 기(氣)의 순환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런 사람은 소나무 자세 곧 방송(放松)을 권한다. 소나무 모양은 선정(禪定)에 드는 가장 좋은 좌선 자세에 비유한다. 소나무도 그냥 평지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가 아니다. 높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이다. 가지는 절벽 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말하자면 이완(弛緩)이 지극해진 상태이다.
이와 반대로 뿌리는 지극하게 긴장(緊張)된 상태이다. 이 소나무가 방송(放松) 혹은 유송(柳松)이다. 몸을 방송의 자세로 취하고 앉고 서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