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른 가을에 맞이하는 이 기분 좋은 바람을 순수한 우리말로 색바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찬바람머리로 접어들면 오싹 소름이 돋아 서둘러 긴소매 옷을 꺼내 입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고 본격적인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한 해의 마무리는 연말에 하는 것이 옳습니다만 그토록 무덥던 여름을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여름 농사를 잘 지었는지를 돌아보곤 합니다. 매년 여름을 지날 때마다 그 해 여름이 가장 무더웠던 것만 같은데 특히 올해는 정말 버거웠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도 많이 벌어졌던 만큼 몸과 마음이 여느 해와 달리 쉼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색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늘어집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만 다니면서 살았으면 딱 좋겠다는 유혹이 자꾸만 일상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마음공부는 쉬어서는 안 되는데…’하는 망설임도 없지 않지만 마음 가는대로 발길 닿는 대로 내 몸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좀 궁금합니다. 마음공부, 마음공부…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이건 마음으로 공부하자는 뜻인지, 마음을 공부시키자는 뜻인지, 마음의 공부를 하자는 뜻인지 애매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셋 다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저렇게 생각해보면 이중에 정답은 오직 하나인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작용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잠시도 머물지 않으며, 번개같아서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다. 원숭이같아서 다섯 가지 욕망의 나무에서 노닐며, 화가같아서 갖가지 형상을 그린다”라는 <심지관경>의 말씀이라든가 “마음은 선악의 근원이니 선악의 뿌리를 끊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고 해탈한 다음에라야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법구비유경>의 말씀을 떠올려보면 ‘마음공부’란 말은 마음을 공부시킨다는 뜻이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초입에 자꾸만 늘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 하니 마음공부를 표현하는 가장 멋진 말이 생각납니다 ― 회심(廻心)이 그것입니다. 회심은 ‘마음 돌리기’입니다. 마음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옳지 않은 일을 한 것을 반성하는 일이 그 첫째입니다. 회심참회(廻心懺悔)라고 부릅니다.
“만약 저지른 악업이 있어도 마음을 돌려 고백해서 앞서의 잘못을 반성해 깨닫고 마음을 집중하여 거듭 참회한다면 비록 악업을 지었다 해도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라고 <분별선악보응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경에서는 ‘마음을 돌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마음이 굳어 있습니다. 그건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질렀는지를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가 어려워 마음이 굳습니다. 그 굳은 마음이 스르르 풀어져서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이것은 바로 참회의 시작이고 참회의 전부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마음 돌리기는 쪼그라들어서 바늘 하나도 꽂힐 여유가 없던 마음을 좀 크게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회심향대(廻心向大)라고 부르는 이것은 저 혼자만의 행복과 완성을 추구하려던 목표를 수정해서 세상을 향해 아주 크게 인심을 쓰는 일입니다. 인심을 쓴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를 이렇게 살아가게 해준 세상에게 은혜를 갚는 차원입니다. 세상을 향해 크게 마음을 돌리는 이 일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림없습니다.
<보리심론>에서는 “만약 결정적인 믿음과 지혜를 얻지 못한 사람은 겁의 한정을 논할 것 없이 인연을 만나야만 회심하여 대승의 길로 향하게 되나니(回心向大) 부처님께서는 방편으로 성을 세우셔서 삼계를 벗어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옹졸한 마음을 돌려 크게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부처님과 같은 큰 스승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주 법회에 참석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경전과 불교서적이라도 부지런히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가을은 풍요와 수확의 계절이라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름 농사를 망친 가난한 살림살이에는 참 빨리도 살얼음같은 추위가 찾아들 듯 마음을 잘 길들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혹독한 세상살이의 번뇌가 찾아올 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가난한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마음 돌리기(회심)’ 수행을 한번 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