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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비의 음료 ⑦ 커피의 상품화/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각성과 지적음료로 인식되었던 커피에 가장 역동적이고 활발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세기 즈음이다. 커피 플랜테이션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커피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자유로운 음료가 됐다. 커피가 지식인이나 부유한 사람들만이 마시던 사치품을 넘어 대중성을 갖추면서 노역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활력을 주는 음료가 된 것이다. 또한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부상하면서 밀수꾼과 수입업자, 투기꾼에게 커피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매력적인 곳으로 변하게 된다. 수입업자들은 커피가 배고픔을 없애 주는 영양식품이라고 선전하면서 정부에게 관세를 낮추어 줄 것을 요구했다.
초기의 커피 가격은 주로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경매를 통해 결정됐다. 경매소에서 거래된 커피는 그 해의 작황이나 공급량과는 상관없이 풍문이나 투기꾼의 입김에 의해 가격이 결정됐다. 그것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또한 커피 상인들은 높은 가격을 받기위해 ‘펄(pearl) 커피’ ‘모카커피’ 등 커피에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상표를 붙이기도 했다.
소매업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커피에 다른 것을 혼합하여 판매했는데, 그 결과 혼합된 형태의 커피가 생겨났다. 이를 계기로 커피 블렌딩이 그 당시 유행을 이끌었다. 그것이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른 형태의 커피 생산을 가능케 했으며 커피 산업이 촉진되는 바탕이 되었다.
한편 룽게는 연구 끝에 1820년경 최초로 커피에서 각성성분을 추출하고 그것을 카페인(Caffeine)이라 명명했다. 몇 년 후인 1827년 영국인 오드리(Oudry)는 차(茶)에서 같은 물질을 추출하고 이를 테인(Theine)이라고 명했으나 이것은 커피의 카페인과 동일한 성분으로 판명됐다. 커피와 차에 동일하게 함유되어 있는 카페인은 인간의 에너지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인류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카페인이 불면증과 신경쇠약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알려지면서 커피는 부정적인 음료로 인식되었고 마시는 것을 삼가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괴테는 커피를 즐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불면증을 카페인 탓으로 지적하고 아내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맛과 향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 아버지가 커피 감별사였던 브레멘의 커피상인 로젤리우스는 오랜 연구 끝에 커피의 풍미를 해치지 않고 커피콩에서 카페인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1906년 부레멘의 한 공장에서 디 카페인 커피가 만들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반면에 19세기의 커피가 단순히 양적증가나 상품화 같이 이윤추구 모습만을 보인 것은 아니었으며 커피하우스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비엔나식 커피문화는 초승달 모양의 크로아상과 웨이터가 따라준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하우스 안에서 그들의 호칭은 부유한 손님에게는 귀족적인 호칭인 폰(von)으로, 지식인은 교수님이나 박사로 호칭하는 등 신분이 격상되었다. 단골들을 위하여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명예훈장을 받는 커피하우스 주인들도 있었다. 커피하우스는 주택에 딸린 부속 건물처럼 블록 마다 있었고, 관청 옆에는 어김없이 있었다. 공적인 업무는 관청에서 이루어졌지만 일반적인 사교나 교류는 커피하우스에서 행해졌다.
이러한 커피 문화는 수년을 걸쳐 이어져 오늘날까지 그들의 삶속에 남아있다.
2006-09-09 오전 10: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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