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에서 신해수증(信解修證)을 언급하며 36장까지는 신해(信解)이고 37장부터 수증(修證)을 말한다고 하였다. 신해는 부처님의 법을 기꺼이 믿고 확실하게 아는 것이며, 수증은 부처님의 삶을 실천 수행하여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아는[信解-頓悟] 그 자리에서 바로 깨쳐[修證-頓修] 더 이상 공부해야 할 것이 없는 것이 돈오돈수이다. 그러나 돈오점수는 선지식의 도움으로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안 듯하지만[信解-解悟] 확실한 자기 체험이 없기에 수행을 통하여 깨쳐나가는 과정[修證-漸修]이 필요하다. 따라서 돈오점수를 해오점수(解悟漸修)라고 말하기도 한다. 38장에서는 참선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帶 修禪 如蒸沙作飯 帶殺修禪 如塞耳叫聲 帶偸修禪 如漏 求滿 帶妄修禪 如刻糞爲香 縱有多智 皆成魔道.
다른 사람들과 좋지 않은 어두운 관계를 맺으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고 하는 것과 같고,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으며, 남의 소유물을 몰래 훔치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깨진 그릇에 가득 물을 채우려고 하는 것과 같고, 거짓말을 하면서 참선을 하는 것은 냄새나는 똥으로 향기로운 향을 만들려고 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참선은 설령 지혜가 있더라도 모두 마도(魔道)를 이룰 뿐이다.
원문의 ‘대음(帶 )’은 음행( 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좋지 않은 어두운 관계를 맺는 것이고, ‘대살(帶殺)’은 살생(殺生)으로서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며, ‘대투(帶偸)’는 도둑질로서 남의 소유물을 몰래 훔치는 것이다. ‘대망(帶妄)’은 거짓말로서 특히 여기서는 공부하는 사람이 참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도 ‘재물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거짓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엄청난 거짓말’을 말한다. 이 네 가지 계율을 잘 지켜야 마음이 고요한 선정 상태로 들어갈 수 있으며, 마음이 고요해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하나의 몸과 같아서 같이 배워 나가야 하므로 삼학(三學)이라고 한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此明 修行軌則 三無漏學也. 小乘 法爲戒 粗治其末 大乘 攝心爲戒 細絶其本 然則法戒 無身犯 心戒無思犯也. 淫者斷淸淨 殺者斷慈悲 盜者斷福德 妄者斷眞實也. 能成智慧 縱得六神通 如不斷殺盜淫妄則 必落魔道 永失菩提正路矣. 此四戒 百戒之根故 別明之 使無思犯也. 無憶曰戒 無念曰定 莫妄曰慧. 又 戒爲捉賊 定爲縛賊 慧爲殺賊.又戒器完固 定水澄淸 慧月方現. 此三學者 實爲萬法之源故 特明之 使無諸漏也. 靈山會上 豈有無行佛 少林門下 豈有妄語祖.
이 단락은 수행의 본보기로서 ‘번뇌를 없애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밝힌다.
소승은 눈에 보이는 법만 받아 계율로 삼아서 대충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다스리지만 대승은 잘못 쓰는 마음을 거두는 것을 계율로 삼아서 세밀하게 그 잘못의 근원을 끊어버린다. 그러니 겉으로 나타난 법으로 지키는 계율은 몸으로 어기는 일이 없겠지만, 마음으로 지키는 계율은 생각조차 범하는 일이 없다.
사람들과 어두운 관계를 맺는 것이란 맑고 깨끗한 성품을 끊는 일이요,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을 없애는 것이다. 남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은 복덕을 없애는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끊는 행위이다. 지혜를 완성하여 육신통을 얻을지라도 네 가지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마도(魔道)에 떨어져 ‘깨달음으로 가는 바른 길’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이 네 가지 계율이 온갖 계율의 근본이 되므로 따로 분명하게 드러내 생각조차 범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한 것이다.
마음 바탕에 분별이 일어날 아무런 흔적도 없는 것을 계율이라 하고, 헛된 생각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 계율이란 그릇이 올곧고 굳세어서 선정이라는 물이 점차 맑고 깨끗해져야 지혜라는 둥근 달이 비로소 나타난다. 이 계정혜 삼학이 진실로 온갖 법의 근원이 되므로 특별히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내어 모든 번뇌를 없애게 한다.
육신통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여섯 가지 신통력을 말한다. 첫번째 신족통은 자유자재하게 원하는 곳에 몸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다. 두번째 천안통은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이 생사에서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걸림없이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세번째 천이통은 육도 중생이 말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네번째 타심통은 육도 중생이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일들을 다 알 수 있는 능력이다. 다섯번째 숙명통은 자신과 육도 중생들의 많고 많은 전생 일을 다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여섯번째 누진통은 중생계의 모든 번뇌를 끊었으므로 다시 삼계의 고통을 받지 않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신통을 갖추었을지라도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뿐더러 부처되는 길조차 영원히 끊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