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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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착한 일 하고도 화를 낸 남자/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내는 것에 대해서 관대한 종교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팔다리가 다 베여도 화를 내지 않는 인욕선인의 교훈이라든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까지 내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불뚝 불뚝 치솟는 분노를 참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화를 내는 일은 옳지 않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치솟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일만큼 참기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막 믿음을 일으킨 한 남자가 모처럼 부처님과 승단의 스님들을 모두 초청하여 아주 맛난 음식을 대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남자는 자기 집에 부처님과 천 명이 넘는 스님들이 몰려오자 말할 수 없는 자부심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는 손수 스님들의 발우에 음식을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그날 아침에 하필이면 미리 죽을 먹어서 속이 든든하였습니다. 이미 배가 불러 있던 스님들은 “조금만 주시오” “조금만 주시오”라며 자꾸만 사양하였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좀 서운해졌습니다.
“스님, 믿음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공양이라서 조금만 받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음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조금도 사양하지 마시고 맘껏 드십시오.”
스님들이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죽을 배불리 먹고 왔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대체 이 스님들은 나의 공양초청을 받았으면서도 오늘 아침에 죽을 먹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애초에 계획했던 커다란 보시는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남자는 불쾌해지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에게 모욕을 주려고 발우에 넘치도록 음식을 채우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 드시든지 가져가서 드시든지 맘대로 하십시오.”
자기는 온갖 정성을 들여서 귀한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스님들은 ‘얻어먹는 주제에’ 고맙게 받아서 먹지 않고 이미 배부르다고 사양하는 것이 아니꼬웠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양을 마치고 부처님과 스님들이 떠나자 집에 홀로 남은 남자는 곰곰 생각에 잠겼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자기가 오늘 한 짓이 잘한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돈과 정성을 쏟아 붓고도 화를 내고 심술을 부렸으니 이익은커녕 해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는 불현듯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아뢰었습니다.
“아,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서 떠나신 뒤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후회합니다. 저는 오늘 참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렇게 화를 내고 불쾌해하며 심술을 부리고 스님들을 모욕하였으니 복을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오늘 한 일은 복된 일일까요, 복되지 않은 일일까요?”
부처님은 과연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꾸짖으셨을까요?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가 오늘 승단을 초청하던 그 순간부터 그대는 많은 복을 쌓았소. 또한 비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었던 그 순간에 이미 그대는 많은 복을 쌓았소. 보시를 크게 하였으니 큰 복을 받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떠나갔습니다. 그 남자가 떠나간 뒤에 부처님은 스님들을 불러서 조용히 꾸짖으신 뒤에 재가자의 초청을 받은 날은 다른 사람이 제공한 음식을 미리 먹어서는 안 된다는 율을 제정하였습니다. <마하박가>
기껏 고생하며 남 좋은 일 해놓고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여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오히려 원성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이 옳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화를 내고 후회하는 남자에게 부처님이 그것을 문제 삼아 질책하지 않고 “좋은 일했다”며 그의 선행과 장점만을 인정하고 격려해준 것이 의외였습니다.
그럼,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은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길 잃은 사람이 서둘러 길을 바꿔야 하듯이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뉘우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속으로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후회하고, 분노에 사로잡혔던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라고 <출요경>에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2006-09-04 오전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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