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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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치로는 단숨에 깨닫지만/원순 스님(송광사 인월암)
신해수증(信解修證)은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먼저 신(信)은 부처님의 법을 즐거이 믿는 것이고, 해(解)는 부처님의 법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수(修)는 그 법을 삶 속에서 바로 실천 수행하는 것이고, 증(證)은 이 실천 수행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선가귀감> 36장에서 “24장부터 이 장까지는 신해(信解)를 말했다”고 하였다. 신해수증(信解修證)에서 신해(信解) 부분을 말한 것인데, 이 내용으로 모든 것을 깨우쳤다면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다. 신해 그 자리에서 모든 수행이 끝나 공부를 다 마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박에 듣고 깨우치는 것을 돈오돈수(頓悟頓修)라고 한다.
그러나 선지식의 가르침으로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았지만, 머리로만 알았지 몸과 마음으로 이 세상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했다면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세상을 깨쳐나가야만 한다. 이를 부처님의 세상에 대한 이치를 깨닫고 점차 닦아간다고 하여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한다.
같은 돈오이지만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말하는 돈오는 그 뜻이 확연히 다르다. 돈오돈수에서 돈오는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아(信解-頓悟) 그 자리에서 바로 깨쳐(修證-頓修) 더 이상 공부해야 할 것이 없다. 그러나 돈오점수라 할 때의 돈오는 선지식 도움으로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안 듯하지만(信解-解悟) 확실한 자기 체험이 없기에 수행을 통해 깨쳐나가는 과정이(修證-漸修) 필요하다. 이를 돈오돈수의 돈오와 구분해 해오(解悟)라 부르기도 한다. <선가귀감> 37장부터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통하여 깨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수증(修證)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단숨에 깨달을지라도
현상은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치는 근본도리로서 천진한 부처님의 세상이요 현상은 연기법으로서 중생계의 모습이다. 서산 스님은 <원각경>에 나오는 문수보살과(신해) 보현보살에(수증) 비유하여 이 단락을 설명한다.
文殊達天眞 普賢明緣起 解似電光 行同窮子 此下論修證.
문수보살은 본디 모습이었던 천진한 부처님 세상을 지혜로써 통달했고 보현보살은 이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연기법을 보살행으로써 밝혔다. 중하근기 중생들이 부처님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번갯불 같아 보여도, 그 살아가는 모습은 가난한 집 아들과 같으므로 부처님 아들이 되게 하고자 여기서부터 수증(修證)을 말한다.

문수를 뜻으로 풀이하면 ‘묘수(妙首)’라고 한다. 문수보살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이 크므로 묘(妙)라 하고, 그 지혜는 모든 지혜 가운데 으뜸이기에 수(首)라고 한 것이다. 이는 문수보살의 지혜가 온갖 행을 만들어나가는 바탕으로서 오묘한 작용을 해내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행에 지혜가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는 삿된 법이 되고 필경에 마구니의 종자가 된다. 그러므로 보살행 가운데에는 지혜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수행을 일으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보현보살’이다. 널리 베푸는 것을 ‘보(普)’라 하고 큰 덕을 ‘현(賢)’이라고 하니, 보현보살은 큰 자비로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이익을 주며 온갖 보살행으로써 부처님의 공덕을 성취해 가는 보살이다. <원각경> 문수보살장에서는 모든 중생이 청정한 원각(圓覺)을 깨닫도록 ‘신해(信解)’를 드러내었고, 보현보살장에서 이 신해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수증(修證)’을 드러낸 것이다.
함허득통 스님은 보현보살장을 해설한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기름과 불은 서로 의지하고 눈과 발은 서로 돕는다. 불이 기름을 얻지 못하면 밝은 불빛이 타오를 수 없고, 발이 눈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몇 발자국밖에 걸을 수가 없다. 불은 기름을 얻어야 더욱 밝아져서 그 불빛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발은 눈이 있음으로써 더 먼 길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고 하는 수행은 불빛을 환하게 밝혀주는 기름의 역할과 같고, 수행을 하는 데 깨달음에 대한 신해(信解)는 먼 길을 가는 데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눈의 역할과도 같다.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면서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신해는 반드시 공허하고, 수행을 하면서도 부처님의 세상을 신해하지 못한다면 그 수증(修證)은 반드시 몇 걸음밖에 나아가지를 못한다. 이 때문에 수행을 하려면 모름지기 먼저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아야 할 것이요, 이미 부처님의 세상을 믿고 알았다면 모름지기 수행을 해 이 자리를 깨쳐나가야 할 것이다.”
함허 스님은 게송으로 말한다.
正解已成須起行 普賢所以問其方
離幻拂到無所離 不可離者是眞常.
바른 信解 알고 난 뒤 修證 실천해야 하니 보현보살 묻는 이유 그 방편이 알고 싶네.
幻을 떨쳐 떨칠 幻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幻 사라진 이 자리가 부처님의 극락세계.
2006-09-04 오전 1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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