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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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무진거사 장상영 드디어 깨치다/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간화선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선사의 〈서장>은 62편의 편지글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 편지의 주인공은 승려 2인(성천 각 화상, 고산 체 장로)과 여성 1인(진국태부인)을 제외하곤 모두가 재가거사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간화선은 승속에 별로 차별을 두지 않는 수행법이기도 하다. 간화선의 저변화, 대중화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진(無盡)거사 장상영(張商英 1043~1121)의 깨침의 기연은 비교적 기록이 충실하다. 특히 선가에서 가장 어렵다는 공안으로 알려진 ‘덕산탁발(德山托鉢)’을 통해 인가를 받고 정법안장을 갖추게 된다.
‘덕산탁발’에 대하여 잠깐 사족을 붙인다면 그 전말은 이러하다.
덕산선감(782~865) 선사가 어느 날 밥이 늦으니 손수 발우를 들고서 큰방으로 올라갔는데, 이를 보고서 설봉의존이 말하기를 “저 노장이 종도 치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이 그 말을 듣고는 ‘그냥 되돌아갔다’는 것에서 연유한다.
무진거사의 화두공부는 후일 강서의 조운사(遭運使)가 되어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인근의 법석을 두루 참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운사란 국가에 세금으로 납부되는 공물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맡은 책임자를 말한다. 동림상총 선사에게 법을 받은 이후에도 그의 행각은 끝이 없었다.
도솔종열(1044~1091) 선사와의 인연도 재미있다. 무진거사가 오기 전에 종열선사의 꿈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해를 움켜잡는 꿈을 꾸었는데 이 이야기를 수좌에게 했다.
“태양이란 움직이며 돈다는 것이다. 무진거사 소임이 조운사이니 이 역시 늘 움직이며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다. 그가 머지않아 이곳을 지나간다고 하니 내가 그를 만나 큰 송곳으로 찔러줄 것이다. 그가 만약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인다면 우리 불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진거사와 도솔종열 선사가 밤늦게 자리를 마주앉았다.
“조운사를 동림선사께서 인가하셨다는데 무엇이 그리 의심나는 곳입니까?”
“예! 천칠백 공안 중에 오직 ‘덕산탁발’ 화두에만 의심이 갑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도 알음알이로 따지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야 어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겠습니까?”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였다. 새벽녘에 자기도 모르게 요강을 걷어차 엎어버렸는데 그 순간 크게 느낀 바 있었다. 몹시 기뻐서 바로 종열선사 방장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도적을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장물은 어디에 있느냐?”
무진이 어물어물하며 말을 못하자 선사가 말했다.
“돌아가시오. 해 뜨거든 아침에 다시 봅시다.”
그리하여 그는 게송을 지었다.

북도 종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오니(鼓寂鐘沈托鉢回)
암두의 한마디 꾸중은 벽력과 같네(巖頭一 語如雷)
과연 삼년 밖에 못살았으니(果然只得三年活)
이는 그에게서 수기 받은 것 아니겠는가(莫是遭他受記來)

이튿날 아침 무진거사가 가지고 온 이 게송을 보고 선사는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뒷날 도솔종열 선사는 그의 깨침을 인가하였다.
2006-09-04 오전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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