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인텔사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그로브 박사. 그가 저술한 <오직 편집증환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은 10년 전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 책은 자기의 전공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편집증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그 분야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도체 업체의 경향이 설계로부터, 생산에 걸친 모든 분야를 한 회사가 종합하던 패라다임(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에서 한 분야에 집중하는 조그만 회사가 더 경쟁력을 가지는 패라다임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10년은 설계만 하는 회사,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 회사, 소프트웨어를 개발 하는 회사, 칩을 잘 조립하는 회사로 분리돼 서로 협력하는 비즈니스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전 분야를 다 종합하는 회사(IDM: 인텔, 삼성전자, 하이닉스 반도체가 이에 해당)가 더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핸드폰 등과 같이 새로운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 회사 내에서 모든 업무를 신속하게 수행하는 것이 빠르게 반도체 칩을 만드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과학기술을 개발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방법 또한 시대에 따라서 변화한다.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분야별로 나누어서 연구개발을 잘 하는 것이 더 유리할 때도 있고, 한 사람이 전체를 잘 종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때도 있다. 그리고 개인별로 보면 나누어서 분석을 잘 하는 사람과 전체를 종합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 흔히 한국 학생들은 종합보다는 분석을 잘 한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적인 요인이 있을 수도 있고 교육에서 요인을 찾을 수 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초등학교 수학시간을 참관해 보면, 덧셈을 가르칠 때 2+3의 답을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무엇과 무엇을 더하면 5가 될 것인지를 묻는다. 이러한 학습이 학생들에게 종합적 사고능력을 키워 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해서 핸드폰이나 컴퓨터 핵심 반도체 칩을 설계할 때, 처음에는 추상적인 설계 단계를 거친다. 이 때에는 한 가지 해답이 없기 때문에 추상적이면서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일단 추상적인 단계를 거쳐서 구상화되면 동작을 위한 회로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복잡한 회로를 배치시키는 기하학적인 단계와 분석 단계를 거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면,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주의 존재를 ‘공(空)’이라는 사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한 예다. 아마 이러한 표현방법은 현재 인도 과학자들의 추상화 능력에 큰 도움을 줬을지 모른다. 불경에서는 인연법이나, 4성제, 팔정도 등의 개념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불법을 배우면서 인간의 진정한 삶의 방향과 우주의 실상에 대해서 종합하는 능력과 해석능력을 같이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