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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비의 음료④ 루이 14세와 커피/이창숙(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연구원)
17세기 중엽, 프랑스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일 정도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루이 14세(1638~1715)는 귀족들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짐이 곧 국가’라는 절대 왕정의 상징 속에 예술적 안목이나 가치조차도 자기의 눈높이로 강요했다. 특히 루이 14세는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프랑스의 커피문화를 이룩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왕이다.
마르세유에서 유행된 커피는 처음에는 파리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파리지엔(Parisians, 파리토박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터키 술레이만 아가 대사가 프랑스와의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에 거주했던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자기 과시와 관심 받기를 좋아했던 루이 14세는 술레이만 아가 대사와 만남을 위해 궁전의 온갖 실내장식과 호사스런 의상을 마련했고 신하들조차 치장을 하고 그를 맞이하게 했다.
술레이만 아가 또한 루이 14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상당량의 커피와 잔, 포트, 의상 등 터키의 신비한 문화를 가지고 와서 궁정에 소개한다.
이후 술레이만 아가는 파리에 저택을 구입하여 터키식으로 집안을 꾸몄다. 페르시아 풍의 분수와 집안의 은은한 장미 향기, 기대앉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무릎을 꿇은 하인들에게서 시중을 받으며 뜨겁고 쓴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이것은 파리 귀족, 특히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커피 기구, 중국 도자기, 잔, 냅킨 등 프랑스에서 아직 유행되지 않았던 물품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것들은 프랑스 궁정, 군비 상황 등 자세한 많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의도였으며 프랑스 내정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전쟁으로 국가재정이 어렵게 된 루이 14세는 군비 자금 마련을 위해 커피를 전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 14세는 다음과 같은 칙령을 발표한다. “마르세유와 루망 외 다른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커피, 차, 초콜릿의 수입을 금지한다.” “커피에 완두나 콩, 기타 작물과 혼합하여 판매하는 것을 금한다.” 등등. 그러나 이러한 전매제도는 결국 커피 값을 높이게 되었으며 시장에서 외면을 받으면서 전매권을 장악했던 다망도 파산하게 되었다.
당시 커피는 아직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었으므로 전매제도는 사실상 시기상조이었다. 이후 전매제도의 거듭된 실패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카페는 영국과는 달리 남녀의 출입이 자유로웠으며 공무원, 도박꾼, 노동자 등 평민들의 집합소였다. 이들은 이곳에 간다는 자체만으로 큰 즐거움을 느꼈다.
카페 주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증류주 제조업을 하는 ‘음료 공급업자’들에게 허가증을 주어 운영할 수 있게 했다. 허가증은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기술을 증명해 보이거나, 교육을 받았다는 증서가 아니며 단지 왕의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18세기가 되면서 종교와 사회적 변화 그리고 다방면에 걸친 개혁의 징후들이 출현했으며 문학을 통해 커피의 유용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유명한 철학자이었던 몽테스키외는 “커피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고 네 배 이상 총명해지게 한다”고까지 극찬했다.
이 시대의 카페는 파리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이자 커피 한 잔을 놓고 하루 종일 앉아 사색하고, 말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장소였다.
2006-08-21 오전 11: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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