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믿고 진짜로 공부하려는 마음이라야
(지난 호에 이어서)
천도를 시켜달라고 할 때 스님네들이 어떻게 하든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떡 한 그릇을 놓고 하든지 물 한 그릇을 놓고 하든지.
외국에서 천도를 시켜달라고 그래서요, 초하고 물하고 향 하나 하고 이렇게 해서, 그것이 아니라도 되는데 그거라도 방편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 그날 저녁에 틀림없이 나타나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라는 거죠. 벌써 영령들은 알거든요. 그렇게 해서 지내주고 다녔지, 다니면서 목탁 들고 다녀, 무슨 뭘 들고 다녀요? 그리고 외국에 나가 있을 때 한국에서 천도해 달라고 보내도 “알았다.”고, 그게 천도지 뭐 다른 건가요. 내 (가슴을 짚어 보이시고) 마음이면, 이 마음이라는 이 자체는 아주 작다면 작고, 없다면 없고, 있다면 이 삼천대천세계를 싸고도 남아요.
그러니 그 관습에 젖어서 무슨 이사를 갈래도 못 가고 날짜를 봐야 하고, 제사를 지내도 왕창 차려놓고 해야 하니까 “아휴, 그냥 바쁘기는 한데 이런 것 해야 하고 아휴, 제사가 왜 이렇게 많아?” 하고 그냥 잔소리 군소리 죄 할 거 다 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간단하게 하면 군소리 할 것도 없고, 바쁠 것도 없고 그리고 정성은 정성대로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처럼 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으면 못 사는 세상에. 그러니 시대가 발전이 되고 과학, 의학 모든 것이 발전이 된다 하면은 우리 인간도 좀 달라져야 그 발전에 대비를 할 수 있어요. 마음이 발전이 돼야 모든 게 물질도 발전이 돼서 나오죠. 마음의 발전이 없는데 어떻게 물질이 발전이 돼서 나오겠습니까? 질문하실 것 있으면 질문하세요.
▲질문자1(여): 스님, 안녕하십니까? 저의 남편이 삼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가지고요, 여태 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 모레 또 수술을 하게 되는데 스님께 좀 도와달라고 왔습니다.
▲스님: 그건 질문이 아니에요. 여기 스님네들한테 관하는 도리를 배워가세요. 관하는 도리는 아십니까?
▲질문자1(여): 잘 모릅니다.
▲스님: 처음 오신 분이로군. 그러면 관하는 도리, 아까 얘기했죠. 자기가 길을 가다 넘어지면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만 일어나진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도리를 저 스님네들한테 이따 물어서 알아가지고 가세요.
▲질문자2(남): 오늘 네 가지를 스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질문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주인공에 놓고 맡기는 것 외에는 별도의 수행 방법을 강조하시지 않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좌선이 좋은 수행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생활이 곧 참선이다 하는데, 과연 생활 중의 모든 언행을 곧 참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얼른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생활이 곧 참선이라는 스님 말씀의 참뜻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아이 참, 그저 평상시에도 항상 강조하는 게 그건데…. 여기 선생님이 이렇게 있다면 선생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시죠. 일상생활의 일거일동말입니다. 이 세상이 형성된 것부터 죽는 것 사는 것, 일체 만법을 들이고 내는 것 전체 말입니다. 그걸 누가 합니까? 자기, 자기가 하죠. 자기가 하고 자기가 내고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겁니다. 앉아도 참선이요, 서도 참선이요, 누워도 참선이요, 또 일을 해도 참선이요, 행선ㆍ와선ㆍ입선ㆍ좌선 다 한데 합쳐서 생활하는 자체가 그대로 참선이다 이런 소립니다. 그러면 그것을 일일이 따지지 마시고 일상생활의 모든 걸 내 마음속에서 한다, 그냥 들이고 내는 것이 한마음이다 이런다면, 그냥 거기다가 놓고 돌아가면, 믿고 놓으면 그냥 이것저것 따로따로 챙길 게 없이 그대로 놓고 가면 그것이 참선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두 번째는 그렇게 놓는 반면에 그렇게 놓고 지켜보고, 지켜보는 게 바로 관하는 겁니다. 지켜보고 체험하는 그것이 참선입니다. 뭐 별 다른 게 참선이 아닙니다. 내게 일일이 다가오는 것 그저 거기다 맡겨 놓고…, 즉 말하자면 오늘도 차 타고 오면서 봤는데요, 차가 망가져도 운전수 탓이고, 차가 받혀도 운전수 탓이지, 차를 가지고 누가 말하는 사람 없더라고요. 차 운전수 붙들고 야단이지. 하하.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몸뚱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운전수. 그러니깐 그 운전수가 모든 걸 해나가는 거니까 운전수에다 모든 거를 한데 모아서, 그냥 모으고 안 모으고도 없어요. 거기 놓고 그냥 돌아가는 그것이, 그러고 지켜보고 체험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나 몰라라 거기다가 그냥 ‘너 알아서 해라, 너 알아서 해라.’ 이러고 가도 아니 되고, 허허허. ‘너만이 할 수 있어. 너만이 할 수 있어. 가고 오는 것도 다 너만이 알고 너만이 물리가 터지게 할 수 있어. 이끌어가게 할 수 있어. 이끌어갈 수 있어.’ 하는 거죠.
▲질문자2(남): 두 번째는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짐작하기로는 여여하게 자유인으로 행하라는 뜻으로 사려됩니다만 그렇다면 마구니가 온다 해도 막지 않고 부처가 간다 해도 붙잡지 않는 것인지 한 말씀 여쭙고자 합니다.
▲스님: 우리가 수행을 하려면요, 가는 것 일부러 그냥 쫓아가서 잡고 이러기보다는 가는 것 잡지 않고 오는 것 막지 않고 무조건, 하다못해 부처가 온다 하더라도 꿀떡 삼킬 수 있고 또는 마구니가 온다 하더라도 꿀떡 삼킬 수 있어야만 됩니다. 그건 뭐든지, 하다못해 소를 한 마리 잡아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꿀떡 삼킬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깨닫지 않으면 그 도리를 납득을 못합니다. 가는 것 잡지 않고 오는 것 막지 않는다, 이 뜻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표현을 하자면, 즉 말하자면 지금 말했듯이 어떠한 거든지 걸려서 안 된다. 그냥 놓고 가는데, 그 가는 것도 오는 것도 그대로 법인데 뭣 때문에 간다 온다 야단법석을 하겠습니까? 공부하는 도중의 수행자는 그렇다 이겁니다.
▲질문자2(남): 세 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공에게 맡긴다, 주인공을 관한다고 할 때에는 맡기는 자와 맡는 자, 관하는 자와 관하는 대상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을 ‘주인공 당신’이라고 하게 되면 마치 주인공이라는 대상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 맡기고 그것을 관하는 줄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주인공’ 하고 자주 생각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을 대상화하여 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스님: 그러게 누가 상대를 두고 해달라고, ‘주인공! 해주시오.’ 하고 하라고 했습니까? ‘네 몸뚱이 네가 고장 났으면 네가 고쳐서 끌고 가라.’ 이렇게 놓으라고 그랬지. 하하하 (대중 웃음) 아니 ‘네가 잘못했으면 네가 해결해라.’ 그러고 놓으라고 그랬지. 그리고 ‘네가 벌여놓은 거니까 네가 수습해라.’ 하고 놓으라고 그랬지. 하하하. 그것이 마음 없는 마음이 다스리는 겁니다. 이 모두를 둘로 보지 마세요. 이 주인공을 상대로 놓고 해달라고 한다면 아니 됩니다. 그것은 벌써 잘못 들어가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네 몸뚱이 이렇게 만든 것도 너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너니까 네 몸뚱이 네가 끌고 가려면 건강하게 끌고 다녀라.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놓을 수 있고, 그 놓을 수 있는 마음이 믿음직해야 됩니다. 그냥 장난기처럼 그냥 아무렇게나 해버리는 그런 것은 핀트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둘로 보지 말고 열심히들, 어떠한 거든지 둘로 보지 마시라 하는 그런 얘기를 예전부터 많이 해드렸습니다. 수억겁 광년으로부터 우리가 미생물에서부터 광력을 찾고, 이 모든 진화를 찾고 형상을 찾고 이렇게 해서 돌아온 이 자체를 볼 때에 만나서 헤어졌으면 또 딴 걸로 모습을 가지고 나와서 또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이렇게 해왔으니, 지금 생각을 한대도 어떠한 부모가 됐을 때 부모라고 하고 어떠한 자식이 됐을 때 자식이라고 할까 하는 겁니다. 그랬을 때는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는 거고 내 형제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모습은 다를지언정 그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말입니다.
▲질문자2(남): 네 번째는 오조 홍인 대사께서 육조 스님께 의발을 전하신 뒤 길을 떠나라고 하시니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품을 회(懷)자가 든 고장에서는 머물고 모을 회(會) 같은 데는 감추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인 대사께서 하신 말씀을 스님의 뜻으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스님: 이것을 뜻으로 생각한다면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는 그건 자기가 가는 거지 누가 대신 가주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한마음에 뿌리와 나무 가지, 잎새, 열매가 모두 익어서 제대로 맛을 아는 자에게, 그 도리를 아는 사람한테는 행해주고, 즉 행하고 거기 머무르고, 또 그냥 겉탕으로 이렇게 모일 때는 감추어라. 즉 자기가 행하지 마라, 이 소립니다. 이게 이 속마음을 알고 이렇게 하는 사람 앞에는, 듣고 받아들이고 하는 자에게는 머무르지만 이게 겉탕으로 모여서 흉이나 하고 그러는 자에게는, 겉탕으로 하는 자에게는 아예 말문을 열지 마라, 감추어라 이 소리거든요. ‘그래, 어디 간다 하더라도 네가 알아서 그렇게 해라. 그 자리가 바로 네 자리니라.’ 이런 거거든요. 말은 할 줄 몰라도 뜻은 알지 않습니까? 하하하. (대중 웃음)
그러게 이 마음공부를 이끌어가는 이 자체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알고 보면 오히려 더 쉬운 일이죠. 세세생생에 끄달리고 돌아가면서 이 모습으로 태어나고 저 모습으로 태어나면서 이렇게 하기보다도 거기에서 그냥, 여러분이 오신통을 다 가지고 있는 그 속에서도 훌쩍 벗어난다면 견우와 직녀 속에서 훌쩍 벗어나는 겁니다. 예.
▲질문자3(남): 작년 4월 울산 KBS 공개홀에서 스님 뵙고 그때 말씀 네 마디를 듣고 지금 한 마디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계속 공부를 하다보니까 이제….
▲스님: 뭘 가지고 있다고요?
▲질문자3(남): 한 마디요. 말씀 한 마디만 가지고.
▲스님: 네.
▲질문자3(남):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믿고 이제 계속 했습니다. 하다가 보니까 지난번에 와가지고 울산 아들이라고 질문을 드릴 적에도 다 외우고 있고, 또 먼저 지난 4월달에 와가지고는 제가 질문하려니까 스님께서 박문수 어사 백지 얘기를 미리 하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제가 질문을 못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기 와가지고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번에 주지 스님께서 울산에 오셨을 때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이걸 하다보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면은 회사에 출근해가지고 퇴근할 적에 불상인 부처가 탁 나타났습니다. 도로를 건너는데, 한길을 건너는데 나타났습니다. ‘아, 그래 이게 뭔가.’ 하고 찾으려는데 계속 찾으려는데 못 찾았습니다. 오늘 들어와 찾았습니다. 어떻게 찾았느냐 하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속에서 엄마가 저를 낳고 일찍 세상을 버렸습니다. 그게 한 네 살쯤 되었습니다. 그래 한 네 살쯤 돼서 혼자 걸어 다니면서 놀잖아요. 노는데 새로 처녀가 시집을 와서 나를 키웁니다, 이제. 키우는데 노는 걸 보면 혼자면서, 누가 꼭 둘인 것처럼 얘기를 계속 하더랍니다. 가보면 혼자 있는데 얘기는 둘이 한다 이거야. 아, 이게 뭔고 했는데 지금에 와서 알았다, 이겁니다. 집안에서는 엄마 없이 혼자서 큰다고 만날 불쌍하다, 불쌍하다 이거야. 만날 불쌍해라, 불쌍해라 이거야. 그런 말을 흔히 하죠, 그죠. 아, 그것을, 이 도리를 오늘 스님한테 받아듣지 못하였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진짜로. 그러니까 둘로 안 보고 하나로 딱 볼 적에는 전부가 나의 화신이요, 보살이라 미리미리 보여줬는데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스님: 하하하.
▲질문자3(남): 이게 맞습니까?
▲스님: 예. (대중 웃음)
▲질문자3(남): 어쨌든 간에 지금 알았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계속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하다보면 잊어버립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잊었는데 ‘불쌍해라, 불쌍해라’ 하는 게 그게 도로를 건널 적에 부처가 나타난 거하고 그때 ‘불쌍해라, 불쌍해라’ 한 그 소리가 ‘불상을 네가 해라.’ 이 소리가 아닙니까? 그죠?
▲스님: 허허. 그것도 아니에요.
▲질문자3(남): 그것도 아닙니까? (대중 웃음) 그래가지고 쭉 있다가 아버지가 하는 얘기가 “너는 머리 깎고 스님이 돼야 네 소원을 다 이룰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 이겁니다, 아버지가. 그것도 가만히 연관시켜보면 그것도 둘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그리로 가기 때문에 나는 이 길을 내가, 불법을 늦게 만났더라도 이 길을 난 분명히 가야 된다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가정 정리도 이제 어느 정도 다 돼갑니다, 이제. (대중 웃음)
▲스님: 이거 보세요. 앞의 것을 해결을 못하고, 저 먼데 것을 해결하려면 안 되십니다. 그건 자유입니다. 그렇게 갈 거는 간다 하더라도 지금 댁에 가족 있지 않습니까? 가족을 버리고 뭘 찾으러 가십니까?
▲질문자3(남): 아뇨. 곧 다 됐습니다. 스님은 여기 앉아계셔도요, 우리 집 형편까지 다 알고 계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 그리고 그 마음에서 지금 그러한 도리를 아신다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화(化)해서 자꾸자꾸, 한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됐다 남편이 됐다 이러듯이 그 마음속에서도, 이 주인공 속에서도 그저 이게 됐다가 저게 됐다가, 거지가 됐다가 마귀가 됐다가 이렇게 합니다. 그런 거에 자꾸 속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질문자3(남): 네. 알고 있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요 며칠 전에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 두 남매가 속을 얼마나 썩이는지 모릅니다. 부아를 돋우는 겁니다, 이제.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일이 말로 해가지고는 안 되고 해서 내 생각을 했습니다. ‘요놈, 또 내 화신(化身)들이 나를 속이는구나.’ 하고 돌리니까 조용하더라 이겁니다. 그런 것도 있데요.
▲스님: 하하하. 예, 참 잘됐습니다.
▲질문자3(남): 오늘 배터리 보충 멋들어지게 하고 갑니다.
▲스님: 하하하.
▲질문자3(남): 그리고 제 나름대로 백지 한 장에 그림 한 장 그려가지고 울산에서 팩스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그림 그릴 것도 없습니다. 잘하고 가시는군요. (삼배를 올리는 질문자를 향하여) 한 번만 해라.
▲질문자4(남자 어린이): 스님, 한마음 내어주세요.
▲스님: 왜?
▲질문자4(남자 어린이): 주인공 공부 열심히 하려고요.
▲스님: 오. 좋았어. 응. 그래. 한마음을 내달라고 안 해도 네 마음으로 한마음을 내면은 한마음이 된단다.
▲질문자5(남): 저는 경남 울산에서 왔습니다. 저의 안식구가 한두 달 전부터 원인 모르게 어지럽고 일어나지를 잘 못하고 이래서 울산 부산으로 여러 병원을 다녔습니다. 다니면서 별 검사를 다 해도 아무 이상도 없다고 하는데 이 원인이 과연 어디 있는지 몰라서 좀 알아보러 왔습니다.
▲스님: 허허허. 선생님이 모르시는 걸 내가 어찌 압니까마는 하여튼, 처음 오셨습니까?
질문자5(남): 예.
▲스님: 그러면 오늘 관하는 것만 알고 가신다면, 여기 주지 스님한테 들어서 관하는 것만 알고 가신다면 오늘 저녁부터라도 나을 수 있는데요. (대중 박수)
▲질문자5(남): 예. 울산 지원에서 스님들이….
▲스님: 그렇게 알고 가십시오. 이따가, 예.
저 원주에서 있었던 얘기인데, 저 답십리 그 집 남편이 교육감 노릇 할 때죠. 답곡방이 하나 있거든요, 그 집이. 거기를 들어가니까 별안간에 그냥 허우적허우적 어떤 사람이 오더니마는 그때 뇌염이 한창 많이 걸릴 때인데 애가 뇌염이 걸렸는데 그냥 몸을 비틀고 그렇게, 모두 병이 걸린 애들이 20명 된대요, 병원에. 그런데 우리 애도 그렇게 됐다던가 그랬는데, 그때는 이 관법을 가르쳐주지도 못했다고, 그냥 알았다고만 하고 그냥 갔지. 3분이 안 돼서 몸이 깨어나서 밥을 먹었다는 거야. 이렇게 좋은 법을 모두들 왜들 안 하십니까. 자기 자성신(自性神)은 외면하고 타신을 만날 믿고 목탁 두드리고 생각하고 해달라고 하고 온통 야단법석들이니, 부처님이 사십구 년 설하고 가르쳐주신 길은 어디 가서 찾죠?
▲질문자6(남): 저는 지금 자연과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자연과학을 공부하다보니까 거기서 얻어지는 어떤 의문이 많이 있었는데 불법을 통하지 않고서도 진리를 얻는 방편이 세상에 있습니까?
▲스님: 이 불법 아닌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게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이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불(佛)이야. 어떠한 벌레도 생명이 있으니깐 불이야. 그래서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이 운용하고 돌아가는 것이 그게 법이야. 생활이 그냥 법이야. 그러니까 불법이야. 너의 생명 근본, 영원한 근본, 근본이자 생활이지. 그런데 어떻게 그 생활을 벗어나서 불법이 있을 수가 있나? 모두가 불법인데. 불법 아닌 게 하나도 없는데.
▲질문자6(남): 그럼 다음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애초에 모든 것이 문명을 받기 전에 불성(佛性) 그 자체가 있었다고 배웠는데 그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요, 불성 자체로 보면 그것도 불성입니까?
스님: 뭐? 그게 잘 안 들려. 조금 떼고…. 다시 해봐.
▲질문자6(남) 애초에 불성 자체로 볼 때도요, 그것 자체에도 불성이 있는 겁니까? 애초에 있었던 불성에.
▲스님: 불성이라는 것은 어느 것에도 불성이 없는 게 없어. 우리가 이 세상 나기 전 암흑세계에서도 이 바람과 흙과 물과 이렇게 생명들이 있었기 때문에 불성이 있는 거야. 그 불성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인연이 된 거야. 삼합(三合)이 한데 합쳐지자 거기서 온기가 생기니까 불도 거기서 그냥 생긴 거지. 그러니까 모든 생명이 생긴 거지. 한데 합쳐서 생명이 생긴 거야, 인연에 따라서. 그렇게 해서 생명이 생기니까 광력을 얻은 거야. 그래서 광력이 얻어지니까 그 생산이 된 거지. 미생물에서부터 생산이 돼가지고 수없이 겪어왔잖아. 뭐 무슨 시대, 무슨 시대, 공룡시대, 무슨 시대 하고 겪어오면서 발전이 된 거지. 그러다 인간까지 발전이 된 거지. 그래서 인간은 맨 나중에 나왔다 하지. 그러니까 어떤 거든지 불성 없는 것은 없어. 생명이 있다 하면은 다 불성이 있는 거지.
▲질문자6(남): 알았습니다.
▲스님: 그래서 이런 것도 (물컵을 가리키시고) 컵도 이것이 우리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연결이 되고 인연이 돼서 이것도 살아 있는 거지. 컵이라는 거를 봐주고 써주는 인연이 있고, 물을 담고 이렇게 써주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게 살아 있는 거죠. 이게 죽어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거예요. 움죽거리고 있다고요.
▲질문자7(여): 오늘 스님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요,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몸이 자꾸 말을 안 들어서 이러는데 스님, 조금만 용기를 좀 주옵소서.
▲스님: 몸하고 마음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공부하는 데. 물론 이 몸이 아프면 마음이 허황돼지고 그렇게 되지만, 진짜로 믿고 진짜로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 아픈 것도 거기서 나온 거니까 거기다가 그냥 맡겨놔버리고 그대로 ‘네 몸뚱이, 네가 형성시킨 네 몸뚱이 네가 끌고다니는 건데 건강하게 끌고다니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 해라.’ 하고 거기다 맡겨 놓고 가는 길이지 뭐 공부하는 데 무슨 뭐가 그렇게 걸립니까?
▲질문자7(여): 예. 조금만 용기를 주옵소서.
▲스님: 용기를 누가 주고 자시고 할 겁니까? 용기를 내십시오.
그러니까 하여튼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 이것을 하는 데 대해서 용기를 잃지 마시고 열심히, 어떠한 게 닥친다 하더라도 재료로 알고, 공부하는 재료로 알고 어떠한 게 닥쳐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발전하는 데 기본적인 모든 재료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이렇게 모든 것을 해나간다면 정말 용기 잃지 않게끔 벌어질 겁니다. 모두가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공부란 정말이지 역대의 조사들과 부처님이 그렇게 일컬어서 길을 인도하신 이 마음의 공부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공부를 해나가면서 체험하고 나가다보면 이 세상살이가 전부 팔만대장경입니다. 어떻게 다 써놓겠습니까? 과거도 미래도 변치 않고 오늘도 공해서 돌아가는 이 자체, 이 진리가 그대로 팔만대장경인데….
여러분, 모두 이 공부 열심히 하셔서 이 살아나가는 데 어떠한 고통, 어떠한 병고, 어떠한 재난 이런 것들을 자신들이 모두 커버해나가면서 내 진짜 참나를 발견하기 위해서 지름길로 나가는 공부를 하는 것이니 열심히들 하십시오.
※위 법문은 1990년 8월 19일 특별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