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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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래를 한 주먹에 쥐고 들이고 낼 수 있어야
내 마음 발견해야 당당하고 떳떳해질 수 있어

항상 여러분과 같이 공생(共生)·공용(共用)·공체(共體)·공식화(共食化) 하고 있고 한자리를 하고 있지만 그 한자리를 하고 있는 까닭에, 여러분은 여러분이고 나는 나로서 서로 헤어졌다가 만나고 만나고 헤어지고, 오늘도 한 장소에서 또 이렇게 만난 것을 너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분잡하게 다니고 있는지 잘 아십니까? 지금은 세계적으로나 만방에 다 도제양성(道弟養成)이 시급한 시대라고 봅니다. 타력신앙으로써 기복으로만 맹종하고 항상 그렇게 나아가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광대무변한 인간의 도리 또는 법신(法身)의 도리, 부처될 도리로서 해나갈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더할 수 없는 고등동물로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볼 수 있어야만이 이 세계를 볼 수 있고, 세계를 조절할 수 있고, 또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그런 여러분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조화를 이루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체제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게끔 리드해가면서 세계를 조절해 나간다면 지금 공산주의니 중도니 왈가왈부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평화롭게 정상적인 체제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와서 여러 가지로 발전하고 과학도 발전하고 공업도 발전하고 또 의학도 발전했지만, 여러 가지 문화 문명을 다 꽃피웠다고 볼 수 있겠지마는, 또 그런 반면에 뭐든 오염되게 할 수 있는 그런 여건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나 여러 생물이 오염으로 인해 그냥 스러져가야만 하는 그런 차원에서 그친다면 인간다운 도리를 못하는 우리를 어디 인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비록 한 철을 지내다가 가지만 그 시기에 얼마만큼 인간답게 살아나가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점이지요.
그래서 항상 제가 말하듯이, 이거는 아주 고고한 말이 아니라 무식하지만 순박한 얘기로서 한마디 표현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건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작년 씨를 심어서 올해 추수를 해 들이듯이 여러분이 다 수박이라면 작년 씨로써 수박이 된 거지 작년 씨가 없이 어떻게 수박이 됐겠습니까? 여러분은 작년 씨로 인해서 수박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한테나 물어보십시오. 작년 씨를 바깥에서 찾을 수 있겠나? 바로 씨와 살과 껍질이 다 한데 합쳤습니다. 혼합이 돼서 수박이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안에 씨가 있지 딴 데 씨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이든, 저런 식물이나 또는 흙이나 바람이나 불이나 또는 공기의 생명도 다 이 씨로 인해서 나온 것이죠. 근본 원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그러면 우리가 원소를 발견하자 할 때는, 수박은 자기 안에 들은 씨로 인해서 생겨났고 그 수박을 일체 중생에게 다 먹이고도 그 씨가 되남아서 그 씨를 또 심고 또 먹이고 또 심고 또 먹이고 하니,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다는 걸 먼저 알아야만 합니다.
‘사람이 생겨난 것만큼 먹고 살 수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먹고 살 수 있고 많으면 많은 대로 먹고 살 수 있다. 그래서 `분지복은 자기가 가지고 나온다.’ 이런 말이 있죠.
그렇듯이 우리는 그 씨를 무조건 의심을 하고 나가기 이전에, 의정을 만들어준다 이러기 이전에 무조건 자기 수박 속에 씨가 있다는 거를 미리 믿고 들어가야 한다 이거죠. 거기에 의정을 낼 때는 스스로 의정이 나는 거하고 만들어서 의정을 내는 거하고는 천지 차이로 다릅니다. 여러분은 그 차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모를 겁니다, 아마.
그러면 그 수박의 모든 것,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더라도 그 수박에 의해서 나고 드는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있으니까, 거기에서 다 내고 들이고 하는 거니까 하면서 거기에다 놓고 가는 게 첫째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침착하게 무심(無心)으로써 수박 씨를 싹 틔우는 겁니다. 그래서 무심도(無心道)로서 그 수박이 싹이 나가지고 길러져서 거기서 수박이 열려가지고 그 수박이 무르익어서, 여러분한테 그저 내주어도 줄지 않고, 또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 그러한 능력이 자라나게 되죠. 아마도 거기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청정(淸淨) 자재천궁(自在天宮)’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러분이 만약에 그러한 도리를 지금 이렇게 알고 또 거기다 놓고 갈 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점수(漸修)나 돈오(頓悟)가 따로 있는 게 아니죠. 또 내 씨가 진짜 있다고 믿고 거기 놓고 돌아갈 때, 스스로서 둘이 아닌 도리가 나오고 거기서 유(有)와 무(無)의 세계가, 이 세상이 우주가 그냥 벌어지기 때문에 그때서야 의정이, 대의정이 나는 겁니다. 그때 의정이 적든 크든 다 나는 거지, 내가 우정 의정을 내서 의심하는 것은 그거는 빈 맷돌에 물건 넣지 않고 그냥 돌리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그 차이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참으로 이 도리를 알아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우주 법계에 두루 할 때에 저런 화성에도 그렇고 딴 혹성에도 다 생명은 있지만, 생명이 남의 눈에 보이게끔 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자재 요건이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 이겁니다. 또 그뿐이 아니죠. 지금 이 세계가 서로 왈가왈부하고 싸움을 하고 그러는데 그걸 조절하고 조절치 않고, 떼어놨다 붙였다 붙였다 떼어놨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자력이 우리에게 없다면은 그것을 리드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죠.
언젠가 제가 그런 말을 했죠. 이 세계는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다고 말입니다. 이 세계는 여러분의 주먹 가운데에 딱 들어 있다 이겁니다. 옛날에 어느 사람이 “불법은 어느 것이 불법입니까?” 하니까 하늘 한 번 가리키고, 땅을 한 번 가리키고, 주먹을 한 번 쥐어서 보이고, 땅을 쾅 쳤단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한데 합쳐서 유의 세계, 무의 세계, 천지를, 삼라대천세계를 한데 합쳐서, 딱! (주먹으로 법상을 치시며) 한 군데 찍은 겁니다. 여기밖에는 없다 하고요. 여기에서 바로 들이고 내고 작용을 하는 거라는 얘기죠. 그 작용이 중용이며, 중용이 바로 이 세계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불국토를 만들 수 있는, 조절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라야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얘기죠. 남의 흉내를 내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한번 할까요. 여러분도 다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로 편집을 해서 책 낸 걸 그냥 보고 한다면은 그건 의의가 없습니다. 당나라 때에, 거기 유학을 갔던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길을 가다가 좀 쉬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나서 턱 땅에 앉아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서 보고 있는데 어느 스님이 길을 지나다가 하는 소리가 “별놈의 중 다 보겠네. 백지를 볼 줄 알아야 붓대를 굴릴 수 있고, 붓대를 굴릴 수 있어야 중생을 제도하지 않나.” 하면서 “입으로만 쪼다가 몸 떨어지면 말도 떨어질 것을 말이야. 참 별놈의 중 다 보겠네.” 하고 가거든요.
그러니 거기서 쇼크를 받아가지고 말입니다, “야, 이놈의 것!” 하고 그냥 책을 탁 접어서 넣고는 말입니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이러면서 생각을 하다 보니까, 별놈은 자기지 그 스님이 아니더라는 얘기죠. 그래서 “별놈은 여기 있군.” 그리고선 그냥 탁 놓고는, 그 종남산이라는 기슭에 문수사리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속상한 나머지 속을 가라앉히고서 그 문수보살상 앞에 가서, 천일을 작정하고선 관(觀)했더랍니다.
얼마를 지나서, 뭐 천일을 생각했지만 천일이라는 생각도 없이 관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나더랍니다. ‘야! 문수가 나고 내가 문수지, 문수가 따로 있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들어가는 순간 옆에서 어느 노승이 말입니다, 지팡이 짚고 왔던 걸로 탁! 탁! 치더랍니다. 아, 그래서 보니까 “네가 나고 내가 너라면 나한테 내가 내 주장자를 전하노라.” 하더랍니다. 자기가 자기 주장자를 자기한테 전하노라 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그 지팡이로다가 자기 머리를 탕 치더랍니다. 그러는데 그냥 소리가 요란하더랍니다. 그래 그 소리가 요란해서 쳐다보니까 아, 거기서 사리가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사리를 받아들더니 하는 소리가 “이거는 석존의 그 사리요.” 자기가 간직하고 있었던 사리다 이겁니다. 그리고 또 “가사(袈裟) 한 벌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것이다. 이 유물은 바로 부처님께서 간직하시고 계시던 거니 너희 나라에 가서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잘 간직하라.” 하고선 주더랍니다.
참 아주 기쁘고 춤도 추고 싶은데 얼떨결에 공손히 받아서 놓고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그냥 절을 털퍽 하다보니까 아, 절을 하고 일어나 이렇게 고개를 쳐들어서 보니까 온데간데가 없거든요. 그래도 절 하던 거니까 삼배를 마치고서 그걸 공손히 들고, 문수보살상을 몇 바퀴 돌다가 보니까, 지팡이로 머리 때렸던 자리가 그냥 흠집이 나서 펑 뚫렸거든요. 그 머리 상처난 부위를 보니까 똑같더란 얘기죠. 그래 혼잣말로 ‘허허, 문수보살이 화(化)해서, 화신으로서 이걸 전달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이 아주 당당해지고 그렇게 떳떳해질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걸 들고서 신라로 와서 참, 월정사나 통도사나 마곡사나 저런 절을 짓고서 거기다 사리를 모셨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소리를 끝까지 잘 들어보세요. 그래서 사리를 모시고 도제양성을 하기 위해서 참, 자장 율사가 마곡사에서 설법을 한다 하니까 사람들이 골짜기마다 꽉 찼단 말입니다. 그냥 모두 모여들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삼 ‘마(麻)’자를 쓰고 골짜기 ‘곡(谷)’자를 써서 마곡사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그런데 이름 지은 게 문제가 아니죠. 그 후에 고려 문종 때에 부처님의 불법, 즉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을 하는 운동이 생겼답니다. 그래가지고 마곡사의 스님들을 다 끌어가고 또 절을 부수고 이러니까 거기는 도둑 소굴이 돼버리고 말았죠. 그 소굴에서는 참, 도둑들이 수십 명이 아니라 때로는 수백 명에 가깝게 많았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뽑아 내보내는 관리마다 해를 입었고 그리고 그 도둑들을 어떻게 다 잡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랬는데 그 후, 그러니까 고려 명종 2년에 보 조 국사(普照國師)라는 분이 왕명을 받고, 그 도둑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인연이 됐답니다. 그래 거기 와서 좋도록 말을 하니 좋도록 말을 하는 걸 듣습니까? 보조 국사를 외려 해치려고 애를 쓰죠. 그러니깐 보조 국사가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 하면 ‘아, 이젠 군졸들을 몰고 와서 할 수밖엔 없구나!’ 하고서 보조 국사는 바로 왕벌이 됐죠. 왕벌 속으로 들어갔단 말입니다. 왕벌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군졸들을 수십만 명을 모아놓고 창을 비껴차라고 했습니다. 창 말입니다. 허허허. 그래서 창을 비껴차고 왕벌 속으로 들어갔으니, 보조 국사는 군졸들이 수만 명이다 할지라도 다 인솔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군졸들을 즉, 벌 군졸들을 전부 이끌고 그 도둑떼들한테 가서는 그 비껴찬 창으로다가 그저 사정없이 그냥 찔렀죠. 찔러서 도둑들을 항복을 받았답니다.
보조 국사는 항복을 받고 말입니다, “그러면 너희들이 내가 말 하는 데로 가거라.” 하니까 “저는 불법이, 부처님 법이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그렇게 묘한 줄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저희들도 불자가 되겠습니다.” 하고서 거기서 항복을 한 겁니다. 그래서 그 많은 도적들을 다 착한 불자로 만들어 놓으셨는데 말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왕벌 속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하고 도로 다 군졸들을 갖다놓고는 그 왕벌 속에서 다시 나와서 보조 국사한테로 들어가도 두드러짐이 없었다 이겁니다. 보조 국사한테서 보조 국사가 나와서 그렇게 군졸들을 데리고 그렇게 해도, 그렇게 일처리를 했어도, 거기서 꺼냈어도 준 사이가 없고, 도로 가 보조 국사한테로 들어갔어도 두드러진 사이가 없었다 이겁니다.
그것을 나라에서 듣고서 200석의 쌀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보조 국사는 그 200석을 받아가지고 부서진 절을 고치고,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무척 애쓰고 있던 중, 어느 스님이 와서 묻기를 이렇게 물었답니다. “앞서의 석존의 사리가 문수 두상에 들어 있는 까닭은 무엇이며, 나왔다는 그 까닭은 무엇이냐?” 이겁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는 “가사(袈裟) 유물을 보관했다더니 보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며, 세번째 “왜 보조 국사는 저 왕벌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보조 국사 안으로 들어갔다 하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그때에 만약에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여러분이 보조 국사라면 어떻게 대답을 했을는지, 그 세 가지를 말입니다. 왜 석존의 사리가 문수 두상에서 나왔으며, 왜 가사 유물을 그렇게 잘 보존하라고 그랬는데 보존한 사이가 없는 까닭은 무어며, 또 보조 국사가 왕벌 속에 들어갔다가 자기한테 다시 들어갔다는 거는 무슨 까닭이냐? 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꼬리에 꼬릴 물고 꼬리에 꼬릴 물고, 얼마나 그걸로 인해서 수많은 선지식들이 또, 선(禪)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고, 이렇게 부수고 온통 야단들을 쳤는지, 그때 시절에는 한창이었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그 대답을 어떻게 해야 옳을지, 만약에 보조 국사라면 말입니다. 우리가 시급한 것은, 도제양성에 시급한 것은 스님네들이 일차고, 이차는 여러분입니다. 스님네들이나 여러분이나 다 이 공부를 해서 누구든 위 아래를 한 주먹에 쥐고 베풀 수 있는, 들이고 낼 수 있는, 조절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돼야만이 우리는 평화보다도 조화를 이룰 수가 있다 이겁니다.
보조 국사 안 계십니까? 허허허. 이 선도리(禪道理)라는 것은 생각을 요모조모 해서 대답을 하려면 이건 천리만리 떨어집니다. 요것 생각하고 저것 생각하고 맞춰서 하려고 그러면, 이건 맞춰서 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그대로 갖다 들이대면 맞아지는 것이 선도리입니다. 뭐 이거는 요것조것 찾아서 맞춰서, 이렇게 하는 거는 우리 일상생활의 보이는 세계에서, 유의 법에서만 있는 거지 무심 속에서는 맞추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허공에 뼈다귀를 세워놓으면 세워놓은 대로 세운 거고,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빼면 빼는 거고, 했다 하면 하는 거고, 그렸다 하면 그리는 거고, 대답을 했다 하면 하는 거지, 뭐 요 생각 조 생각 이렇게… 그래서 이거를 (가슴을 두드리시고) 발견을 해야 당당해지고, 어느 거든지 갖다가 들이댈 수 있고 이런 겁니다.
그래서 보조 국사는 말입니다, 거기에서 앞에 이렇게 앉았는 그 스님을 들고 있던 막대기로 어떻게 후려갈겼는지 “아이고!” 했습니다. “아이고!” 하고도, 그이도 참 가르치느라고 방편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번쩍 쳐다보니까, 아프단 소리 “어이구!” 해놓고는 번쩍 쳐다보니까 아이, 보조 국사가 말입니다, 휙! 돌아서 가는데 이 가사와 장삼이 착! 날리거든요. 그거를 보고선 무르팍을 탁! 쳤습니다. 그거를 보고 말입니다, “야, 자재천궁(自在天宮)이 어딨나 했더니 여기 있구나! 사리고 가사 유물이고, 들어가고 나가고 한 것이 다 이게 바로 무(無)로구나!” 그 무인 까닭에 바로 있는 거거든요.
그거는 아까 얘기했죠. 요거를 생각하고, 요렇게 (물컵을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으시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번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그냥 모든 일에, 일체 만법에 헛되게 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대로 법이다. 그러니 무슨 ‘한다 안 한다’ 언어가 거기 붙을 리가 없죠. 그냥 쏜살같이 한 번 생각 일으키면 그대로 법인데 어떻게 무슨 ‘한다 안 한다’가 거기, 언어가 붙겠습니까.
그러니깐 거기서 무릎을 탁! 치면서 “야! 이것이 다 무(無)로구나!” “야! 진기하구나, 자재천궁의(自在天宮) 그 묘법! 그 묘법이란 참 이렇게, 이렇게 광대무변할 수가 있나!” 하면서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아파도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이마가 닿도록 삼배를 하고 말입니다, “자재천궁의 부처님은 여기 이렇게 앉아 계십니다.” 하고선 그냥 절을 하고는 그냥 껄껄거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손을 벌리고선 껄껄거리고 나가거든요. 그러니 보조 국사는 가만히 앉았다가 빙그레 웃고는 “참, 한 놈이 열 놈이고, 열 놈이 한 놈이 되듯이 만사형통이로군.” 하고선 그냥 그렇게 멋지게 양성을 했답니다.
그 책에 써놓은 걸로 봐서는 그런 얘기가 없었습니다마는 제자들을 기르려니깐 예전에 어떤 한 큰스님이 계실 당시에 그런 얘길 했습니다. 그것이 가만히 보니까 그 큰스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책에 써있는 거를 그대로 하질 않고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만들어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법입니다. 그러면 그 책에 써놓은 걸로 봐서는 전부 누가 되게 해놨어요. 보조 국사가 뭐를 들고 주문을 외우고 이게 있을 수가 있어요? 이렇게 누가 되게 할 수가 있느냐고요.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 멋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해놓는 거거든요. 볼 수가 없고 들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편집할 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죠, 주문을 외웠다고 할 수밖에요. 그렇게 누가 되게 해요! 큰 선사들을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위 법문은 1990년 8월 19일 특별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6-08-09 오전 10: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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