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가 아니라 ‘재’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종교의 세계를 두드립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조상을 숭배하는 풍습이 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을 좋은 곳으로 가시게 빌어드리면 대신 내가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비용을 내어서 조상님의 천도를 빌면 내 정성을 조상님이 몰라라 하지는 않을 터이고 이런 마음이 절에서 7월 보름에 열리는 우란분재(백중)에 고스란히 쏟아집니다. 그래서 흔히 백중을 조상님께 제사 드리는 날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백중날 절에서 올리는 의식은 ‘제사’가 아니라 ‘재’입니다. 재(齋)는 ‘공손하고 삼가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깨끗이 몸을 씻고 종일 잡다한 일들을 피하고 출입을 삼갑니다. 그리고 가장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정신을 산만하지 않게 하고 근신합니다. ‘재’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조상과 아귀는 무슨 관계인가
경전에서는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살아 생전 남에게 밥 한 톨도 줄 줄 모르는 너무나도 인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귀(굶주린 귀신) 세계에 가서 났다고 합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제하려고 도움을 청하자 부처님이 7월15일 하안거를 마치는 날에 승가에게 깨끗한 음식을 올리라고 방법을 가르쳐준 데에서 우란분재는 시작되었습니다.
아귀는 쁘레타(preta)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쁘레타’는 나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조상이지요. 고대인도에서는 세상을 떠난 조상은 자손이 제공하는 음식물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여겼고 이것이 불교에 들어와서 저승에 간 조상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불교어대사전, 중촌원 지음, 162쪽).
살아서 선업을 잘 지었다면 굳이 남(자손)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아도 맘껏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천상세계로 가거나 또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제 힘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요, 살아서 악업만을 지었다면 지옥세계에 떨어져 배고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고통을 받거나 축생세계에 떨어져 천대를 받으며 제 힘으로 먹을 것을 찾아 종일 들판을 헤맬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생들은 선업과 악업을 적당히 섞어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제 힘으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어쩌다 산 자의 공양을 받아도 욕심이 앞서 그만 죄다 잃고 맙니다. 배불리 먹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이야 남 못지않지만 욕심이 항상 그에 앞지르니 오직 고통 속에서만 신음하는 것이 아귀세계이며, 지금 살아 있는 우리의 다음 세상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아 섬뜩합니다.
왜 하안거 마치는 날 천도할까
그렇다면 쇠털 같이 많은 날 중에 왜 하안거 마치는 날에 재를 올리는 걸까요? 기억할 것은, 조상에게 음식을 올리지 않고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앤 청정한 승가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음력 7월15일은 하안거를 마치는 날입니다. 이날 스님들은 안거 기간 동안 자신의 몸과 마음에 티끌만큼이라도 그릇된 점이 없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또는 도반의 지적을 달게 받고 참회하는 ‘자자’라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치열한 석 달의 용맹정진을 마치고 참회의식까지 끝내었으니 7월 보름인 우란분절은 승가가 일 년 중에 지혜의 힘이 가장 깊고 강하며 윤리적으로 깨끗한 날입니다.
이렇게 상서로운 날, 깨끗한 믿음을 가진 재가자들이 승가에 ‘한 턱’을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한 턱’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소망을 담습니다. 바로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내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현재의 부모는 백세가 되도록 병 없이 사시고, 모든 괴로움과 근심이 사라지며, 7세의 부모님은 아귀의 고통을 떠나서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 태어나 한없이 복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불설우란분경)
우란분절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며 복을 비는 날이 아니라 계를 지키며 삼가는 날입니다. 승가의 높은 덕을 기리고 공양을 올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내게 깊은 사랑을 베풀어준 부모님과 조상님이 진리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기를 승가의 청정한 힘을 빌려 간절히 비는 보은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