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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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 보호 능력 몇 점?/이우상(대진대 국문학과 겸임교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이 해적이라고 떠들고 다닌 엉뚱한 친구가 있었다. 산적은 험상궂고 지저분하지만 해적은 폼이 멋지다는 것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란 영화가 나오기 까마득한 이전이지만 종종 만화에 해적이 그럴듯한 영웅으로 그려지곤 했다. 실제 목격하지 못한 추상에 대한 동경이었다.
추상의 해적이 벌건 21세기에 진짜로 나타나 동원호 선원 25명을 117일 동안 억류했다. 납치 당시에는 온 나라가 들끓더니 여느 일처럼 차츰 잊혀져갔다. 망망대해에서 야만적인 해적떼들에게 시달렸을 선원들의 외상과 내상이 처절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 언론, 국민의 기억에서 자신들이 잊혀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이성적 교섭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연되었겠지만 정부의 자국민 보호 시스템과 역량, 의지를 다시 생각게 한다. 사안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낙관, 먼 산 불구경하는 듯한 외교 시스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이 터지면 가족과 회사만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이 숯검정이 된다.
미국은 자국민 한사람을 위해서 지구 끝까지라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꺼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선다. 그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감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 정부의 자국민 보호 의지와 역량은 자못 회의적이다. 외국 여행 중 난처한 일을 겪어 현지 대사관의 적극적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멀게는 국군 포로 송환 문제, 가깝게는 김선일 씨 사건 등 정부의 처신은 미덥지 않다. 예측 가능한 일은 물론이고 돌발 상황, 불가항력의 천재지변까지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정부다. 세금 걷어 높은 의자에 앉아 유유자적하라고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한 달 전, 학생 다섯 명과 치악산 아래 외딴 집에 2박3일 일정으로 문학 캠프를 갔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S군도 참여했다. 약, 휴대용 산소호흡기 등 만약에 대비해서 꼼꼼하게 챙기라고 일렀다.
이튿날 오후,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얼굴이 파래지고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 119에 긴급 타전했다. 30분 후 황색 제복의 119대원이 구급차를 몰고 왔다. 비포장 4킬로미터나 되는 외딴 집에 신속하고 용감하게 출동했다. 병원에 이송된 S군은 건강을 되찾았다. 경황 중 이름조차 알아두지 못했다. 원주소방서 소속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대한 조치도 119 활동만큼 되었으면 좋겠다. 납치 단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쏟고 동원수산이라는 회사의 등을 떠밀고 정부는 뒷전에 앉아 있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협상이든 무력 진압이든 속전속결로 해결할 수 있는 정예 요원을 길러야 한다. 해적떼보다 지혜, 장비, 전략이 못해서야 되겠는가.
장래 희망이 해적이라던 친구는 소방공무원이 되었다. 지금은 소방 간부가 되어 위급한 현장에 달려가 진두지휘 하고 있다.
황색 제복을 보면 든든하다. 미국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위는 911대원이 되는 것이다. 멸사봉공, 이타행의 정신이 미국을 유지하는 튼튼한 힘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우린 아직, 소방병원이 없다. 불길 속에 뛰어 들어가 사망해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는다. 부상을 당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비로 치료해야 한다. 용맹을 떨치기에 주저되는 뒷받침이다.
2006-08-09 오전 9: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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