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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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어쩔 수 없는 범부의 속성/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어떤 사람이 광야를 가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를 만나 쫓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기세에 놀라 미친 듯이 달아났지만 광야에는 몸을 숨길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우물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안에 있는 나무뿌리를 찾아내어 그것을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 숨었습니다.
‘이제 살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기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우물 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닥에는 커다란 독사 세 마리가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우물 벽에는 독사 네 마리가 똬리를 틀고 그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나운 코끼리가 날뛰고 있는 저 위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요,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였습니다. 때마침 어디선가 홀연히 바람이 불어와 위태롭게 나무뿌리에 매달려 있는 그를 사정없이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나무에 매달려 있던 벌집에서 꿀 다섯 방울이 그의 입안으로 떨어졌습니다. 얼마나 달콤하던지 꿀맛에 취하여 그는 자기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
너무나도 유명한 비유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바로 저 우물에 매달린 사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생사의 막막한 광야를 헤매다 어쩌다 인간의 몸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시간은 목숨을 갉아 먹어 가는데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그 옆을 보아도 나를 편안하게 살아가게 해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온통 덧없고 괴로운 것들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둘로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도 입 속으로 떨어지는 다섯 방울의 달콤한 꿀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지금 얼마나 괴롭고 힘든 지경에 빠져 있는지를 죄다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달콤한 꿀이 입 속으로 떨어져도 절대로 자기의 처지를 잊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 상태인지를 직시하고, 이 우물 속에서 죽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우물 속에서 똑같이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어리석은 범부중생이고, 후자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 나선 수행자요, 불보살입니다. 범부중생은 괴롭다고 몸부림치면서도 눈앞의 쾌락에 정신이 팔려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괴로운 현실을 제대로 안다면 어떻게든 생사의 광야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요, 그리하여 다시는 괴로움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다, 그러니까 괴로움을 주는 대상에게도 집착하지 말고, 괴롭다는 생각에도 집착하지 말고, 괴로움을 벗어나려고도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불교다’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경전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런 식의 부처님 가르침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내가 괴로운데 어떻게 그 괴로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괴롭다면, 그것이 진실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내어라’, 그래서 ‘괴로움을 끊도록 노력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괴로움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알아서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잘라내는 것이 바로 여덟 가지 바른 수행법(팔정도)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해가 닥쳤습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우리 이웃들은 그 귀한 목숨을 잃거나 평생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고스란히 물길 속에 떠내려 보내고 맙니다. 자연의 법칙은 정확한 것이어서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데 왜 해마다 사람들은 똑같은 재난을 당하고 괴롭다고 울부짖는 것일까요?
진짜 괴롭다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재해의 원인인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살짝 가려두고 임시방편, 땜질처방, 전시행정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려고만 합니다.
내년에도 틀림없이 누군가가 물에 휩쓸려 죽고 어느 산간마을이 매몰될 것이 뻔한데 입속의 꿀 몇 방울에 취하여 괴로운 처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범부의 속성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2006-07-31 오전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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