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와 분별은 번뇌의 뿌리로서 ‘끊임없이 생멸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선종(禪宗)에서는 허상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화두를 통하여 변함없는 ‘참마음’을 바로 보라고 가르친다. 그 참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과 하나가 되라고 한다. 참마음과 하나가 되어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질 때 ‘텅 빈 마음’이 된다.
바로 그때 그 마음 자체가 빛이 되어 부처님의 광명이 드러나고 팔만사천법문의 뜻이 온전하게 드러난다. <선가귀감> 32장에서는 이 도리를 이야기한다.
須虛懷自照 信一念緣起無生.
모름지기 텅 빈 마음 그 자체가 환해져야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연기법에 생멸이 없음을 믿는다.
서산 스님은 이 단락을 “텅 빈 성품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만 밝히고 있다”고 했다. 본문의 허회자조(虛懷自照)에서 허회(虛懷)는 ‘텅 빈 마음’이고, 자조(自照)는 ‘텅 빈 마음 그 자체가 환해진 것’이니, 그래서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말하기도 한다. ‘텅 빈 마음’이란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마음이고[空寂], ‘텅 빈 마음 그 자체가 환해진 것’이란 부처님의 광명이 드러나 모든 것을 다 아는 ‘신령스런 앎’이기 때문이다(靈知). 따라서 허회자조(虛懷自照)란 마음에서 모든 번뇌가 없어진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야 ‘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연기법에 생멸이 없음을 확실히 알고 믿게 될 것이다.
본문의 ‘일념(一念)’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한 생각’을 말한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서 “한 찰나에 구백 번의 생멸이 있고 한 생각 속에 구십 번의 찰나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한 생각 속에 팔만 일천 번의 생멸이 있다는 것이다. 생멸이란 어떤 인연이 모여 생겨난 법이 그 인연이 흩어지면 소멸되는 것을 말하니, 한 생각 속에 팔만 일천 개의 법이 생겨났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멸하면서 수많은 법이 인연 따라 나타났다 인연 따라 흩어지는 것이 연기법이다.
연기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법은 다 여러 인연이 어울려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연이 모이면 법이 만들어지고 인연이 흩어지면 법이 사라진다.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연법이 바로 이것이다. 연기법의 다른 표현이 인연법인 것이다.
연기법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보통은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의 열두 가지 순서로 이루어진 십이연기법이 대표적이다.
이 십이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다. 순관은 십이연기를 순서대로 관찰하여 인연이 모임으로써 중생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곧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으니 내지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이 순관에 의하면,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있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있고 식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생이 있고 노사가 있게 된다. 서로 서로의 인연으로 세간의 법이 벌어져 중생계의 생로병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세간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견해는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무명이라는 것은 ‘텅 빈 마음’을 모르는 데서 생겨난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기신론>에서도 “하나의 법계로서 ‘텅 빈 마음’을 알지 못하므로, 주와 객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한마음’에 홀연 한 생각이 일어났으니 이를 무명이라 한다”라고 하니, 본디 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순관에서는 이 무명을 인정하여 차근차근 중생계의 모습을 만들었으나, 그와는 달리 역관은 이 무명의 실체를 알고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무명으로 오염된 중생계를 떠나 텅 빈 마음이 되니, 우리는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곧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내지 생이 멸하면 노사가 멸한다’ 라고 관하는 것이다.
또 역관에 따르면, 무명이 멸하므로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마침내 생이 멸하고 노사가 멸하게 된다. 서로서로의 인연이 멸하여 세간의 법이 없어지고 중생계의 생로병사가 사라지니, 텅 빈 충만으로서 부처님 세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역관의 견해로 보면 모든 인연이 흩어졌으므로 세간에 실제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없다(空性). 이것이 무생(無生)의 도리이다.
텅 빈 마음으로써 서로서로의 인연이 멸하여 세간의 법이 없어지고 중생계의 생로병사가 사라지는 것이 무생의 이치이다. 이것이 모든 법의 실상이다. 이 세상 모든 법의 실체는 알고 보면 텅 빈 성품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생멸해 변화할 것이 없다. 범부는 이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법에 집착해 쳇바퀴처럼 일어났다 소멸하는 번뇌를 일으켜 생사로 윤회를 하게 되나, 성인들은 무생의 이치를 알고 바로 열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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