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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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무진 거사 장상영 (상) /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어쩌다가 운전하며 장거리를 가는 도중 무료하여 라디오 채널을 맞추다 보면 다른 종교방송이 잡힐 때가 있다. 그 날은 누군지는 몰라도 하도 언변이 뛰어난 설교를 하고 있기에 혹여 설법기술 익히는데 도움이 될까해 그대로 두었다.
이름깨나 날리는 외래 종교의 성직자라고 하는데 자기종교 이론에는 전문가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종교에 대한 이해수준은,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말솜씨가 아깝군. 남의 종교와 그렇게 비교하고 싶으면 제대로 공부부터 좀 해라.”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무식하면 용감해지기 마련이다. 제대로 알면 감히 입을 댈 수가 있겠는가. ‘전기(前期) 장상영’ (물론 ‘후기(後期) 장상영’과는 구별되는) 이 부활했나 보다.
예전에 중원의 거사들 역시 처음부터 불교에 호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과거와 벼슬살이를 위하여 유가서를 끼고 살아온 까닭에 상대적으로 배불론적 성향을 바탕에 깔게 된 것 같다. 문제는 불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감정적으로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성향의 소유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절집에 많은 기문(記文)과 비문(碑文)을 남긴 무진(無盡)거사 장상영(張商英 1043~1121) 역시 그러했다. 19세 때 과거에 합격하여 처음맡은 소임이 문서와 장부 관리 및 정리였다. 어느 날 사찰에 들렀다가 잘 정돈된 경전과 불교문서들을 접하고서 “우리 공자의 가르침이 오랑캐의 책만큼도 사람들의 숭상을 받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그날 밤새도록 서재에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빨면서 종이 위에 기대 긴 한숨을 쉬면서 야반삼경이 되도록 잡을 이루지 못하자 부인이 남편을 부르면서 말하였다.
“서방님! 무슨 일이 있길래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거사는 낮의 일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후 ‘무불론(無佛論)’을 지으려고 한다고 말하자(前期 장상영) 부인이 어이없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미 ‘부처가 없는 것(無佛)’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새삼 ‘무불론’을 지어서 그들을 공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대 학자이니 불교경전을 읽어보고 그 모순점을 찾아내 정당한 공박을 해 보십시오.”
자기모순을 일깨워준 부인의 안목에 감탄하면서 일단 ‘무불론’ 쓰기를 중지했다. 그리하여 불교의 경전을 섭렵하던 중 <유마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불법에 깊은 신심이 생겨 오히려 불교를 보호해야 한다는 <호법론>을 짓게 되었으니(後期 장상영)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고 보면 그 부인이 안목 있는 ‘인로왕보살’인 셈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인연도 예사롭지 않다. 장상영이 과거를 보러가는 길에 어느 낯선 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전날 그 집의 주인장(뒷날 장인어른) 꿈에 선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내일 정승을 맞이하도록 하시오.”
그래서 첫새벽부터 방을 깨끗하게 치워두고 종일 기다렸으나 정승은 고사하고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해질 무렵 빨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두루막을 입은 가난한 선비가 찾아왔다. 긴가 민가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예의를 갖추어 맞이한 후 그에게 물었다.
“선비께서는 어디로 가는 길이오?”
“과거보러 가는 길입니다. 하룻밤 묵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옳커니…. 미래의 정승이란 말이지)
“아직 부인이 없다면 내 딸을 그대에게 보내 집 청소나 할 수 있게 허락해 주구려.”
거듭 사양했으나 간청을 물리칠 방도가 없었다. 설사 낙방할지라도 혼인하겠다는 서약을 하고서야 이튿날 그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급제하였고 그는 딸을 부인으로 맞이했다.(계속)
2006-07-31 오전 10: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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