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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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모두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마음 자체가 탈피를 하려면 진정코 믿어야!

이렇게 더운데도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부모님의 은혜를 백분지일이라도 갚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이 자립니다. 모두가 여러분이 자식을 길러 보시고 했지만 자식을 길러 보시면 부모의 그 은혜를 천분지일, 백분지일이라도 갚고자 하는 마음이 아마 생길 것입니다.
생각을 안 하는 일이라면 모르지만 생각을 한번 해 본다면 ‘너무도 크나큰 은공을 이렇게 해서 다 갚을 수 있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살생도 하는가 하면 별의별 짓 다 합니다. 자식이 어떻게 될까, 또 어떻게 해서 병이 나면 개구리를 잡아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닭을 잡아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뱀을 잡아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또 양을 잡아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개를 잡아서 약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부모는 가리지 않고 자기가 살생을 해서 무엇이 된다 하더라도 내 자식을 건강하게 길러야만 하겠기에 별의별 짓 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길러졌다고 생각을 할 때 그 은혜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딸자식은 또 출가하면 그 시집을 섬기되 그 시부모도 역시 그 친정 부모와 똑같은 부모라고 생각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백종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는가. 칠석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는가. 칠석은 마음을 가다듬어서, 밝게 마음을 해서, 백종에 그 모든 영령들의 조상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으라는 뜻도 됩니다. 이 모두가 우리가 하늘이 없으면 땅이 없듯이, 땅이 없으면 인간이 없듯이, 우리가 부모가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이렇게 다닐 수 있고 날 수 있겠습니까. 하다못해 지렁이나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자기의 부모를 위해서 다리가 찢기고 모가지가 떨어지고 이래도 달려드는 그런 걸 봤습니다.
사람이라면 모두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일도 잘 풀리고 또 모든 곡식들에게도 감사한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지수화풍을 진짜로 믿고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만, 또 만물만생이 다 우리와 더불어 같이 돌아가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모두가 은혜가 아니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시면 다 아시다시피 비가 좀 안 왔다고 해서 사람이 농사를 못 짓게 되고 죽게 되고 이 야단들을 하는 걸 보십시오. 물이 없어도 아니 되고 불이 없어도 아니 되고 공기가 없어도 아니 되고 흙이 없어도 아니 됩니다. 이것이 모든 감사한 뜻에서 우리가 더불어 사는 이런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업신여기고 그렇게 누구를 예뻐하고 극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한 발 떼어 놓으면 어저께요, 한 발 떼어 놓으면 내일이요, 한 발 떼어 놓으면 오늘도 공해서 그냥 더불어 같이 사는 것. 우리가 캠핑 나와서 더불어 같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부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노는 장소에서 떠나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듯 우리가 이런 인생을 길다고 하기 이전에 짧습니다. 짧은 이 기간에 우리는 모든 점에 의해서 알아야 되겠기에 이렇게 같이 도반으로서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자의 부모들이, 또 현재의 자식들이 나중에 또 부모가 되고 늙어서 죽게 되고 이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면서 인생으로 태어났다 하면 태어났다는 신고를 하게 돼 있습니다. 죽어도 신고를 하게 돼 있습니다. 죽었다는 신고는 지금으로 치면 경찰서입니다.
일단 경찰서에 들어가면서 위로 상승세계로 갈 사람은 가고 또는 중진세계 즉, 우리 중천세계, 이 세계에 그냥 태어나게 되려면 태어나고 또 아주 그냥 그 짐승으로나 하의 동물로 태어나려도 이 세상에 출현을 하게 돼 있죠. 그리고 무죄는 무죄대로 풀려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도리가 지금 현재의 우리 법정에 서면 그렇듯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일단 생사천이라고 하는 데가 지금 경찰서라고 하겠습니다.
생사천이란 무죄도 아니고 유죄도 아니고 거기서 재판을 받아야 무죄든 유죄든 풀려날 수 있도록 이렇게 돼 있는 생사천이라고 봅니다. 태어나지도 않고 아주 죽어 있는 처소도 아닌 그런 그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식이 죽거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생사천을 거쳐서 우리가, 즉 말하자면 부처님 법에서 무명천이라고 이렇게 일컫습니다마는 여러분이 이 공부 하시는 거는 무명천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말하자면 여러분이 관습에 의해서 모든 살아나가는 이 잎새 가지 나무, 이것이 전부 다 뿌리에 의해서 얽히고설켜서 살아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뿌리는 생각지도 않고 그냥 기복으로 만날 이렇게 쫓기고 이렇게 끄달리면 그 생사천이 없는지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생사천을, 아니 무명천을 헤매다가 그냥 허공에 혼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 무명천이란, 항상 얘기해 드리죠. 프로펠러가 돌아가면 먼지 앉을 곳이 어딨는가. 그러나 무명천이 있다고 말을 걸어 놓으니까 무명천이 있다는 거를 생각하고 죽어서도 무명천을 찾느라고 앨 쓰는 그러한 그 어리석음이 많이 있으니까 그 무명천은 없다고, 공해서 없다는 거를 말씀드립니다.
무명천은 얼른 쉽게 말해서 모두가 저쪽으로 넘어가느냐 이쪽으로 넘어오느냐 하는 것을 가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무명천이라는 것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명천이 ‘하, 무명천이 어딨어?’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 계기가 바로 관하는 도리에 의해서 진짜로 자기 뿌리를 믿고 자기 싹이 진짜로 한다면 무명천이 그 가운데 있을 리가 없죠. 무명천이 가로막을 이유가 없어요. 뿌리와 싹이 한데 붙어 있는 그 사이에 무명천이 어디 붙어 있을 자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나무들이 심어져 있으면 흙에 가려 있듯이 흙에 가려 있는 것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흙에 가려 있는 것이 무명천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무명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인간으로서는 바로 업식에 덮여서 그 자기의 싹과 뿌리가 한데 맞붙고 그 사이에 누구도 거기에 거론 못하리만큼 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알게 되면 그냥 그대로 맞붙은 겁니다. 뿌리와 싹이 맞붙었지 그 사이에 뭐가 낀 게 없습니다. 그렇듯이 무명은 없는 것이 무명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명천도 이름이요 방편이지 그것은 없는 것이고, 생사천도 우리가 마음을 잘 써서 그 도리를 둘로 보지 않는다면 생사천도 없을 것이요, 이름인 것이요, 또는 법천을 거쳐서 불사천을 거치는데 우리가 그 모든 마음들에 의해서 모두 법천을 넘어서고 불사천을 넘어서고 도리천에 이른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이란 마음 자체가 이렇게 탈피를 하려면 우리가 관하는 그 도리가 얼마만큼 뭐, 치열해야 한다고 하기 이전에 진정코 믿는 것, 진정코 믿는 겁니다.
어떻게 싹이 자기 뿌리로 인해서 다 살고 있으면서 ‘몽땅 싹은 뿌리에 의해서 있으니 뿌리, 너만이 싹을 이끌어 갈 수 있잖아.’ 하는 그 믿음을 갖지 않겠습니까. 우리 몸뚱이는 배와 같습니다. 허허바다에 띄워 놓은 배 말입니다. 우리는 살얼음판 같은 허허바다에다가 배 한 척을 띄워 놓은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파도가 치고 때로는 억수장마가 들어서 물결이 심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고 배가 일렁거리고 뒤집힐 듯 뒤집힐 듯 한 그 사이를 우리는 지금 밟고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게 허허바다에 배 한 척이 떠 있는 겁니다. 근데 그 배 한 척 속에 많은 중생들이 꽉 차 있습니다, 그 배 안에.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이 몸뚱이가 지금 허허바다에 배 한 척 떠 있는 것과 같고 배 한 척 속에 많은 중생들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런다면 잔뜩 들어 있는 중생들을 이끌어 가면서 제도하려면, 마음의 선장이 그게 노를 젓고 지금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중생들은 어떠한 업식에 의해서 생각들이 나느냐 하면 파도가 치거나 하면 안으로다가 침착하게 두고, 몸을 가만히 두고 침착하게 생각하고 ‘한마음의 선장이여! 당신만이 잘 이끌어 갈 수 있어!’ 하고 거기다가 놔야 될 텐데 바깥으로 손짓 발짓 하면서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겁니다. 그러니 그 배가 안 뒤집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안 그런가.
그리고 마음의 선장이란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자기를 어떠한 모습으로나 형성시킨 장본인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이 되는 대로 차원의 그릇에 따라서 형성을 시킨 장본인입니다. 장본인이죠. 그런 장본인이 지금도 여전히 이끌고 그 뱃사공으로 이끌고 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딴 놈이냐 하면 그게 딴 놈이 아니라 바로 자기 집의 가운데 이 집 가운데 바로 선장이 서 있는 거와 같고 이 집 가운데 바로 심봉이 서 있는 거와 같다 이겁니다. 그러니 자기를 자기가 형성시켜 가지고 그 모든 인연에 따른 업식들을 다 거기 한꺼번에 담아 가지고 그 가운데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따지고 본다면 이 형체 속에 있는 나, 참나, 지금 형체를 가지고 그 형체가 있으니깐 내가 마음이 있고 나쁜 것 좋은 것을 알게 돼 있고 모든 것이 그 선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런데 그것을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생각들 해 보세요, 누구를 믿나. 자기를 끌고 다니는 장본인, 자기! 모두 한마음으로 모아져서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 자기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는단 말입니까. 모두 이렇게 한데 모아서 뿌리가 된 그 뿌리를 믿어야지 누구를 믿느냐 이겁니다. 그럼으로써 이것이 자기를 낳아 준 부모의 은혜고 지수화풍의 은혜고 모든 만물의 은혜고, 허공의 은혜고…, 뭐 만물이라면 헤아릴 수가 없겠죠. 나라의 국왕의 은혜도, 중생들이 만중생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여기 지금 이렇게 와서 살아서 앉아 계신 것도 농사짓는 사람이 있기에 이렇게 먹고 살지 않습니까. 또 옷을 짜는 회사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옷을 입고 있죠. 모두 이거는 어떠한 걸 연구해서 음식을 가공해서 모두 먹게 만들어 놓는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모두가 더불어 같이 사는 겁니다. 그래서 공생 공용 공체 공심 공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라 이런 겁니다. 다섯 가지의 문제를 총동원해서 한마음에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자체가 바로 여래이며 부처이며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손이 그 도리를 알게 되면 그대로 한 종자에 한 종류니까 살아서 모습만이 하나가 아니라 죽은 사람들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둘이 아니게 돌아간다는 거를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백종날 이렇게 봉투에다 지극히 내 마음을, 자식의 도리로서의 마음을 어머니 할아버지든가 할아버지 할머니 다 이렇게 생각을 통틀어 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그 은혜를 생각하고 ‘모든 것이 다 제 마음과 같이 둘 아니게 한자리를 하소서!’ 하는 마음, 그게 그 치열한 부모의 사랑, 아리따운 그런 그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허허허.
고 마음을 가지고 나는 그럴 것 같아요. 봉투에 단 몇 만 원을 넣는다 하더라도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셔서 내가 이렇게 용돈 한번 제대로 못 드렸고, 맛있는 것 한번 제대로 못 사 드렸고, 공양 한번 따뜻하게 해 드리지 못하고, 살기 위해서 바쁘게 돌아치다 보니깐 이렇고 철몰라서 그랬고, 철 알아서는 그랬고 또 나이 먹어서는 부모가 안 계시니 그렇고…. 이것을, 이 불효를 어떡합니까?’ 하고 요렇게 착 담아서 이렇게 그냥 그 놓는 그 마음이 말입니다, 그 마음이 꽃송이처럼 향기가 퍼져서 온 천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그 영령들의 마음이 ‘아이고, 우리 아들의 마음이 이렇게 하늘에서까지 향기가 퍼지는구나.’ 하고 그 퍼지는 걸 느끼면서 그냥 와서 친견을 합니다. 친견을 할 때 모습이 없으면 친견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놓거나 위패를 놓습니다. 거기에 응접하시라고 그래서 꽃잎마다 응접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응접을 해서 ‘장하구나, 장하구나! 내 아들 장하구나!’ 그러다가 어느덧 그 조상이 알게 되면, 그 도리를 알게 되면 그 자식의 마음, 공부한 자식의 마음속으로 탁 들어가 보면 ‘아하, 내 자식이 따로 없구나. 돌아가면서 부모 자식 노릇 하기에 얼마나 모두가 더불어 같이, 이 치열한 자비가 아니라면 어찌 살 수 있겠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한자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극하지 않다면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참 눈물겨운 마음입니다. 저도 때로는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 직접적인 몸으로다가 내가 잘못해 가지고 부모의 속을 썩인 거는 아니지만 얼마나 그 속을 썩였는지 모릅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추우면 얼어 죽지나 않았는지, 여름이면 데어서 죽지나 않았는지, 하하하, 그냥 웃게 하느라고 그럽니다. 이것을 굶어 죽지나 않았는지, 또 뭐 조회하러 가면 이거 죽어서 어디서 송장이 나와서 조회하러 왔나 이럭해서 허우단심을 해서 뛰어왔고 뛰어오다가 엎드러지면 각혈을 그냥 막 하시고 이렇게 해서 돌아가시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러니 이 장본인들도 여러분 못지않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더 속을 썩였으면 썩였지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 그 마음 생각만 하면, 그 우거지를 끓여 놓고도 “나는 배가 부르니까 너희들 먹어라.” 하고 열무청 우거지를 삶아서 그거라도 간장에다가 찌그러뜨려서 해 주시던 그 어머니의 생각, 그 모두를 생각한다면 정말 눈물을 흘려서 대동강이 된들 어찌 다 하리까. 그럴 때, 그 생각을 할 땐 봉투에다가 내 마음을 담아서 그냥 열심히 마음으로 마음을 담아서 놓을 때 진짜 이것은 눈물겨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다 주고 바꾼다 해도 그 부모의 은혜는 정말이지 그 뜨거운 부모의 정은 못될 겁니다. 우리는 그 정의 젖줄을 먹고 그렇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죠.
지금 여러분이 임신을 해서 3개월이 되면 벌써 이게 젖줄을 잡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살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그러니 남녀를 막론해 놓고 우리가 마음을 깊이 가지고 열심히 하시면 그대로 스님도, 해 드리는 스님까지도, 이렇게 영령들이 처음에 들어오시면 벌써 위패에 먼저 좌정하십니다. 그리고 위패에서 또 그 스님한테로 옮겨집니다, 찰나찰나 말입니다. 그리고 또 자손들이 계시면 자손들에게 응접을 하시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주 정결해지고 아주 따뜻해지고 지혜롭고 이 오온이 다 내 자리 아님이 없을 때에 비로소 그 영령들도 ‘아! 이렇구나.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하고 그냥 한마음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진화돼서 다시 천도가 될 때 정말 이 세상의 왕으로도 태어날 수 있고, 장관으로도 태어날 수 있고, 그냥 남자가 또 한 여자로도 태어날 수 있는데 여자도 보통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내가 그만큼 해 놔야 아래 위가, 자식들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래 위를 다 제도하면서 내가 꿋꿋하게 나갈 수 있고 온 천하에 내가 아니 있는 데가 없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란 그렇게 광대무변하고 그렇게 묘한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하나뿐이 아니라 만 개가 있다 하더라도, 만 개가 간다 하더라도, 만 개가 온다 하더라도 절대 그것은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올 수 있고, 보는 게 없이 볼 수 있고, 듣는 게 없이 들을 수 있고, 모두 그렇기 때문에 자기도 이 세상에서 지금 어디에 발판을 두고 있나, 자기의 차원이 어딘가, 또 부모의 차원이 어떻게 됐는가 그것까지도 다 알 수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면 부모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길을 보면 앞으로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여러분이 마음을 온갖 뿌리에다가, 한 고장에 두시고 아주 진실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한마디 말하겠습니다. 할 말은 많으나 어떻게 말을 다 하리까. 여러분이 그릇이 커지는 대로 나도 커질 거고 여러분이 그릇이 작으면 나도 작을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우리 지금 신문이 나가게 됐습니다. 그것은 왜 내가 이렇게 거론했느냐 하면 몇 해 전서부터, 십 년 전서부터 한 것입니다. 십 년 전서부터 어떠한 생각으로 했느냐 하면 여기서 앉아서 설법을 한다 하면 세계로 보일 수 있고 세계로 들릴 수 있고, 또는 여기서 자료로 해 놓으면 세계에서 어느 방방곡곡에서도 다 그 재료를 빼다가 공부할 수 있고 말도 서로 통할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바탕을 세워야 할 텐데, 바탕을 어떻게 세워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 그 바탕을 세운 겁니다. 우리가 이 지금 방송시설이라든가 그 바탕을 세워서 전체, 딴 것도 딴 사람 것도 전부 어떠한 데서 요구해도 다 해 줄 수 있게끔 그렇게 조치를 취하고 또는 그 통신시설도 그렇게 해서 세계로 이렇게 오고갈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우리가 목탁치고 염불하고 여러분한테 기복으로 전달하고 기도하라고 그러고, 이렇게만 하면서 우리가 있는 것이 어디 중입니까? 왜냐하면 과거 미래 없는 우리 현재에 공해서 그 공한 가운데서 나오는 불빛과 같은 것을 앞장서서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중입니다, 중. 가운데 중 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똘똘 뭉쳐서 한마음으로서 앞으로 내가 살아 있든 내가 지금 나, 대리인 자식이 내가 못한 거를 자식이 할 수 있게끔 정열을 쏟고, 자비를 베풀고 모두 이렇게 해서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힘을 기릅시다.
그럼으로써 일 년에 4만 원씩 내야 한다고 합디다. 그러니 신도님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회사나 직장이나 또는 가게나 이런 데서 그 신문을 보게끔 모두 여러분이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우리가 봐서 아무 쓸모 없다면 그렇게 인권하라고 내가 말도 못하지요. 그러나 사람이 일 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그것을 볼 수 있다면, 봐서 이익이 갈 수 있다면, 거기에서 보고 급하면 그 생각이 나게 돼 있습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급할 때 ‘아, 거기에 그렇게 써 있더라.’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써 있으면 아, 그렇게 급하면 해 보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인권을 해서 우리가 잘 앞으로 모두 범위가 커지고 확산되고 이렇게 해서 세계의 발판을 세우게끔 만듭시다.

※위 법문은 1994년 8월 21일 특별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6-07-22 오전 1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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