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대학가 젊은이들은 값싼 라면을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낭만이라고 여겼다. 커피숍은 같은 또래 젊은이들의 회합 장소로 젊음과 이상, 세상에 대한 정의를 표출하던 공동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도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외국 브랜드의 커피 전문점은 다양한 마케팅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커피는 아직도 서구의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만끽하려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커피가 전해진 것은 1890년대 초, 외국 사신과 선교사들에 의해서다. 고종은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인 손탁 여사의 권유로 처음 커피를 마신 후 이것에 매료되어 덕수궁에 서양식 집을 짓고 커피와 서양음악을 즐겼다. 이후 왕실에서 커피가 애용되었으며 조선 상류층의 사교와 국빈 접대에 자주 커피가 이용됐다.
손탁 여사는 고종이 손탁 여사에게 하사한 정동 ‘손탁 호텔’에 처음 문을 연 커피숍은 당시 상류사회의 사교 장소이자 외교의 중심지요, 한국 최초로 문을 연 찻집이었다.
역관 김홍륙이 유배를 당하게 되자 고종과 세자가 즐겨 마시는 커피에 독을 넣어 고종을 독살하려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커피를 마시는 다방이 명동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화가, 문학가, 영화인 등 예술가들이 인생과 자유를 토론하고 새로운 정보를 교류하던 지식인들의 문예 살롱이 바로 다방이었다.
이렇게 커피는 근대화와 함께 다가온 서양문물이었다. 지금은 우리의 산업화만큼이나 빠르고 다양하게 일상의 음료로 자리 잡았다. 커피 소비 또한 인스턴트커피 중 믹스 커피 선호도 1위의 소비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차, 커피, 카카오, 콜라 열매 등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는 식물을 어떻게 이용하게 됐을까?
예멘의 한 수도원 염소들이 7일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시끄럽게 울어대며 목동들을 귀찮게 굴었다. 목동들은 궁리 끝에 염소에게 마술을 건 식물을 찾아내어 이맘(이슬람교 사회에서 지도자)에게 알렸다. 이맘은 이 식물의 잎과 열매를 냄비에 넣고 짓이기고 가열하여 물을 부어 마셔보았다. 희미했던 기억들이 또렷해지고 잠이 오지 않았으며, 천상의 음식을 먹은 듯 힘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이후 밤마다 수도승과 이맘들은 이 카와(k’hawah: 자극과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커피의 옛 이름)의 씨앗으로 활기를 찾았다.
이 커피 신화에서도 알 수 있듯 최초의 커피 이용자는 수도승이었다. 차(茶)가 불가에서 잠을 쫓기 위해 마셨던 수행 음료이며, 도가의 양생에 차가 응용되었듯이 커피 또한 이슬람교의 수도승들이 밤에 종교 행사를 치루기 위한 각성제로 이용됐다.
한때는 커피를 제대로 끓이는 것이 새신부의 중요한 덕목이 될 만큼 생활의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는 고대의 음료인 와인을 금지하고 인간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커피를 합법적인 이슬람의 음료로 삼았다.
한편 에티오피아 갈라족은 커피 원두를 끓여서 버터와 함께 으깬 다음 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먹었으며, 환을 만들어 음식이나 약용으로 이용했다.
1511년 종교지도자들은 커피에 알코올 성분이 있다하여 피고석에 커피를 담아 놓고 토론을 벌여 커피 판매와 소비를 금지하고, 커피를 압수해 거리에서 태웠고 소비하는 사람을 매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