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0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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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부채/원철 스님(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곧 장마가 끝날 것이다. 이후에는 불볕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노모처럼 비가 와도 걱정, 해가 이글거려도 걱정이다. 이래저래 중생계에선 근심이 끝날 날이 없다. 그 때문에 사바세계를 인토(忍土)라고 했나보다.
더위는 밀짚모자가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긴 하다. 다만 두루막 차림의 평상복일 때에 한정된다. 가사장삼을 수했을 때는 맨머리이어야 제대로 어울린다. 그래서 방포원정(方袍圓頂)이라고 했다.
네모진 가사(方袍)와 둥근머리(圓頂)는 수행납자를 상징하는 말이다. 더욱이 공식행사장이나 의전이 필요한 격식있는 자리의 태양아래에선 부채만이 사바세계의 열고(熱苦)를 줄여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얼마 전 어느 교구본사 주지진산식에 갔더니 부채를 정말 많이 준비해 놓고서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방(동남아)의 스님들은 거의 모자를 쓰지 않고 오직 부채에만 의존한 채 더위를 이겨내는 모양이다. 또 헝겊으로 만든 자줏빛 부채에는 지퍼가 달려있어 호주머니 역할까지 겸하는지라 이를 이용하여 보시를 받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위의를 지키면서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지혜가 돋보였다.
하지만 북방의 스님들이 사용하는 종이부채에는 지퍼가 없다. 그래서 가끔 노상에서 봉투공양을 받고는 손에서 엉거주춤 호주머니로 옮겨 넣을 때 그 어색한 느낌은 설사 부채를 들고 있을지라도 감수해야 한다. 합죽선에 호주머니를 만들어 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사들의 부채는 햇빛가리개나 보시를 받는 도구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꾼들의 부채기능에 더 가깝다고 할 것이다. 판을 장엄하기 위하여 소리와 추임새에 방점을 찍어주는 기능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분주무업(760~821)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푸른 비단부채에서 서늘한 바람이 풍족하느니라.” 선사는 푸른 비단부채(靑絹扇子)라고 했다. 또 혜근선사는 붉은 비단부채(紅羅扇)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 시절 선가에서는 지금처럼 종이부채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남방부채를 연상시킨다.
그건 그렇고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닛고’ 라는 그 심각한 질문에도 부채의 바람은 여유롭기만 하다.
비슷한 시대 살았던 마곡보철 선사 역시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가 다가와 물었다. “바람의 성품은 항상하여 두루하지 않는 곳 없거늘 선사께서는 어째서 부채를 흔들고 계십니까?”
어른의 위치에 있으면 설사 좀 덥더라도 위의를 지키면서 점잖게 앉아있을 일이지 경망스럽게 보통 중생들처럼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고 망상을 일으켜 부채질을 해대는 꼴이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 할(喝)을 날렸는데 거기에 대한 한 답방(答棒)이 날아오지 않을 수 없다.
“그대는 바람의 성품이 항상 있는 줄만 알았고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는 줄은 모르는구나.”
공기라는 체(體)만 알았지 바람이라는 용(用)을 모르니,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임을 일깨워 준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다. 당연히 물어야 할 말을 또 묻는다.
“무엇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는 도리입니까?”
이에 선사는 다시 부채를 흔들어 보였다. (키득키득) 그 답변을 보충하자면 불감혜근 선사의 ‘부채송’이 좋을 것 같다.
오색구름 그림자 속에 선인이 나타나(彩雲影裏仙人現) / 붉은 비단부채를 들고 얼굴을 가리는구나(手把紅羅扇遮面) / 얼른 눈을 뜨고 선인을 보아야지(急須着眼看仙人) / 선인의 손에 든 부채를 보지 말라(莫看仙人手中扇).
2006-07-22 오전 10: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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