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에위니아와 장마전선의 상승작용의 영향으로 경기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은 홍수와 산사태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수재민들이 하루 빨리 피해를 딛고 일어나도록 그 어느 때 보다도 불자들의 보살행이 필요한 시기다.
낙하 운동이나 천체 운동은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기만 일기예보는 매우 예측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공기의 분자 운동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기분자의 운동이 압력, 온도 그리고 지구의 자전과 지형에 따라서 임의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 전문가는 지구 곳곳에 설치된 기상측정기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이를 근거로 공기의 운동을 결정하는 미분 방정식을 푼다. 풀어야 하는 미지수가 많기 때문에 수퍼 컴퓨터를 이용한다. 이렇게 하더라도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기상 현상까지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반도는 산이 많은 지형이라서 일기를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다. 태백산맥이 이어져 있는 강원도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공기와 동해의 해상 조건이 마주치는 곳이므로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이변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인류의 역사는 물과 함께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상력이 큰 시인들은 홍수에 관련된 수많은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또 인더스-갠지스 강, 황허-양자강,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강 유역이 모두 인류의 문화가 발상한 곳이므로 인류는 홍수와 싸우기도 하고, 적응도 해가며 살아왔다. 통치자뿐만이 아니고 정신적인 지도자들도 홍수를 예측하고 이를 물리칠 능력을 일반대중들에게 보여 줘야만 했을 것이다. 중국 주나라 역시 물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한 왕이 포진했던 고대국가다. 물을 다루는 솜씨가 부족한 경우에는 그 부족한 부분을 신화로 보충했다. 기독교의 천재들은 노아의 홍수 신화로부터 인류의 조상을 분류하고 그들의 신을 숭배한 자 만이 번성한다는 근거를 만들어 냈다.
홍수는 인간의 재앙을 가져다 줬지만 토목공사라는 기술의 발전의 동기를 가져다 줬다. 댐과 같은 큰 공사를 위해서 체계적인 기하학이 발전했다. 기하학의 발전은 17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뉴턴의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처님 초기 경전에서도 홍수를 역류시켜 사람을 구함으로써 우루벨라 캇사파를 무릎 꿇게 한 내용이 나온다. 세 가지 피하고 싶은 재난 즉 수재, 화재 그리고 풍재에서도 홍수는 피하고 싶은 재난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홍수보다도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불과 같은 재앙이 더 크다고 설하셨다.
과학기술이 자연을 지배하는 시대에 홍수 피해를 보면서 자연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더욱이 자연 재앙조차도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부산물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 등이 자연 기상을 바꾸고 인류가 추구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자연 기상을 더욱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마음의 재앙을 제어하는 방법이 더 큰 재앙을 막는 첩경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